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 그리고 남겨진 나
"Well, I’ve got the notice. It is official now." (나, 정식 통보받았어.)
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고, 나름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도 예상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일즈가 한숨을 내쉬며 오피스 창의 블라인드를 내리자, 나는 아예 작정하고 소리까지 내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함께 일하면서 내가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일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곧 클리넥스를 박스째 가져다 놔주고, 코를 풀고 눈물을 닦느라 정신없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봤으면 그가 아니라 내가 짤리는 줄 알았겠지.
"What are the terms?" (조건은 어떻게 돼?)
나는 코맹맹이 소리로 가까스로 물었다.
"It’s not too bad. One-year severance and full-year bonus. There’s a one-month transition period, but honestly? I’ll be pretty much checked out by this afternoon." (나쁘진 않아. 1년 치 퇴직금에 연간 보너스도 다 줘. 인수인계 기간이 한 달이긴 한데, 솔직히 난 오늘 오후부터 이미 정신적으로 퇴사야.)
그는 농담을 하며 유쾌하게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나는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또 울기 시작했다. 나일즈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반복하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사실 작년 내내, 그는 자신을 자르려는 보스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더 이상 그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윗선에서 전해졌다.
나일즈는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줬다. 자신의 공석이 쉽게 채워지지 않을 거라며 그동안 내 영역밖이었던 그의 업무를 몇 달에 걸쳐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당연히 내 능력밖의 일들이었고 가르쳐준다고 다 배울 수 있는 일들이 아니어서 나는 무서웠다.
"Take me with you." (나도 데리고 가.)
나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나일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Positions like mine don’t come up often. And even if they do, it’ll take time before I can bring you in. You need to be prepared for anything until then. You still work here. Do your best." (나 같은 자리들은 쉽게 나오지 않아. 그리고 설령 나오더라도, 너를 데려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야지. 네 직장은 아직 여기야. 최선을 다 해야지.)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 상황에서 왠 공자왈 맹자왈인가. 나 같으면 나를 버린 회사에 뭔 상관? 하고 털어버렸을 거다. 아니, 보스 차 타이어 밑에 못이라도 깔아 놨을지도 모르지.
내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I’m not doing this just for the company. I’m doing this for you. This is an opportunity. A chance for you to learn things you wouldn’t in your current role. This sucks for me, but if something good comes out of it for you, then at least it’s not a total loss." (회사만을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너를 위해서야. 이런 게 기회라는 거야. 네 현재 직위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해 볼 기회. 나한테는 엿 같은 상황이지만, 너한테라도 이득이 생긴다면 최악은 아니잖아.)
나는 그때도 울 뻔했다.
나일즈는 지난 2년 넘게 공석이었던 CFO를 대신해 회사를 아무 문제 없이 운영해 왔다. 그가 이 회사로 이직을 한 것도, 처음부터 "그 자리가 네 것"이라는 보장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가 몇 년을 준비해 온 그 자리는 전혀 엉뚱한 외부자에게 넘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다했다.
새 CFO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회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밑에 직원들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그리고 이제, 그는 떠난다.
공인회계사였던 나를 재무부로 데려와 기초부터 가르쳐 준 사람.
내 스승이자 친구였고, 멘토였고, 든든한 지원자였던 내 보스가.
그리고 나는…
이 정글 한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