brunch

EP9. 브룩스 브라더스

옷도 투자다.

by 다소니

주차장에서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리로이가 뒤에서 불렀다.

“Hey, Junsu!” (야, 준수!)

"Hey, "

나는 가볍게 뒤를 돌아보며 대답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리로이는 평소와 다르게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장이란 게—

겨자색과 밤색이 교차된 큼직한 체크무늬, 마치 70년대 거실 소파 패브릭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디자인이었다. 넥타이 역시 폭이 넓고, 적어도 유행에서 두 세대는 뒤떨어진 이상한 패턴이다.


“How do I look?” (나 어때?)

리로이는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상황에서 보통 미국인이라면 “You look great!” (멋져 보여!)라고 대답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나는 미국인이 아니고, 아마 정상적인 인간도 아닐 확률이 크다.

내 머릿속을 스친 대답은 "Where did you get that, Goodwill?" (그거 어디서 샀어? 굿윌?)이었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으며 말을 돌렸다.

“Do you have something important today?” (오늘 무슨 일 있어?)

“Yeah, the top dogs at Mercy are coming in this afternoon. We are trying to upsell $10 million in addition to the renewal.” (응, 오늘 오후에 Mercy 병원 주요 인사들이 와. 기존 계약 갱신에 추가로 천만 불어치 더 팔으려고.)


리로이는 초조한 듯 발걸음을 빨리했다.

설마 이 꼴로 클라이언트를 만나겠다고?

"Are you the presenter?" (네가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야?)

나는 확인차 물었다.

리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In that suit?” (그 정장을 입고?)

나는 말꼬리를 높였다.

리로이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What’s wrong with it?” (뭐가 문제야?)

"It looks like you got it at Goodwill." (굿윌에서 산 거 같아.)

… 애써 접어두었던 내 본심이 튀어나왔다.

오 마이 갓. 대체 난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Oh, uh, Sorry … I mean…" (앗, 미안, 내 말은…)

“You’re not wrong. I did get it at Goodwill. But it’s Ralph Lauren.” (네 말 맞아. 굿윌에서 샀어. 그래도 랄프 로렌인데.)

리로이는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I don’t care if it’s Ralph Lauren himself—actually, it looks like his grandpa bought it 30 years ago, wore it until he passed away, and then it was donated to Goodwill. You’re not closing a $10 million deal in that thing." (랄프 로렌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아니, 어쩌면 그의 할아버지가 30년 전에 입으시다가 돌아가셔서 굿윌에 도네이션 한 거 산 거 같아. 너 그거 입고 천만 불짜리 계약 따내기 쉽지 않을걸.)

나는 에라 모르겠다 쐐기를 박았다.

"Then what do I do…?" (그럼 어떡하지…?)

리로이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나는 그를 세워 놓고 아래위로 훑었다.

총체적 난국이다. 리로이는 32세 공대 출신인 데다 파이낸스 쪽에서 일한 지 겨우 5년 차. 숫자에는 강할지 몰라도 비즈니스 감각은 나보다 더 어리바리했다. 게다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갔다니, 주위에 드레스 코드나 비즈니스 에티켓 같은 걸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던 거다.

“Let’s go.” (가자.)

나는 뒤돌아서 내 차로 그를 끌었다.

"Where?" (어디?)

"Brooks Brothers. To the mall." (브룩스 브라더스. 몰에.)

그는 주춤했다.

"That place is expensive…" (거기 비싼데…)

"You got a $30,000 bonus last time. Just 1% of that is $300. Think of this as an investment in your future." (너 지난번 보너스 3만 불 받았잖아. 그거 1%만 써도 300불이야. 이건 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


나는 그의 사진을 찍어 나일즈에게 문자와 함께 보냈다.

"Niles, I’m taking Leroy to the mall. Gotta get him a new suit… You know there’s a $10 million deal on the line today. Can’t send him in looking like this." (나일즈, 나 리로이 데리고 몰에 가. 새 옷 사 입히려고… 오늘 클라이언트 미팅 있는 거 알지? 천만 불이 걸려 있는데 이 꼴을 한 걸 들여보낼 순 없잖아.)


나일즈는 오 마이갓 이모지와 떰즈업 이모지를 함께 보내왔다.


우리는 브룩스 브라더스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오픈하자마자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그 덕분에 세 명의 판매원이 제러드에게 달려들어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그의 치수를 재고, 정장 다섯 벌, 셔츠, 타이까지 풀세트로 대령했다. 이게 아르마니 매장이었으면 샴페인도 나왔겠지만, 리로이는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지 황송해하며 순순히 한 시간 내내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우리는 클래식한 차콜 슈트 + 다크 레드 스트라이프 실크 타이를 골랐다. 새하얀 셔츠까지 사고 나니 총액이 500불이 훌쩍 넘었다.


리로이는 얼굴색이 변했다. 나는 그가 안 한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는 순순히 크레디트카드를 내밀었다.

단 하나 문제라면, 무지막지 발달한 그의 가슴과 어깨 덕분에 거기에 맞는 사이즈를 사다 보니 소매가 너무 길었다.

판매원들도 내 우려에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 내로 줄여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오늘 입어야 하니 그건 옵션이 아니었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그를 설득해서 근처 세탁소로 갔다.

미국 전역의 세탁소는 한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나는 가서 읍소할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런트 데스크에서 한국 아줌마가 “맡겨 놓고 이틀 후에 찾아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해야 돼요!”라고 고집을 부렸고, 리로이는 뒤에서 한국말로 공방전을 벌이는 나와 아줌마를 번갈아 멀뚱멀뚱 쳐다봤다.


내 목소리가 높아지자, 뒤편에서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지고 우유병 바닥만큼 두꺼운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목에 줄자를 걸고 나오셨다.

“할아버지가 재단사 세요?”

나는 말했다.

“제 친구가 오늘 오후에 정말 중요한 미팅이 있거든요. 지금 해주시면 요금 두 배로 드릴게요.”

나는 리로이에게 묻지도 않고, 재단사에게 요금이 얼마인지도 묻지 않고 약속했다.

할아버지는 긍정도 부정도 안 한 채, 손짓으로 제러드를 피팅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오시더니 “한 시간 뒤에 와.” 하셨다.


나는 한숨을 쉬고 리로이에게 한 시간 있다 오라니 점심을 먹고 오자고 제안했다.

내가 이 정도 정성을 들였으면 좀 괜찮은 곳에서 대접을 하는 게 마땅하련만, 리로이는 당연하다는 듯 몰에 있는 푸드코트로 나를 데려갔다.


쪼잔한 놈.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나는 나일즈에게 문자를 보내 점심 먹고 들어간다고 알려주고 리로이가 나를 푸드코트로 데려왔다고 일러바쳤다. 나일즈가 또 오 마이 갓 이모지를 보내왔고 나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EP8. 포세이돈과 하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