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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핏불이라 불린 여자

데비와의 첫 만남

by 다소니

내가 아직 정직원이 아니고 계약직으로 다른 회계사들과 함께 컨퍼런스 룸에서 일할 때였다.

어떤 여자가 사무실 안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These numbers are crap! This is full of crap!" (이 숫자들 엉망이야! 이거 완전 쓰레기라고!)

그러고 나서 누군가 낮은 소리로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If you knew about it, don’t even ask for this kind of shit again!"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런 거 다시는 요청하지 마!)


빅 4 회계법인에 있을 때 우리끼리 낮은 소리로 속어를 농담처럼 쓰는 경우는 많았지만, 온 사무실이 다 들리게 쩌렁쩌렁한 소리로 욕하고 소리 지르는 건 처음 들었기에 나와 다른 회계사들은 서로를 둘러봤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지만, 다들 우르르 몰려갈 수도 없어서 서로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나는 빈 커피 머그를 들고 카페테리아에 가는 척하며 컨퍼런스 룸 밖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그 고함 소리는 회계 디렉터인 아담의 오피스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내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한 여자가 오피스에서 나오며 문을 쾅 닫았다. 그녀는 키가 170cm에 몸무게가 120kg 정도 되어 보이는 거구였고, 더티 블론드색 머리카락을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버섯돌이처럼 바가지머리로 잘라놓았다. 울분에 찬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눈 주변에 칠한 파란 아이섀도와 파란 아이라이너 때문에 더욱 파래 보였다.


파란 아이라이너라니…

나는 화가 나서인지, 볼터치가 너무 짙어서인지 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녀는 내 곁을 지나가며 ‘What are you looking at??’ (뭘 봐??)는 듯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후, 나일즈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파이낸스와 회계팀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고함을 질렀던 그녀가 회계 매니저였고, 즉 그녀가 욕을 하면서 소리 지른 상대가 다름 아닌 그녀의 직속상관인 회계 디렉터, 아담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직접 대면한 건 내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나고, 케이티가 넘겨준 업무 중 하나였던 감가상각비를 계산하고 있던 날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계산이 맞지 않았다. 포뮬러 에러는 아니었지만, 아예 가정 설정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Katie, can you take a look at this?" (케이티, 이거 좀 봐줄래?)

케이티에게 물어보니, 그건 회계팀 소관이라며 자기는 그냥 자료를 받아 입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데비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자기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숫자를 그냥 입력했다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데비의 큐비클로 가서 노크를 했다.


"Hey, Debbie, can you take a look at this file? Katie handed it over to me, but something doesn’t seem right with the numbers." (헤이, 데비, 이 파일 좀 봐줄래? 케이티한테 인수인계받았는데 뭔가 계산이 맞지 않네?)

내 솔직한 심정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지만, 최대한 돌려 말해 보았다. 다행히 데비는 의외로 기분 좋게 파일을 자기 모니터에 띄우고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설명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엑셀 포뮬러에 대한 것이었고, 내 질문은 좀 더 근본적인 입력 자료의 당위성을 묻는 것이었다.


내 질문이 점점 길어지고 집요해지자,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마지막으로 나는 입력 자료 원본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Even my boss signed off on this! What the hell do you know, when you’ve been here for less than a month?! This data is from an external agency, and our headquarter already audited and approved the process! It may look wrong now, but it all balances out by the year-end!" (너 말고도 내 상사도 다 인정한 방법인데,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네가 뭘 안다고 이래라저래라야?! 이거 외부 기관에서 나온 자료고, 우리 본사에서도 감사를 받아서 승인된 프로세스거든? 지금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연말에 정산하면 다 맞아떨어진다고!)


난데없이 동료 직원들이 꽉 찬 오픈 오피스에서 벼락을 맞은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시스템 연계성에 대해 떠들며 점점 더 소리를 높였다.

"Alright. Just send me the supporting documents when they’re ready, please." (응, 그래. 내가 부탁한 보조 자료가 준비되면 곧 보내줘.)

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가 소리를 지른 건 못 들은 척, 내 할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에드워드의 어드민이자 지난 40년간 역대 CEO, CFO의 비서였던 낸시가 문자를 보내왔다.

