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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23. 2024

머리가 좋아야 용기도 있다!

'용기'에 대하여

가끔 나는 내가 왜 감정에 사로잡히는지 나 스스로에게 따져 물을 때가 있다. 묻고 나면 그 근거를 찾아 내 안을 이리저리 뒤적거리지만 늘 '근거'는 없거나 못 찾았다. 어쩌면 나에게 온 두려움,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근거없는 고뇌'일지 모른다. 이러한 근거없는 고뇌들은 예측에서 오거나 허상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하고 이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어느 지점이,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어떤 현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겪게 될 법한 일들을 미리 계산에 넣어 감정을 불러내는 것이다. 물론, 미리 대안을 생각하고 고려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을 분석, 해석하는 이성에 더 염두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근거없는 고뇌'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이 내게 올 때 우리에게는 '용기'라는 녀석이 필요하다. 사실 용기는 일상에서는 별로 필요치 않다. 양치질하고 밥먹고 일터로 나가고 ... 이러한 일상은 특별한 장치없어도 그냥 돌아가는데 일상에서 약간 비껴난 듯한 어떤 현상이 등장할 때, 또는 등장하려는 조짐이 느껴질 때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당 부분에서 '용기가 없어서' 관두거나 미루는 일들이 허다한 걸 겪으면서 '진짜 내게 용기가 없는 걸까?'에 대해 살피기 시작했다. 없다면 고민할 이유도 없는데 있으니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있으니 가지려고 만들려고 찾으려, 키우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용기는 있다!'로 쉽고 단순하게 결론부터 내리고

'용기를 어떻게 키우고 어디서 가져와야 할까?'

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요 몇년 사이 나에게 극도의 용기가 필요했던 사건은 우습게도 치과에 가는 것이었다. 그간 '용기없어서' 방치했던 나의 치아에는 문제가 많았고 도저히 치통때문에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용기내서' 치과를 찾았고 '더 큰 용기내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사실 치과까지 갔다가 도망친 경험이 3번 있는지라). 있는 힘껏 주먹쥐고 누워있을 것이 뻔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인형 하나 손에 들고 치료용 의자에 앉기까지 했으니 여하튼 나에게 치과는... 생각하기도 싫지만, 아무튼 내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그리고 용기가 내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곳이다.       


내가 '용기를 만들지' 않고도 내게 존재하는 용기를 제대로 갖다 쓸 수 있었던 것은

'단순계산'  

때문이었다.

'치료받지 않고 아픈 것보다 치료받고 안 아픈 것이 더 낫다'는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계산.

이 계산을 못했을까?

진작에 알았다.

하지만 무섭고 두렵고 가기싫은 감정이 이 단순계산을 이겨먹은 것이었다.

그러니

감정말고 이성에서 용기는 싹을 틔운다는 또 단순한 명제가 만들어진다.      


어렸을 때 쓴 약을 먹을 때도 우리는 그렇게 용기를 갖다 썼다. 그렇게 도망다니지만 결국 코잡고 한숨에 쓴약을 들이켰던 기억, 할까말까 망설이던 그 말을 '그래, 오늘은 꼭 하고야 말거야'라며 뱉었던 기억,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에게 '오늘은 기필코'라며 대들었던 기억. 이 모든 기억들에서 '용기'는 단순한 동기로 자동발생했다.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나은, 계산'

'나에게 유리한 것을 알아낸, 이성'

결국,

용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슴이 아니더라.

머리에서 이쪽보다 저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용기는 저절로 솟는다.     


과거 사랑하는 이성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며 고백했을 때의 용기.

고백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유리하기에 그 어려운 공부도 해내는 용기가 생겼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보다 낳는 것이 더 유리하기에 아이키우며 예상되는 숱한 어려움에도 아이를 낳는 것이고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에 우리는 '할 말하는' 인간이 되려 용기를 냈고

돕지 않는 것보다 돕는 것이 더 유리하기에 소신있는 자들의 뒤에는 죽을 각오로 용기를 내는 이들이 있고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 도전하는 게 더 유리하기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리(自利)'.

스스로에게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본성인지라 용기 역시 이 단어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스스로에게 이롭다는 것이 머리에서 이성적으로 이해되면

누가 뭐라 해도 용기는 자연발생적으로 드러난다.

없지 않고 있으니까 자동적으로 내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가 제대로 판단해줘야

있는 힘껏 용기를 내어 그 힘이 제대로 쓰인다.

머리좋은 사람의 용기는 쓸모있다!


사랑보다는 돈을 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니 사랑을 버리는 용기가 생긴 것이고

적당한 타협이 정의보다 더 유리하니 타협하는 용기도 생긴 것이며

거짓인 줄 알면서도 사는 데 유리하니 거짓된 삶이 줄, 벌받을 용기도 생기는 것이다.     


용기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유리하면' 드러난다.     


용기.

가슴에게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제대로 된 이성을 키우면 저절로 생기는 가치다. 가슴 말고 머리. 내 머리에, 내 이성이, 내 정신이 무엇을 쫒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이 명철해진다면 용기, 의지, 투지, 열정. 이러한 감각들은 저절로 내게서 드러난다.     


'용기를 가져라'고 말하지 말자.

용기는 이미 모두가 지니고 있다. 무엇이 더 자신에게 이로운지 자각하면 된다.

'용기있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말자.

용기있는 행동이란 없다. 계산에서 이익이 생기면 저절로 나오는 행동이 그리 보일 뿐이다.

'용기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없다면 찾지도 말 것이며 원하는 바도 그냥 버리면 된다. 원하는 바가 없으면 용기가 필요없으니 있는 용기마저 자연소멸될 것이다. 용기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더 유리하니 용기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더 큰 용기가 자신에게 온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면 된다.


'용기있는 선택'이란 없다.

'용기없는 선택'이 없듯 '용기있는 선택'도 없다. 선택 그 자체에 이미 이성적 판단이 함유되어 있고 이성안에는 함께 손잡고 출동할 용기까지 담겨 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유리한 쪽을 택하는 본성대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근거없는 고뇌로 인해 괴로울 필요가 없겠다. 예측은 현실이 아니므로 내 괴로움은 망상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 망상을 쫒으려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유리한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인간본성적 욕구에 의해, 이득이 계산되면 저절로 드러나는 정서가 용기이니 용기를 가지려 애쓰지 말고 이득을 계산하고 가슴에 믿음을 심으면 이미 용기있는 사람인 것이다.     


한가지 바란다면,

세상은 '선'으로 향하는 것이 이로우며

세상을 구성하는 '자연'도 '선'을 추구하고

인간본성 역시 '선'의 가치를 득으로 여기니

우리 모두 제대로 계산하는 이성부터 갖춘다면 세상은 온통 '옳은 용기'를 내는 기운으로 넘쳐날 것이다.

세상도, 자연도 그 쪽으로 용기를 쓸 것이니

계산상으로도 완전히 더 유리한 것은 세상의 이치를 따르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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