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평온무사함과 내 안의 황량함에 대해 그냥 쓰다.
2024. 06.24. 오후 4:28분.
가끔 나의 평온무사한 삶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방금 나는 어제의 천둥번개때문인지 대낮인데도 선선한 바람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는 길을 걸어 집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집근처 무인카페로 가 방금 전 3시까지 글쓰고 번역하고 중요한 일들을 마친 뿌듯함까지 가슴에 담고 말이다. 선선한 바람과 내 가슴속의 뿌듯함은 집까지 오는 직선코스를 마다하고 빙 둘러 조금 더 나를 걷게 했다.
집 현관문을 열자 여름답게 거실창으로 내리비친 햇살은 집안을 조금 데웠고 거실의 바닥과 커다란 테이블위의 먼지를 선명하게 보이게 하지만 다른 날처럼 그렇게 짜증이 나진 않았다. 그래도 거실에어컨부터 켜고 악마가 팔았는지 파가니니가 팔았는지, 어쨌든 악마와 영혼을 거래했다는 그의 날카로운 바이올린연주를 틀고 시원하게 찬물샤워를 하고 좀 전까지 내 안을 채워줬던 뿌듯한 만족감을 다시 끄집어 내었다.
다행히 만족감이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어서 파가니니에 의지해 눈에 거슬리는 먼지청소부터 끝내고는 항상 이 맘때면 여기저기서 공수되어 온 감자를 삶기 시작했다. 늘 이럴 때 망설인다. 껍질에 영양가가 많다는데 껍질째 삶을까, 껍질을 벗겨서 삶을까. 영양이 중요한지 식감이 중요한지, 이것은 건강을 챙길지 기분을 챙길지를 선택하는 단순한 선택일뿐이니 오늘은 기분을 챙기기로 결정하고 좀 귀찮지만 감자껍질을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벗겼다.
파가니니는 내 영혼까지 악마와 거래시키려는지 점점 현을 날카롭게 켰지만 악마에게 날 팔아먹든 말든 귀가 온통 음악에 쏠려 있으니, 아침부터 줄곧 쓴 글의 양과 번역의 퀄리티가 준 만족감이 사라지지 않은 내 감정까지 보태서 감자깎는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뿐 내게 어떤 힘도 요구하지 않았고 귀찮은 느낌도 전혀 없었다.
정신과 감정은 항상 행동을 지배한다.
다행이다.
이런 날이 자주 오지 않는지라 오늘은 이런 기분을 더 길게 느끼고 싶어진다.
내친 김에 읽고 싶었던 소설책이나 한 권 읽어볼까? 아직 5시가 되기 전이니 저녁을 하기까지 여유가 조금 있다. '나의 미카엘(주1)'을 책장에서 꺼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주2)'처럼 다른 영혼이 자신에게 개입하여 쓴 글은 어떨까? 남자인데 여성의 삶을 쓴 아모즈오즈가 내내 궁금했지만 읽어야 할 책들에 밀려 몇년째 책장에 꽂아둔 '나의 미카엘'이 갑자기 떠올랐고 오늘의 나는 평소와 다른 선택으로 이 책을 펼쳤다.
평소라 함은 '해야 할 것', 그러니까 읽어야 할 책을 잡거나 집안정리를 하거나 저녁찬거리를 먼저 만들거나 지쳐서 아무 것도 할 힘을 내지 못하고 축 늘어져 버리는데 오늘은 그냥 기분가는대로 선택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내게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내 방 커다란 책상에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아 선풍기를 트니 촌스러운 실내원피스가 촌티를 팍팍 내며 살랑거린다. '나의 미카엘'은 첫장부터 흥미롭다.
자기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강요당해서 썼다며 투정도 부리고
남자가 어떻게 여자를 아냐는 비판도 받았다며 너스레도 떨고
소설속 주인공인 한나와 매일 싸웠다고 꼬장도 부리고
그러면서 놀랍게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자랑도 하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부러움이 살짝 일더니 갑자기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오늘인데 이 시간에 소설책을 들고 있는 내가 좀 전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져
나의 평온무사한 일상에 대해, 나를 지배하는 내 안의 황량함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겨우 몇장넘긴 책을 덮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쓴다.
젊어서 나는 말괄량이였고 고집불통이었고 세련되었으며 화려한 멋쟁이였다. 수많은 부러움을 사고 사랑도 많이 받은,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들의 정반대에 서 있는지 늘 창공을 바라보며(나는 하늘을 아주 자주 바라본다. 아마 그리 또렷한 눈은 아닐 것이다.) 내 안의 황량함과 쓸쓸함을 가져가라 청한다.
사랑을 몰랐을 땐 사랑하는 힘이 넘쳤는데 사랑을 아는 지금은 사랑할 힘이 부족하다. 나는 온 대지를 품은 창공에게 나의 이 깊은 상념정도는 담아줄 수 있지 않냐고 자주 떼를 쓴다.
하늘은 내게 창공이지 허공이 아니다.
그래서 나를 맘껏 보여주고 마구 보내버리는 존재다. 허공에 뿌리지 않고 그렇게 창공으로 보내면 왠지 지나온 시간 속 미운 나도, 안스러운 나도 모두 사라지지 않고 품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시간들이 젊어서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토록 변화시켰는지는 알려고 들면 뭐라도 알아내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살다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늘 날 괴롭히는 기억이 있고 애써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아 괴로울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애쓰지 않고 따른다.
그러니 내 안에서 옹달샘처럼 멈추지 않고 샘솟는 쓸쓸함과 황량함과 덧없음의 이유를 굳이 찾지 않으며 하루하루 무사안일과 평온함과 사소한 일상이 주는 만족감에 자족하며 사는 편이다.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면 바다에,
뭘 갖고 싶냐고 물으면 하늘을,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글이나 쓰며 노닥거리는 한랭이가,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같은 사람들과 평생 책읽고 글쓰고 사유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소리나 해대는 내 말에
세상의 관념은 염세적이라, 이상주의라 치부하겠지만
날 품은 창공은 알 것이다.
내 안의 섬세하고 미세한 이 작고 강렬한 움직임들을...
젊어서의 나를 이토록 죄다 지워버리고서 황량해진 그 곳을 채우려 원소들이 흘리는 노동의 땀을...
그 많던 욕구들을 남김없이 거둬낸 쓸쓸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쉴새없이 두드려대는 영혼의 소동을...
화려하고 다채롭던 시간을 흘려보낸 공허한 공간에 바람보다 빠르게 자리차지하려 들이대는 서슬 시퍼런 사고의 날카로움을...
2024. 06.24. 오후 5:01분.
감자가 다 삶긴 듯하다.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겠다.
삶은 감자는 차게해서 먹으면 훨씬 영양가가 좋다는 썰을 들은 듯하여....
주1> 나의 미카엘, 아모즈오즈, 민음사
주2>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제인로버츠, 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