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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16. 2024

인내는 짧고 집념은 허술하며
끈기는 끊어진 당신에게

'어른의 정신'에 대하여

제대로 씌여진 책을 읽고 

내 삶에 접목시켜 

깊은 고뇌와 숙고의 시간을 보낸 후 

그것이 질좋은 나의 정신의 양분이 되면 

글로 풀어내는... 


이 치열한 하루하루의 행위들이 많이 버겁지만 버거움의 가장자리에는 쾌락이 두 팔벌려 나를 기다린다. 이 과정을 즐기려는 이들은 아주 많았고 지금도 여전하겠지만 대부분이 어느 지점에서 다시 원래의 익숙했던 자리로 방향을 튼다. 


내면을, 정신을 갈구하는 이들은 많지만

지속적으로 가꾸는 이는 소수다.


그들의 정신이 약해서인지 마음의 강단이 없어서인지 삶의 화려함에 길들여져서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다 귀찮은 것인지 내 알 수 없지만 집념, 끈기, 인내, 목적이라는 숭고한 가치의 미덕들을 명함에 쑤셔박기 위해 억지로 따낸 자격증처럼, 책상 뒤 반짝이며 날 빛내줄 감사패처럼, 한순간 뜨거웠지만 곧바로 바다에 던져버릴 지난 연애편지처럼 취급하는 이들에겐 자신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보다 세상에서 말하는 처세술, 도대체 인간의 위험이 본래 어디에 있으며, 도대체 무엇이 위험의 본질인지에 해답도 없는 충고, 식견, 세태에의 순응(주)이 훨씬 익숙하고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오류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내게 이따금, 아니 자주 말해왔다.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현실을 사는 자신에게 무책임한 시간낭비인 것 같다고, 

쓸데없는 데 골몰하며 가슴이 아픈 것이 힘들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쓸수록 현실의 자신이 자꾸만 잘못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러니 자기는 그냥 지금처럼 모른 채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가슴아파하며 하는 말이지만 '너도 그렇게 시간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현실을 살라'는 조소와 비아냥으로 내게 다가온 적도 많았다. 분명 자신들이 가야할 길, 이루고 싶은 삶, 바라는 목적이 분명했음에도 이들은 자신의 무의식적 자아가 외치는 소리에 반응하는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위험을 선택한 것이다. 자아는 깨질 때 비로소 자아가 되는 것인데 자아차단, 자아밀폐는 자아상실을 이내 경험케 하고(하지만 단단히 차단된 자아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경험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버린 주인에게 보란듯이, 귀중했던 시간을 낭비의 시간으로 전락시키고 정신이 추구했던 미래를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치부하도록 주인의 정신을 유린시킨다. 


물론, 이들도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이 꿈꿔왔던 내면의 소리에 맞장구를 치며 현실의 자아를 다소 불편하지만 미래와 연결시키려 했고 또 에피파니의 전율을 맛봤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의 인내는 짧았고 

그들의 집념은 허술했고 

그들의 끈기는 끊어졌다. 

짧고 허술하여 끊어진 그 지점에 '현실의 해답없는 오류투성이 충고'들은 강력한 자석이 되어 그들의 정신을 냅다 채가고야 만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지만, 

진정 자신으로 살고자 하지만,

현실의 자신을 자각, 변화시키는 과정에 있어

중심잡힌 정신을 갖는 건 불편하고 아파서 힘들고 싫다. 


그래서 비단 책과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위해 현실의 자신을 바라보는 무서운 두 눈은 반드시 요구된다. 

그 무서운 두 눈이 

정신의 안주와 감정의 사치, 지각의 무딤으로 인해 갈지자로 걷는 자신을 똑바로 걷게 해줄테니까.


진보가 더 악으로 향하니 그냥 그대로 정체한 채 사회속의 인간으로 머무는 상태가 최선인 사람.

상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을 산다는 이성주의자를 자처하는 것이 합리적 삶이라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

절망과 갈등은 청소년, 청년기에나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니 어른은 그러면 안된다는 오류에 빠진 사람.

소년소녀같은 상상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 시간낭비하는 유치한 이상주의자라 조소하는 사람.


이들은 모른다. 

이들은 

정신이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왜 영원한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청년기에는 이상에 자신을 맡기며 현실을 극복하고 나이가 들면서는 기억속 이상을 추억하며 청년의 이상 그 너머에서 더 깊은 희망의 고뇌를 겪는다는 사실을. 

지식이 청년기까지 그들의 지성을 지배한다면 초월적 지식, 지혜란 숫자와 비례하여 더불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추억 속, 또 남은 생의 이상과 희망이 배합되어야만 찾아온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 무엇이든 손쉽게 얻어왔던 것처럼 정신의 힘, 인격의 질, 지혜의 밀도가 결코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모르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고뇌하고 절망하고 희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치부하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생의 허리에서 가장자리로 가는 길에 정신의 힘이 삶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줌을 간과하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이러한 혼란과 갈등과 감정의 요동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생을 잘 끌고갈 정신의 질적양분이 필요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른의 오류이며 이 오류야말로 엄청난 위험이고 자만이고 삶에 비겁하다는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면에 있어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것이 자연히 상실된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사람은 세월이 감에 따라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조그만 정열, 감정, 상상력, 혹은 내면성을 상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비천한 인생관을 얻는지도 모른다(주). 


이렇게 희망과 상상과 초월된 이상을 점점 '나이'때문에, '체면'때문에, '어른'이라서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비천한 인생으로 날 몰고 가는 것일테다. 말 그대로 정신을 상실하고 살겠다는 더 위험한 인생을 예고하는 것일테다. 


그리하여 난 오히려 정신에 더 영양있는 양분을 제공하고 더 이상적인 꿈에 날 맡기고 신체의 노화에 비례하도록 정신의 생기를 추구하련다. 이것이 오히려 '나'의 자아에 더 근접해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현실에서 미래를 보고 걸었다면(to) 

중년이 된 지금은

미래로부터 현실의 나를 이끌며(from) 걷는다. 


유한성 안에서 생의 중반을 넘어간다는 것은 지난 인식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무한성의 의식세계에 나를 내맡기는 것이다. 뱀이 벗어놓은 허물이 그 자리에서 서서히 굳어가듯 내가 지나온 자리의 인식들도 나의 시간 속에 단단히 굳어 있을테다. 그것들의 오류나 잘못, 미천했던 결과들은 '후회'가 '자각'을 부여잡고 해방시키면 된다. 지혜의 옷을 입혀줄 from의 시선은 이러한 후회와 자각의 연합이 고립이나 은닉, 치부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젊을 때엔 우세한 신체에 덜 우세한 정신이어도 앞으로 뛸 수 있었지만 

중반이 넘어 노화의 시작에 선 지금은 덜 우세한 신체일수밖에 없기에 더 우세한 정신이어야 그나마 걷는다.

그러니.... 

배움에 게으른 자,

위험하다. 

배움에 게으르다는 것은 

의식적 각성을 외면한 것이며 

이 외면은 무의식에 자리잡힌 관성과 관념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에 내 삶의 진화는 멈추게 된다. 

진화가 멈추면 더 이상 갈 곳 잃은 인식은 고정된 상태에서 밀도를 높이고 채도를 강화해 순도를 잃는다.

결국, 자아는 본성적인 자신을 차단, 밀폐, 외면 그러다 상실해버린 주인에게 

인식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인

후회와 원망과 구속의 미래로 주인을 가격할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읽고... 쓰자.

나의 자아와 나의 삶이 융화되도록.


주> 키에르케고르선집, 키에르케고르,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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