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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30. 2024

네 영혼의 미적분을 감지하렴!

'MZ를 위한 엄마의 유산' 못다한 이야기 2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를 바라지. 

즉, 소망하고 욕구하지, 추구하지.     

누구처럼 되고 싶고 그것을 갖고 싶고 먹고 싶고 보고 싶고 거기에 가고 싶고 그렇게 하고 싶지.     

이러한 '욕구'가 없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어.  

  

인간의 본성은 

'욕구하는 동물'이니까.

  

욕구하지 않으면 '만족'이나 '불만족'과 같은 단어도 소용없어지지 않을까?     

바라는 바가 없는데 무엇에 만족하고 또 무엇에 불만족할까?      

또, 충만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겠지.      

바라는 바가 없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질 수 없겠지?   

  

여기서 잠깐, 단어를 정리해보고 넘어가면 좋을 듯한데 말야..     

욕구, 욕심, 욕망, 탐욕 등에 공통적인     

욕(慾)은 心(마음 심) + 欲(하고자 할 욕)이야.      

즉,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욕구란 뭔가를 구하는 마음,     

욕심이란 욕구하는 마음,     

욕망이란 바라는 마음,     

욕구, 욕망. 즉, 바라는 마음인 욕.심.이 지나치면 탐욕(貪慾)인 것이니 탐욕은 바람직하지 않겠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시작되었다면 충동이 일고 이를 '욕구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텐데      

욕구하는 그것, 원하는 그것, 바로 너의 '꿈'이지.

욕구자체는 물론 실체가 없지만 실체의 씨앗이지.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무언가가 탄생해 유(有)로 발현되는,

네 안에서 창조가 시작된 것이지.      

쉽게 말해서 

무언가가 잉태된 것이란 말야.      


항상 상상은 행위와 사건보다 앞선단다.

잉태된 그것이 배양을 시작하면

너의 몸,

그러니까 정신과 감정,

그리고 영혼까지 모두!

미적분을 시작해.

마치 번데기가 그렇게 긴시간 갇힌 채 화학변화를 일으켜 나비로 승화되듯

네 영혼의 미적분은 네 안에 화학변화를 일으켜 질적인 다른 차원으로 널 이끌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충동이 네 안에서 진동하면 보이는 유형의 네가 파동을 감지하는거야. 몸의 미세한 구석구석에서 작든 크든 어떤 신호들이 네게 감지되지. 처음 잔잔한 파동은 점진적으로 요동치게 되고 가끔 난동으로 소동으로 정신못차리게도 하지만 그렇게 파동이 격해질 때 파장이 일어나고 파장은 네 밖의 어떤 파동으로 이어져 전체가 진동하게 되고 이 진동이 가열찰수록 네 안에서 배양되는 그것이 세상에 원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지. 


따라서,      

욕망, 욕구, 욕심은 세상에 없던 것을 나로부터 창조해내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네게 감지(感知)가 시작됐다는 것은 너의 순수하고 자체고결한 영혼이 네 안에서 엄청난 화학작용을 시작했음으로 인지해야 할 것이야. 

     

관심이 있으면 들여다보게 되고      

들여다 볼수록 오래, 깊이 더 보고 싶고     

오래, 깊이 보니 자세히 알게 되고     

자세히 아니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니 갖고 싶어지고     

갖고 싶으니 더 소중히, 아끼게 되지.     

그리고,      

소중한 이와 나누고 싶어지지...               


바란다는 것은, 즉, 욕구한다는 것은 이런거야.      

너무 소중해서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되는 것.

나아가 그것으로 나의 가치가 상승되며 나의 정체성에 더 선명한 색을 입히는 것.

또한

지금과는 다른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 나아가는 것, 향하는 것, 흘러가는 것,

그렇게 스며들어 나눠지는 것.

세상의 일부가 되어 세상의 진화에 쓰여지는 것....


결국, 욕구가 널 떨게 하지 않으면 공유도, 진화도 이루지 못해.                

하지만 욕망, 욕구에는 실체가 없어.      

그저 네 안에서 실체가 되길 기다리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뿐이지.  

    

실체없는 욕구가 실체를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너의 의식 속 믿음이야.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지니고 있다는 믿음.                

어딜 여행가고 싶다면 이미 그 곳에 가 있다는 믿음.      

어떻게 되고 싶다면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는 믿음,      

무엇을 보고 싶다면 이미 내 눈이 그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면 이미 그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믿음.      

이렇게 

믿음을 실제, 실체로 형상화해내는 

너의 의식적 각성과 의식적 질주! 

