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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05. 2024

매일 5a.m.발행 2년, 이유를 묻지만..그저 살려고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이유

얼마 전... 

너무 감동적인 덧글을 독자분께 받았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감사하다'..


이 한줄의 덧글에 저는 감동에 감동에 감동으로 가슴이 뛰더니 역시 뛰는 가슴은 피를 돌게 하고 내 몸의 액체를 밖으로 밀어내더라구요. 그렇게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흐릿했던 정신은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딘지 내 자리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조금 넘어 줌을 켜고 책을 읽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자리를 함께 하며 들어왔다 나갔다 했니만 저는 2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새벽독서에 관심이 깊든 얕든 누구든 왔다가 가고 또 다시 오는 원망과 기대와 믿음과 실망의 언저리... 그렇게 미련스러울 정도로 그 자리를 지켰고 


6-7시엔 읽은 책의 토론을 합니다. 1명이든 10명이든 그저 내 앞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분들과 수업도 하고 하루 종일 내 안에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글들을 쏟아내느라 노트북을 껴안고 삽니다. 


그렇게 나의 글은 내 지성의 혼을 입고

24개월째 이 공간, 브런치를 통해 

매일 새벽 5시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항상 그 자리', 

하루도 어기지 않았던 이 자리는 그저 책과 노트북이 있는 제 책상 앞이네요.

누구든 원하면 줌으로라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누구든 원하면 이책저책 책얘기를 나누고

누구든 원하면 이글저글 글의 소재와 주제, 맥락을 나누고..

그러네요. 여기가 제 자리네요.


그런데.. 만나는 분들 거의 대부분이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새벽 5시 발행을 그렇게 지킬 수 있었냐?'고요.

음....


이제 익숙한 대답이 되었지만 익숙한 이 대답이 가슴 절절한, 그저 진짜니까, 진심이니까 이 말밖에 하지 못해서 그렇게만 말해오고, 그래서 익숙해진 듯 한데...


살려고...

간절해서..


책을 부여잡고 내 정신을 다 뜯어고치고 싶었고

책속의 가르침을 따라 내 감정을 죄다 정리정돈하고 싶었고

내 삶이니까 내 길이니까 내 아이들의 기억에 남을 나니까 잘 남기고 싶었고

그렇다면

책이 이끄는대로 가면 내 안에 뻥뚫린 구멍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간절했습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살려고 하지만 정신이 아프면 살기 싫어지거든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그랬습니다. 

살기 싫고 세상이 보기 싫고 다 소용없게 느껴지던 긴 시간들을 통해 


어느 날 문득

'내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남겨질까?' 

'내 아이들이 평생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기억의 한 조각에 엄마인 내가 있을텐데 어떤 양분으로 남겨질까?'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내 아이들은 나를 얼마나 깊게 진하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자기안에 담아둘까?'


이 무시무시한 질문이 날 강타하더니

얼음같은 냉기가 내 정신을 얼게하고

불길이 번지듯 내 가슴에 화기가 느껴지고는

불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주룩주룩 한참을 흘렸던,

그런 시간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렇게..

난... 


살려고, 

잘 살려고, 

나답게 살려고, 

내 아이들 기억속에 바람직한 조각이, 양분이 되려고 

내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 때까지의 내 눈으로는 보던대로만 볼 게 뻔하니까 

다른 눈을 갖고 싶어

책을 파고 들었지요.

그렇게 살려고... 

살려고 읽었습니다. 

잘 살려고.


2019년 2월부터 시작한 새벽독서가 벌써 5년째.

진입은 기존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죠.


내 정신의 질서도 그렇게 마구 요란스럽게 가끔 난동을 피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진입과 투입으로 새로운 질서가 잡힌 것을 느낍니다. 당연히 정신이 질서잡히니 감정도 제 멋대로 날뛰지 않게 되었지요. 정신과 감정이 다정하게 손잡고 내 몸을 이끌어주니 행동도 정돈되고 내 몸 하나 정리되니 일상이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충분히 충만했고

더 높은 고양된 삶을 지향하며

나를 키워나가는 쏠쏠한 재미를 어지간해서는 놓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저는 많이 더딘 사람이라 남들은 책 몇권읽고도 깨닫는 것을 저는 5년을 이 자리에 이렇게 있지만 아직도 갈증이 많습니다. 겨우 2년 매일 새벽 5시에 발행했다는, 그러니까 매일 수시간 글에 매달렸다는 것이 훈장은 아니죠. 전문작가도 아니고 또 그럴싸한 베스트셀러의 주인공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래서 아... 저렇게 하니 저렇게 됐구나 하는 이도 아닌데 무슨 훈장을 위해 이렇게까지 집요할까에 대해서는 많이 못난 사람이라서인지 가야할 길이 먼 사람이라서인지 나조차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독서 5년, 매일 5시 발행 2년이 별다른 훈장은 없지만

골목어귀 어디에 서 있던 나를 밝은 빛이 비치는 큰길가로 이끌어주었고

그리로 나가니 세상도 보이고 내 안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고 그렇게 눈이 트이게 되었으니

감히 말하건데 

독서와 글이 제 인생의 혁명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틀 전 거실의 통창으로 햇빛이 강하게 들던 대낮 어느 시간쯤...