"Are you okay? She’s always like that. Don’t let it get to you."(괜찮니? 걔 원래 그래. 신경 쓰지 마.)

마치 친할머니처럼 따뜻한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Yes, I’m fine. Thank you for checking on me."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뒤돌아보기 전에 코코넛 향을 느끼고 리로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평소처럼 이쑤시개를 씹으며 미간을 좁히고 나를 턱짓으로 불렀다. 내 앞 큐비클에 앉는 케이티도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를 따라 나왔다.

"Jeez… should we all chip in and buy her a dildo or something? She’s getting worse by the day."
(아유, 정말… 우리 같이 돈 모아서 딜도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갈수록 더 심해지네.)

케이티가 한숨을 쉬었다.

"Is she single? How old is she?" (싱글이야? 몇 살인데?)

내가 물었다.

"Forty-three. I’ve worked with her for seven years, and I’ve never seen her go on a date." (43. 내가 같이 일한 지 7년인데, 한 번도 데이트하는 걸 못 봤다니까?)

케이티가 말했다.


"With that face and that personality, what guy would want to date her?" (저 외모에 저 성격인데,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

리로이가 눈을 굴렸다.

"Then why doesn’t a beautiful and funny woman like Katie have a boyfriend?" (그럼 아름다운 외모에 유머 감각까지 좋은 케이티는 왜 남자친구가 없는데?)

나는 케이티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무심코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Right? And it’s not like I’m that picky either…" (글쎄 말이야… 난 남자에 대해 별로 까다롭지도 않은데…)

나는 아차 싶었지만, 케이티는 내가 칭찬한 게 기분 좋은 듯 대답했다.

"What’s your type? I’ll keep an eye out for you." (네 조건이 뭐야? 내가 찾아볼게.)

리로이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Hmm… good sense of humor, stable job, likes to work out… that’s about it. Oh, and he has to have hair. No baldies." (음… 유머 감각 있고, 직업 확실하고, 운동 좋아하고, 뭐 그 정도면 돼. 아, 그리고 머리카락이 있어야 돼. 대머리는 싫어.)

케이티는 머리를 저었다.


"What? What’s wrong with bald heads?! I have a bald head, but I’m still a stud-muffin!" (뭐? 대머리가 뭐 어때서?! 나도 대머리지만, 여전히 섹시하다고!)

리로이는 반들반들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두 팔을 올려 엄청난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자랑했다.

"That’s different. You shave it on purpose. I’m talking about people who go bald naturally." (그건 다르지. 넌 일부러 민 거고, 난 자연적으로 빠진 사람들 얘기를 하는 거야.)

케이티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Forget about Katie’s boyfriend—shouldn’t we be more worried about finding Debbie one?" (근데 케이티 남자친구보다, 데비 남자친구 구해주는 게 더 시급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Oh, that’s a Mission Impossible." (그건 미션 임파서블이야.)

리로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By the way, could Debbie be a racist? Maybe she acts like that because Junsu’s Asian?" (그나저나 혹시 데비 인종차별자 아냐? 준수가 동양인이라서?)

리로이가 케이티에게 물었다.

"No, she does that to everybody. She is an Equal Opportunity Offender." (아니야, 걔 원래 다 그래. 진정한 차별 없는 공격자라고나 할까.)

케이티는 확신했다. 데비가 백인 남자인 자신의 직속상관에게 소리를 질렀던 걸 기억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로이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Still, isn’t this something that should be reported to HR?"(그래도 이건 HR에 보고해야 하는 사건 아냐?)

케이티가 내게 물었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사실 데비가 내게 소리를 지를 때, 내 직속상관인 케이티는 그냥 뒷짐 지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나한테 HR에 보고하라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내가 이런 문제를 직접 보고하는 게 좋은 모양새일 리가 없다. 이건 내 직속상관이 도와줘야 할 문제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It’s the first time, so I’d rather just keep an eye on the situation for now." (일단 처음 벌어진 일이니까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그리고 내 판단이 맞았다. 데비는 핏불처럼 언제 어디서든 짖어대고 아무에게나 덤벼들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고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10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다들 그녀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런 여자랑 3박 4일 출장을 가야 한다니…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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