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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19. 2024

현실의 공포는 나를 도우려 왔거늘...

'공포'에 대하여

그림 : 근아작가( https://brunch.co.kr/@maypaperkunah)

오랫동안 질질 끌려다니던, 

내 몸의 곳곳에 쌓으려, 집어넣으려, 구겨서라도 채우려던 녀석들이

내게 항복을 선언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한걸음 걷기도 무거운 몸이었다. 

요즘 내 몸이 이렇다. 위염이 심해져 모든 몸의 에너지가 그 염증을 키우는 것인지 이기려는 것인지 몸에 힘이라곤 전혀 없이 나를 질질 끌고 다녔고 병원이든 약이든 거부하던 내가 급기야 약을 달고 살더니 내 발로 스스로 병원을 찾으며 나는 (남들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하는) 심한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신체가 정신과 감정을 이끌었는지 

감정이 정신과 신체를 이끌었는지 

정신이 감정과 신체를 이끌었는지 

무엇이 먼저 날 파괴시키려 주동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셋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정신은 늘 친구삼던 고독의 정체가 외로움과 씁쓸함과 좌절감이라는 감정의 꼬임에 빠져서 자신을 지배하려는 것을 방치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채워질 때쯤 현실의 나는 남들이 그렇듯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솔깃했고 결국 어떤 경계인지 한계인지 모를 지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지난(難)한 과정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관장하는, 나를 이끄는

'또 다른 나'는 

베짱있는 심보로 가뜩이나 독한 눈빛에 힘을 주어 날 감시하였고 

그 힘은 가던 방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내 발목을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나'에게 커다란 감사를 보낸다. 

아마 '또 다른 내'가 없었다면 

나는 엉엉 울었을 지 모른다.

까치발로 서있기에 아프다고 무릎꿇고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저기로 가서 달콤한 향을 맡고 싶다고 달려갔을 지도 모른다.

힘잃은 날개로 바닥에서 퍼덕거리는 꼬라지 보기 싫어 저기로 향하는 거센 바람에 몸을 맡겼을지 모른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질질 끌려다니다

오늘 새벽.... 

강렬한 느낌에 환하게 웃었다.


내가 이겼다.

검은 그림자가 걷히고 있다.

이제 다시 나다.

내가 이겼다.


나 자신의 파멸을 이토록 처절하게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험으로 단련된 인식보다는 무한의 가능성을, 그 방향으로 서 있던 발길을, 고개를, 의지를, 그리고 나와의 의리를 지켰다. 


현실의 공포는 

나를 도우려 왔음을, 

나를 파괴시켜 가능성의 문앞까지만 날 데려가면 나를 이끌 거대한 위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듯 공포는 더 무섭게 몸집을 불려가며 날 몰아세웠고 

나는 그런 공포를 이기려 매일 날 파괴시켰다.

드디어 오늘 새벽, 

공포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 지점에 내가 서 있는 것을 이렇게 벅찬 감동으로 나는, 지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가 이겼다. 

내가 졌다. 

그러니 나는 여기에 서 있고 

목적을 달성한 공포는 이제 숨겨뒀던 이쁜 모습으로 내게서 떠났다. 

감정은 자각이 목적이라 목적만 달성하면 자연스레 나를 떠난다.


날 점령하려던 검은 그림자가 백기들고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

날 지배하려 고인 채 섞인 오물들이 결국 자체가 지닌 순도를 찾아가는 느낌.

날 빼앗으려던 화려하게 치장한 장식들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며 무릎꿇는 느낌.

그렇게... 

한계인줄 알았던 경계앞에 그토록 안 보이던 빛이 내 눈에 감지되는 느낌.


지배당하던 자아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감시당하던 자아가 자기 눈을 찾고

감싸이고 휘감겼던 자아가 주먹을 쥐고

숨만 할딱이며 널부러졌던 자아가 다시 신발을 신고

공포에 웅크렸던 자아가 그 공포가 손을 내밀어준 신의 둔갑이었음을 알아챈 지금.

장막을 거둬보니 

모든 비탄과 좌절은 나의 자아의 승리를 알려줄 조짐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로써 나는 내 안에서 오로지 나 자신만 느낄 수 있는 아주아주 섬세한 감각이 주는 신호를 포착했다.

침묵과 매일 하기로 한 행위와 소란스럽게 요동치던 감정에 결코 지지 않았던 나의 정신과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 참 잘했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암울과 침울과 현혹과 절망과 공포가 

내게 온 의도의 본질은 

결국, 

날 저기로 데려가기 위한 위장술이었음을....

작은 나를 키우려니 깨야 하고 그래서 내가 아팠던 것임을...

이들은 날 지배, 감시, 통제하려던 것이 아니라 

내 지력에, 염력에, 자력에, 활력에 지금껏 쓰지 않았던 자아의 위력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음을...

그렇게 내 속의 큰 내가 작은 나를 뚫고 나오려니 나를 파괴시켜야만 했을 진통이었음을...


내 머리속에는 선명한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얼굴 전체를 덮고 있던 회색의 짙은 안개가 머리끝부터 코끝까지 서서히 벗겨져 내려오는, 아직 안개에 덮힌 입술은 움직일 수 없지만 안개에서 벗어난 두 눈에선 감사의 눈물이 흐르는... 순수결정체로서의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그 얼굴.... (내 머리속에 있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내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짙은 수증기는 내 안에서 정화되어 순수한 한방울의 눈물로 창조되었음을.... 

그렇게 이 새벽의 눈물은 창조의 가치를 지녔음을... 

내 속의 혼잡과 오물과 악취를 모두 담아 내 밖으로 스스로 스며져나온 영롱의 빛이었음을.....


[건율원 ] 

삶의 가치실현을 위한 어른의 학교, 앎을 삶으로 연결짓는 학교, 나로써, 나답게, 내가 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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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읽고 함께 쓰는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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