약간의 더위를 느꼈지만 노트북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독자 한분이 또 제게 묻습니다.

'예약도 안되는데 새벽 5시 발행을 어떻게 하나요? 힘들지 않나요?'라고.


그래서. 지금 저는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아마 저의 진화된 생각의 현주소가 여기쯤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5년 변화된 나를 고스란히 글로 풀어내기에 전문작가가 아닌 나의 솜씨가 여전히 어색하고 부족하지만 쓰고 쓰고 또 쓰고... 이렇게 자꾸만 쓰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나같은 어떤 존재가 간절히 원해서가 아닐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시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간절함이 나를 움직여 내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같은, 그런 느낌이 저를 이끌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쓰기'를 거부하고 '쓰임'을 수용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매일 새벽 5시에 발행하냐?'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내가 써서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끄집어 당기는 힘과

나를 간택하여 자신을 보여주는 성현들과

새벽 5시라는 시간의 갈고리에 걸린 글과

이를 위해 한치의 양보없이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랍니다.


나는 이렇게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삶이 아주 좋습니다.

편하거든요.

글의 소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아니라 간절한 누군가가 어김없이 제 구석구석을 파헤쳐 찾고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후루룩 써진 적이 많았거든요. 

이렇게 내 의지가 하지 않는 경험을 통해 자만이 물러나고 겸손이 자리하는 민망함도 선물받게 되었지요. 


역시 내 의지보다 더 큰 의지가 나를 걷게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역시 내가 지닌 의지의 총량은 딱 나에게만 써야지 타인에게 쓸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역시 나의 의지는 겨우 요정도라 이를 지속시킬 힘은 하루에 주어진 내 의지를 모두 소진하는 것뿐입니다. 

비워야 채워지니까요.


요즘에는 

내 삶을 더 깊이 진지하게 살아보려는 욕구

가 나를 지배합니다.

새벽에 항상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내 삶이 잘 쓰여지기를요...

한 사람의 고양된 정신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할 때 

그러한 개인은 결코 개인이 아니라 전체라지요.


영웅이 되려는 욕심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내 정신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해 내가 더 평안해지고 내 아이들의 기억이 더 아름다워지고 그렇게 내 삶이 세상에 일조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마치 우유에 떨어진 잉크 한방울이 표나지 않아도 분명 그 성분은 우유안에 존재하듯 나는 전체에 어떤 성분으로 희석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삶을 더 높은 단계로 올리고자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서 어둡지만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면, 온 우주가 '공허'가 아니라 '숭고'한 기운으로 채워지지 않을까요?


살려고 읽고 썼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더 제대로 살려고 읽고 씁니다.

나의 삶은 이렇게 매 순간의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나아지고, 길러지고, 키워지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을 쓰는 이 행위들이 쌓이고 쌓여 어떤 곳에 다다를지 나는 아무런 계획도 할 수 없지요. 그저 이 행위를 계속 하고 싶어 온라인 여기저기 내 글을 뿌려놓은 것 외에 어떤 반석에 나를 세우둘지는 내 몫이 아닙니다. 쓰려고 세상에 내놓으신 그 분이 마련한 그 자리에 어울리는 몫으로 서 있겠지요. 그 믿음 가지고 읽고 씁니다. 그렇게 순종하며 편안하게 읽고 씁니다.


그래서 50이 넘으며 참으로 소소한 감사들도 많아졌습니다.

읽을 수 있는 2개의 눈, 

움직일 수 있는 10개의 손가락,

해석할 수 있는 정신

낡았지만 담아낼 수 있는 노트북,

더디지만 흉내낼 수 있는 sns,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주지 않는 동네카페,

커피한잔 시킬 수 있는 주머니푼돈,

하루를 내 맘대로 사용해도 피해끼치지 않는 삶의 질서까지.

감사한 것들이 매일 많아지며 일상이 감사로 채워지니 이 얼마나 감사한 삶입니까?


읽고 써서 그렇습니다.

읽고 쓰기 전에는 감사를 잘 몰랐거든요. 

그저 부족한 것에 투덜대고 불평하고 나를 닥달했으니

전과 후의 사이에는 읽고 쓴 행위밖에 없어요.


그러니,

'어떻게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대답은

'살려고...'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진솔한 나와 만나고 간절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응원해 줍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살아보려는 욕구가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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