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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09. 2024

사치스럽게 살고 싶다

새벽독서 5년째

지금 간절한 2가지.


첫째,

시간을 없애버리고 싶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너무나 익숙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이제 잘 시간,

이제 먹을 시간,

이제 나갈 시간,

이제 일할 시간 등등

모든 시간을 인생에서 제거해 버리고 싶다.


지금이 어떤 절기인지 그냥 몸이 느끼는대로,

지금 보여지고 만져지는, 그냥 자연이 주는대로,

지금 아는 것도 잊고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그냥 세상이 알려주는대로,


그렇게..


둘째,

자연이 날 구속해주길 바란다.

자연에게 구속당하고 싶다.

6개월? 좀 짧을까?

1년? 견딜 수 있을까?

지나보니 아무 것도 아닌 1년여 시간,

날 강제로 자연에 묶어두어,

세상이 날 데려가는 그 곳으로

의지없이 그냥 따라가고 싶은,


말하자면,

자연이 눈뜰 때 나도 눈뜨고

시들 때 나도 시들고

아플 때 나도 아프고

기쁠 때 나도 기쁘게


당연하던 모든 것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연에게만 구속되는 삶.


날 가둬 오히려 자유를 내게 부여하는,

몽테뉴처럼, 릴케처럼, 소로우처럼 그렇게 한 시절 보내고 싶은 지성의 사치를 원한다.

산도 강도, 하늘도, 땅도, 심지어 잡초까지 오로지 내가 독차지하는 자연의 사치를 원한다.

한계없이 읽고 쓰고 먹고 가고 오는, 제약없이 맘대로 갖다써도 되는 시간의 사치를 원한다.

누구라도 내 정신과 감정의 즙까지 써버리고 원망남긴 채 떠나도 내 마음에 동요가 없는 감정의 사치를 원한다.

그토록 나의 정신이 체계잡혀 반듯반듯한 습관의 주름이 깊이 패여 그 어떤 애를 쓰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유로운 정신의 사치를 원한다. 


감.히. 원한다.


그렇게..


3시간 읽고 3시간 쓰고 2시간 걷고

3시간 읽고 3시간 쓰고 2시간 걷고....

사이사이 배고프면 먹고 마려우면 싸고 가려우면 긁고 졸리면 자고

만나면 대화하고 안(못)만나면 침묵하고

나만나러 오는 이 반갑게

나떠나는 이 아쉬움없게

엄청난 '철학적 배신'을 당할 수도 있겠지.

엄청난 '지성'의 난관에 부딪히겠지.

엄청난 '후회'속에 살게도 되겠지.

엄청난 '질타와 원망'에 가슴아프겠지.

엄청난 거리로 세상과 멀어지겠지.

엄청난 속도로 능력이 소진되겠지.

엄청난 '버텨내야 하는 시간'에 빠지겠지.

더 이상 고갈될 것조차 없는 나와 이내 직면하겠지.


내 절친 소로우(주1)가 한탄했듯이 항구없는 해안가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방황하거나 글로 작은 모래톱이나 들락거릴 뿐이겠지.


그렇다고

방향을 돌려 자연의 조류가 멈춰버린 '학문'이라는 드라이독(주2)으로 들어가 내가 부여받은 사상의 고유성을 수리시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언제 어디선가 드러날 지 모르는 나만의 모래톱을 내 미래에서 지워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내게 이 2가지의 사치가 허락된다면 하나의 생각으로 정박해 있는 나의 사상이 바다에서 독립된 하나의 호수로 생성되지 않을까? 


그렇게

소금물이 민물이 되고 민물이 맛좋은 담천수가 되거나 모두가 귀하게 여기는 광천수가 되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원한다.

나와 시간, 나와 타자, 나와 내삶의 모든 즙까지 다 짜낸 채 소진되길...

이를 위해 자연속에 나를 들이밀어

묵은 허물 벗겨내고

고인 감정 씻어내고

닫힌 정신 열어젖혀

오로지 자연이 내게 부여한 본성으로 살 수 있게

어렵게 내게 자극주는 영혼 맑게 세정하게

온몸을, 일상을, 일생을....

맡겨보고 싶다.


시간을 없애 무한의 사치를,

보편을 벗어 독창의 사치를,

일상을 버려 하루의 사치를,

구속을 통해 자유의 사치를,

나를 버리고 나로써 사는 자아의 사치를 누리는,

나는 사치스런 여자로 살고 싶다.


딸에게 여기까지 쓴 것을 보여주며 물었다.

"엄마, 이렇게 살고 싶은데... 이상하지?"

했더니

"엄마가 못하는거야? 안하는거지!"

한다.


그렇군.

안하는거군.


그렇다면,

'나'와 '나의 사치'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신의 관념인가?

성격의 타성인가?

행동의 관성인가?

감정의 가성(假性)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아....

순도 100%의 무지, 초자연의 나와 만난 것이다!

내가 날 모를 수밖에 없는 진리와 만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니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일체와 만난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오물 모두 걷어내고 우주가 부여한 나의 본성과 만난 것이다!


진정 그러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나는 2가지, 시간을 없애고 자연에 구속당하여

온갖 만물이 누리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


주1> 헨리데이빗소로우, 월든, 2017, 열림원

주2> 드라이독 : 건선거(乾船渠), 선박의 건조, 유지보수, 수리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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