이러한 의식활동이 

너의 미적분을 가속화시킬거야. 

거대하게 만들거야. 


욕구와 욕망은 바로 이러한 느낌을 따라 움직이면서 이 믿음에 대한 의식의 힘의 강도.      

즉 욕심의 강도만큼 실체화되는 것이야.     


욕구, 욕심에 대해서는 철학자 에피쿠로스(주1)가 알려준 바를 언급하는 것이 기준이 될 것 같네.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욕구가 있어. 가령 목마를 때 물을 마셔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자연스러운데 꼭 필요하지 않은 욕구가 있어. 이는 사치스런 식사와 같은거야. 사치에 해당하니까 어쩌면 탐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야. 씁쓸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욕망때문에 사는 것 같기도 해. 명예나 지위같은 것인데 에피쿠로스의 표현으로는 왕관이나 동상같은 것이라고 했어. 


물론, 젊은 날엔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고 싶고, 명예도 탐나고 썩 있어보이는 명함을 선호하기도 하지. 그래서 그건 다 쓸데없는 탐욕이야!! 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어.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너에게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너의 소신이나 정의와 맞바꾼 것이라면 그것은 탐욕을 넘어 죄가 되지 않을까?     

남의 것을 부정한 방식으로 택해서 취한 것이라면 이 역시 죄가 되겠지.     


또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의와 소신을 버리고 타협과 손잡는다면 이 역시 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꼰대같은 말들을 네게 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아마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되어 있는 꼴값들 속에서 혹여 너희들이 왕관이나 동상을 위해 정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취급하여 내다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일거야.    


가랑비에 옷젖듯..      

그렇게 너에게 젖어들고 있는 탐욕의, 물욕의, 소유의 사회가 약간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되기까지 기성세대인 우리가 알고 행했든 모르고 행했든 일정부분 기여한 것에도 책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너를 비롯한 청춘들은 결코 그러지 않길 바래.        

       

그저 감정적으로, 우려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성적인 논리로서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볼께.     

지금 당장 좋아보이지만 짧게 끝나는 삶이 있고     

지금은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도 점점 좋아지면서 끝까지 좋은 상태로 가는 삶도 있어.     

당연히 이 말만 들으면 후자쪽을 누구나 택하겠지.   


사람은 자극이, 감정이, 이성을 종종 마비시키는지라 눈 질끈 감고 부정과 손잡곤 하거든.     

정말 잘 지켜갔지만 그 순간이 나락으로 가는 길임을 당하고서야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 

이 찰나의 순간 어떤 누구는 이렇게, 어떤 누구는 그래도 저렇게 행동하지.

이 선택은 영혼의 순수한 미각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참으로 결정하기가 어렵단다.

  

그런데 꼭 명심하렴.

네 영혼이 미적분을 시작할 때 저~어기 어디선가 때를 기다리다 기지개를 켜는 놈이 꼭 있어!

개구리처럼 울어대기도 

광대처럼 방긋대기도 

사자처럼 으르렁대기도 

독버섯처럼 향기로 유혹하기도 하는, 그런 놈들말야. 


너의 감지를 축하하러 오는 천사옆에는 같은 옷을 입고 기지개를 켠 악마도 꼭 함께 등장한단다. 

천사의 손에는 소망의 활력과 고통의 화살이 들려 있고

악마의 손에는 비겁과 기만과 자만의 계약서가 유혹스런 포장지 안에 들려 있지. 

하지만 네 눈에는 고통의 화살이 먼저 보일 것이고 이것을 피하기 위해 넌 악마와 계약을 해버려. 

왜? 

네 이성이 이 순간 마비되거든. 

비겁과 기만과 자만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그리고 그다지 아프지 않거든. 

네 안에서 큰숨한번 쉬면 아무도 모르거든.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거든. 


바로 이 순간.

세상을 상대로 사기쳐도 괜찮다고, 

이 정도 부정은 눈감아주겠지 싶은 순간!

너의 진정한 욕구가 탐욕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야. 

네게 비겁을 허용하면서 네가 지켜왔던 숭고함과 순수함을 기만하는 순간이며 

이렇게 '자만'이라는 간질병(주2)에 걸리는 순간이지.


올곧은 정신, 

자신의 영혼을 싸구려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정신

은 제 아무리 악마가 개구리처럼 울어대고 광대처럼 널 웃기고 사자처럼 네게 으르렁대고 독서벗처럼 널 황홀에 빠뜨리더라도 거부할 수 있는 모루의 정신이어야 해. 망치질과 뜨거운 열이 쇠를 얼음처럼 녹이고 형태를 바꿔 버릴 정도로 아무리 강렬하게 너를 내리치더라도 끄떡없는 모루의 정신. 

