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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02. 2024

섭섭해서 무기력해진 나에 대한 해석

'관계의 우월함'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

내게도 그런 날이 있다.

해야 할 일들, 써야할 글들을 아직 다 쓰지 못했는데

아무 것도 하기 싫어 마냥 누워만 있고 싶은 그런 날.


오늘같은 무기력은 왜 날 찾아왔을까?

에 대해 잠시 눈감고 머리를 굴려봤다.


요즘, 아니 수년간의 훈련덕에

감정이 오면 그 감정이 어느 경로로 온 것인지 패턴을 찾

그 패턴의 어디쯤에 내가 서 있는지를 명민하게 들여다본 후

감정을 이기는, 아니 이겨야만 하는 정신에게 부탁한다.


정신은 이내 나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라고 명령하고

정신의 훌륭한 충신인 내 신체는

허리를 곧바로 일으켜 세우고

음 가득 넣은 아이스커피 한잔을 손에 쥐게 하고는

노트북앞에 나를 앉힌다.


그리고는 쓰게 한다.

지금 네 머리속에 정리된 것을 그냥 써!

그렇게 너를 끄집어 내!라고.


그래서 지금 명령대로 내 가슴과 머리속을 털어내본다.


패턴의 어디쯤에 서 있나 보니

나는 섭섭함을 느낄 때 무기력에 빠진다.

다 소용없게 느껴지고 아깝기도 하고 허튼 에너지를 쓴 내가 소모된 느낌에 사로잡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섭섭함은 나와 상대가 5씩 주고 받아야 하는 관계인데 나의 천성이 10을, 20을 주려는, 주고야 마는, 주었을 때 편한 내 성향이 근원이다. 5와 10의 차이, 그러니까 그 '차이나는 5'는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너는 안해주냐', '왜 너는 내 맘을 몰라주냐', '네가 어떻게 이렇게 내 맘을 아프게 하냐' 등등으로 채워진다.

어김없다.

나는 이 감정을 섭섭함이라고 규정짓지만

남들은 착해서라고 순진해서라고들 한다.


하지만, 결코 아니다.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면,

나는 사람이고 사람의 본성이 그런 것이다.


'타인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타인들로부터 중히 여김을 받는다(주)'라는 적절한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말같지도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처럼 다 어리석은 자들이다. 나는 소중하고 귀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런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중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 이 모순에 갇힌 내가 그런 1인인 듯해서 씁쓸하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매우 가치있는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마치 범죄와도 같이 숨겨둘 필요가 있다. 물론 썩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엄연한 진리(주)'라고 세네카가 가르쳐줬다. '개도 너무 다정하게 대하면 좀처럼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주)'며,

하물며

우리는 인간이다.

나의 상대도 인간이다.

이런 면에서 오냐오냐하면 할아버지 상투를 잡는다는 말도 진리다. 타인에게는 너무 관대해서도, 너무 부드러워서도, 너무 귀히 대접해서도 안된단다. 약간은 소홀히 대하는 의.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잃지 않는 격(주)이란다. 그래야 상대에게 자기 존재를 필요한 가치로서 남게 할 수 있단다.


인간은 자신이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이 되면 오만해지고 건방(주)져지면서 자신의 행동을 참아줄 것이라는 착각에도 빠진다. 적당한 선에서의 예의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잘해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 위에 자신의 존재를 얹혀서 필요에 의한 예의정도를 차리는 것으로, 더 보태자면, 그 정도만 해도 상대는 잘해줄 것이라는 자만과 오만, 착각...


이 때부터 관계는 균형을 잃는다. 한쪽은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상대를 통해 자신의 자만과 오만의 죄악으로 빠지고 또 한쪽은 상대가 상투를 잡든 개처럼 짖어대든 그저 참아가며 '차이나는 5'를 메우는데 기력을 소진한다.

무언가를 잃어가는 느낌에 사로잡혀가면서 말이다.


'차이나는 5'는 낭비와 소진, 불균형과 불화의 구간인 셈이다.

그러니

착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물론 앞에서 말한 5씩 주고 받는 관계에서 5라는 숫자는 서로 똑같은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한 5이다. 가령, 남자와 여자가 같은 무게의 쌀가마를 지고 경주를 한다? 가 아니라 남자가 쌀한가마를 진다면 여자는 반가마를 지는 것이 '같은 5'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계산하고 관계를 계산하고 정성을 계산하며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뭔가 빼앗기는, 잃어가는 느낌이 들 때는 한발 뒤로 물러설 필요는 있다.

그래야 소중하고 귀한 상대를 잃지 않는다.

그 소중하고 귀한 상대가 자만의 길로 들어서는 것 역시 막을 수 있다.


이것이 당장에는 뭔가 깨지는 느낌을 주어 나를 슬픔에 잠식시키고 기막힌 한숨을 토해내게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멤논같은 매정한 질투의 눈이 내게 없음에 감사하며

어떤 영웅이라도 나타나 나의 천성적인 비애를 마력으로 부숴주고

내 가슴을 조이는 질곡(桎梏)의 타성을 풀어주길 청하는

이런 용기...

진짜 선(善)인 것이다.


섭섭함.

나의 무기력이 섭섭함과 만날 때 등장하는 정체라면

섭섭함의 근원인 '잃어가는 느낌', '질곡의 타성'을 없애야 할 것이고

'차이나는 5'를 4,3,2,1로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주고주고 또 주다가

주지 않는 용기.

지각있는 용기.

현명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세네카가 수년전에 날 이리 가르쳤는데도 나는 오지랖을 조절하지 못한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쏟으며 하고 싶은 말 참고 받아야 할 것 기다리고... 그래야 내가 편하고 뭔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라 난 참으로 생색, 탓, 요령없이 산다. 난 이런 내가 참 좋은데.... 항상 반대편에 숨은 그림자가 어느 날 정체를 드러내듯 이런 내 성향이 날 섭섭함에 빠뜨리고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날을 늘 만난다. 그래서 이럴 때 나는 멈추고 세네카의 가르침을 다시 읽고 선을 그어보기로 한다. 어리석은 내가 현명해지기는 할까?


교제에 있어서의 우월함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그것도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낸다고 하는 점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상대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해주는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주).


이렇게

내 행동에서 일어나는 기력없는 행위,

내 가슴에서 일어나는 섭섭한 감정,

내 머리에서 일어나는 연역된 해석의 민감한 연계

내 밖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이어가는 현명함일테다.


계속 주던 것을 주지 않는 용기,

잃어가는 느낌에서 멈출 수 있는 단호함,

한발 더 전진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

이를 행하도록 영웅을 부르는 간절함.


'섭섭함'이 지금 여기 등장한 이유는

그렇다.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지성으로 관계를 지키도록

이리 알려주기 위해 내 무기력이 열일하러 오늘 내게 왔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껏 내가 지니고 있던 give&give는 없애야 할 관념인가, 지켜야 할 신념인가

그래도 한번 더를 실천했던 give&give는 무지의 소치인가, 지혜의 명제인가

이렇게 알아버린 지금 give&give는 넘어서야 할 난제인가, 따라야 할 과제인가

이렇게 의심과 의문을 묻히고 살 때

앞으로 내가 또 겪게 될 무기력은 놀리듯 뒤통수를 칠 도적인가, 맞서 싸워야 할 도전인가


주>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세네카,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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