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주는 행복

자전거

by 행복한금작가


드라마 화면 속,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와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던 여주인공. 그 청순한 이미지와 자전거 앞 바구니가 내 어린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아, 나도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모습은 내 머릿속 한구석에 작은 로망으로 아련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자전거는 늘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타고 싶다는 마음만큼이나 '나는 못할 거야'라는 벽이 높았다. 운동 신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으로, 오롯이 두 발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릴 적 오빠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을 때, 무릎팍이 까져 쓰라린 상처에서 피가 났던 따끔한 기억은 자전거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았기에,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고, 사실 배우고 싶은 마음조차 용기 내지 못했다. 그렇게 자전거는 나에게 닿을 수 없는 꿈속 풍경 같았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자전거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가 타던 보조 바퀴 없는 작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심심한 마음에 '한번 타볼까?' 하는 충동이 일었다. 조심스럽게 자전거에 올라타 짧은 다리로 땅을 짚어가며 페달을 밟아보았다. 놀랍게도, 몸이 휘청일 때마다 얼른 발을 땅에 내디디면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렇게 타는 거였구나!' 두려움보다 신기함이 앞섰고,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그 작은 움직임조차 경이롭게 느껴졌다. 중심이 흔들리면 언제든 땅에 발을 착지하면 되니 넘어지거나 크게 다칠 염려가 없었다. 겁 많은 나에게 이토록 완벽한 탈것이라니!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조카의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자유롭게 동네 골목길을 누비게 되었다. 서툰 페달질이었지만, 내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는 지인분께서 조카가 타던 그 자전거가 더는 필요 없다며 나에게 주셨다. 낡았지만 왠지 정감이 가고 튼튼해 보였다. 연한 노란빛과 연둣빛이 어우러진 차체에 귀여운 꽃무늬가 그려진 자전거.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부터 이 낡은 자전거는 나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두 바퀴 달린 친구는 나의 가장 좋은 운동 파트너이자, 출퇴근길을 함께하는 든든한 발이 되었다. 비 오고 유난히 추운 날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내 곁을 묵묵히 지켰다. 일이 너무 많아 번아웃이 찾아와 마음이 지칠 때면, 이유 없이 자전거에 올라타 무작정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가르고 달렸다. 시원한 바람에 힘든 생각들이 잠시 흩어지는 듯했고, 땀방울에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장을 볼 때 짐이 많아도 괜찮았다. 자전거 앞 바구니는 나의 무거운 장바구니뿐만 아니라, 삶의 고단함까지도 기꺼이 실어 날라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와 낡은 자전거는 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흘러왔다. 자전거는 살아있는 벗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자전거도 아팠다. 힘차게 달리다 타이어가 펑크 나서 길가에 힘없이 주저앉기도 했고, 체인에 기름칠을 해주지 않으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겨워했으며, 기어가 고장 나 애를 먹이기도 했다. 마치 아픈 친구를 보살피듯, 중간중간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만 자전거도 다시 힘차게 바퀴를 굴려주었다.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보건소에 가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인도를 달리다 갑자기 균형을 잃고 쿵, 하고 넘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은 바지 무릎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쓰라린 상처에서는 빨간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통증과 길바닥에 넘어져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창피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근처 카센터 사장님이 한달음에 달려와주셨다. 능숙하고 따뜻한 손길로 상처를 소독해 주시고 약을 발라 밴드를 붙여주셨다. 전혀 모르는 분에게서 받은 그분의 따뜻한 도움에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다음 날,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커피를 사다 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구멍 난 바지를 보며 쓴웃음을 난다. 그 사건 이후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탔다.


낡은 자전거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나의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때로는 말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오랜 벗이 되어주고, 때로는 게을러지려는 나를 이끌어 운동하게 하는 엄격한 주치의 같기도 하다.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작은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소중한 경험과 자전거가 주는 행복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말해주는 듯한 나의 낡은 자전거. 자전거가 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며,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 낡은 자전거는, 나의 작은 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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