항상 우리 모두는 같은 선택앞에 서있단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다른 인생을 만들어가지.


두 벌이 같은 곳에서 같은 먹이를 먹어도 

이 벌은 침을 만들고, 저 벌은 꿀을 만든다.

두 사슴이 같은 풀과 물을 먹어도 

이 사슴은 배설물을, 저 사슴은 순수한 사향을 만든다.

두 갈대가 같은 물을 먹어도 

이 갈대는 텅 비어있고, 저 갈대는 설탕으로 가득 찬다.

둘 사이에 만 가지의 유사점이 있어도 

그 차이는 한평생 인생만큼 크다(주3).


꼭 명심해.      

악마는 항상 너보다 더 부지런히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악마는 항상 네게 관심이 많아서 네 일거수일투족에 모두 관여한다는 것을.

악마는 항상 너보다 거래능력이 출중해서 너와의 계약에 충실하게 성실하게 임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전 욕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에피쿠로스가 말한 1번째 욕망, 자연스럽고도 꼭 필요한 욕망은 단지 먹고 사는 생존만이 아니라 바로 너 자체로서 너를 증명해내도록 이끄는 너의 꿈도 포함돼. 인간은 또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생계 이상의 더 큰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단다(주4).


꿈만큼은 

끝까지 

크게크게 욕구하길 바래.    


꿈이란 네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내보내주길 기다리는 세상의 명령이야.

꿈이란 너를 통해 세상에 조화를 이루고자 창조주가 심어놓은 씨앗이야.

꿈이란 너의 의식, 그러니까. 관념에 등을 돌리고 의식의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네가 잉태한 자식이야.    

네가 아니면 안되기에, 

너여야만 하기에, 

너로부터 태어나      

네가 오로지 너의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또 다른 너의 실체라고 할 수 있지.         

익숙한 관성대로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이지만     

네 안에서 꿈틀대는, 마구 소리치며 네 가슴을 두드려대는 그 진동의 정체를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렴.  


실체없는 욕구가 충동으로 요동치는 그 진동을 결코 외면하거나 방관하거나 회피하지 말아라.     

처음 시도하는 것들, 그것에 대한 간절함이 때론 보편적이지 않아 보이겠지만      

지속적으로 영원히 점점 나은 삶을 보장해 준단다.  


왜냐면,      

세상이 원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실체화되기 위해 세상이 네게 보탬을 줄 테니까,      

세상이 널 보호해주고 세상이 너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이러한 욕구야말로 가장 이치에 맞는, 자연이 원하는 욕망이지.  

        

그러니,      

맘껏 욕심내렴.     

욕구하는 마음을 끝까지 억누르지 말길 바래.     

욕구의 자체본성은 너의 창조물이니 

옆에서 개구리든 사자든 광대든 천박하게 소리내는 것에 귀를 막고 너 자신에게 집중하렴.

그렇게 너를 치욕에 빠뜨리지 않도록 너 자신을 더 깊게 사랑하렴.


만일 단 한 사람이 자기 본능 위에 반석처럼 몸을 세우고 단단히 거기에서 지키고 있으면, 

이 거대한 세계가 도리어 자기 편으로 향하여 오리라는 것, 

(중략)

인내하라, 모든 선한 것 위대한 것의 영을 반려로 하여, 그대들 자신의 무한 생명을 꿰뚫어봄으로써 위안을 삼고, 우주 원리의 연구와 전달, 본능을 우세하게 하는 것, 세계를 개혁하는 것을 일삼아라. 이 세계에서 그 한 단위가 되지 못하는 것은 큰 치욕이 아닌가(주4).

  

너 자신과 네 안에서 널 통해 나오려는 너의 가치로운 꿈이 실체로서 발현되어 세상이 바라는 조화와 일체를 이루도록 끊임없는 욕구하고 또 욕구하렴.   


그렇게 궁극의 행복과 쾌락을 너 자신의 인생에 선물하렴.

자신이 자기존재 위에 서지 않고 어디에 서야 되겠니?

너 자신위에 너를 세워라.

그 길은 지금 네 안에서 네게 내지르는 부지런한 소리, 영혼이 미적분을 시작한 그 소리로부터 시작된단다.


주1> 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2022, 현대지성 

주2> 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슨, 2008, 동서문화사 

주3> 루미시집, 루미, 2019, 시공사

주4> 랄프왈도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수상록, 2013, 나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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