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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24. 2024

손에 쥔 지도믿고 시머스의 구멍까지 가렴

Encore '엄마의 유산' - 9번째 편지

곧 출간을 앞두고 있는 '엄마의 유산'은 2023년 15편의 초고에 이어 2024년 30편의 편지로 다시 쓰여졌습니다. 


브런치 독자들에 의해 다시 재탄생한 'Encore 엄마의 유산'은 감사의 의미로 매주 요일 5:00 a.m. 1통의 편지씩 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엄마의 유산 북디자인은 호주에 거주하는 인기 브런치작가이자 아티스트 근아작가님의 작품입니다. 표지에 담긴 깊은 의미와 글 사이사이 삽입되는 일러스트도 앞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근아작가의 '엄마의 유산'은 매주 일요일 발행됩니다!



9번째 편지

[손에 쥔 지도믿고 시머스의 구멍까지 가렴]



네 인생에 반드시 거머줘야 할 것은 단 하나. 

네 인생의, 네가 가야할,

목적지가 표시된 지도 한장. 

  

다른 것은 손에서 다 놔버려도 된다.

다른 무엇을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

다른 무엇을 쥐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네가 걸어가야 할 방향, 목적, 표지

그저 네가 당도해서 서야할 그 자리.

그저 네가 맺어야만 할 꽃과 열매.

그리로 가는 

지도한장이면 충분하단다!


지금 네가 몇살이건 상관없단다. 지금 네 위치가 어떻든, 학벌이, 능력이, 부모가, 외모가, 돈이.. 뭐가 어떻든 상관없단다. 지도를 따르는 자는 무조건(그래, 무조건이다)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낼 준비가 된 셈이니, 아니 그 표지가 그려진 지도에 널 당도시키는 것이 우주가 네게 한 약속이며 넌 우주의 힘으로 네 인생을 키워나갈 수 있는 존재이니 네 환경이 어떻든 손에 쥔 지도따라 걸어보렴. 


어쩌면 이 지도 한장을 갖기 위해 그 어려운 공부해가며 그리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결국, '공부'의 이유는 '삶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잖아. 지금까지의 열심에 동반된 고통이나 불안, 이 모두가 지도 한장 손에 쥔 것으로 모두 보상이 된단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이 당도해야 할 표지가 그려진 아름답고 명쾌하고 선명한, 지도 한장이면 충분하단다. 다소 희미해도 괜찮고 구불구불해도 상관없어. 깊은 계곡이 있어도, 돌아가는 여러 갈래길이 있어도 그저 지도를 따르면 된단다. 


지도를 본 적이 있지? 

지도를 한 눈에 담아봐. 

길이 없는 곳은 없단다.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산으로, 물로, 길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지.  


지도를 본 적이 있지? 

가장 선명한 단거리를 알 수 있단다.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    


지도를 본 적이 있지? 

네가 가려는 목적지 외에도 놀라운 미지의 목적지들이 또 있단다. 

이 대륙으로 가려 했으나 저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눈이 트이기도 하지.    


지도를 본 적이 있지?

네가 가려던 그 목적지보다 더 크고 넓고 황홀한 지점을 알려준단다. 

이 대륙에서 저 대륙까지 가는 것이 네가 스스로 만든 한계라면, 더 갈 수 있다고, 더 광활한 대지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지.    


지도를 본 적이 있지?

네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사방으로 길이 뻗어있음을 보여준단다.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가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길 하나가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너무 많은 길이 있지.


그러니 너는  네 세상의 지도를 펼치고 네 목적지를 정하고 그 곳에 표식을 넣고 그리로 가는 너만의 길을 찾아 노선을 표시하거라. 이제, 모든 염려와 부정을 멈추고 네가 표시한 노선을 따라보렴. 지도에는 목적지를 향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걱정하지마. 세상이 알려줄거야. 단, 세상은 네가 대가를 치른 뒤에 알려준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놀리기도 하지. 하지만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고 결코 길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세상은 널 주시하고 있어. '이 길로 가기엔 넌 너무 약해! 이렇게 해도 안 떠나?'하며 널 시험하기도 해. '신은 자신이 선택한 자를 결코 응석받이로 두지 않고 시련을 통해 단련시킨다. 선한 사람은 강하게 훈련시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약한채로 둔다[1]'고. 


그러니 그냥 걸으면 된단다. 모든 역경은 널 지도의 목적지로 데려가기 위한 훈련인 것이니까. 

머뭇거려도 괜찮고 

늦어도 괜찮고 

멍청하게 한참 서 있어도 괜찮아. 

겁내도 되고 실수해도 돼. 

여긴가 저긴가 한참을 두드려도 된단다. 

우리는 이 과정을 '방황'이라고 하지. 


방황하는 자는 아름다워. 그냥 행선지도 없이 부유하는 것은 방황이 아니야. 아름다운 방황은 한걸음 더 내딛고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자신을 장전시키는 잠깐의 물러섬이며 그렇게 힘을 비축하는 너무나도 가치있는 여정이란다. 


방황하며 쩔쩔매는 그 시간조차도 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 

어쩌면 방황하지 않는 젊음이, 인생이 더 위태롭고 초라한거야.

'아프리카 진지바르에 고양이가 몇마리나 있는 세어보기 위해 지구를 한바퀴 돌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것이라도 하라. 그렇게 하다 보면 마침내 지금의 내부로 통한다는 '시머스의 구멍[2]'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3].


그렇게 네 손에 지도를 믿으렴. 

그렇게 시머스의 구멍까지 네 인생을 끌고가보렴. 


단, 의심은 하지 마라.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의심하지 마라. 

이것이 확신이고 믿음이란다. 


의심하지 않는 것! 

목적지로 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세상은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네게 선물하고 '의지'는 '방법'이 너에게 향하도록 이끈단다.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에서는 이같은 믿음과 의지를 '적나라한 의지[4]'라고 표현했지. 


네가 얼마나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 

네가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세상에 필요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길에서 의심보다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해. 


그러니 네 손에 들려진 지도 한장이면 충분하단다. 

그 표지로 가는 모든 조건들은 너의 강렬한 믿음이 자석이 되어 세상이 네게 가져다 줄 것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믿음이 흔들릴 때면, 오래된 방황에 힘이 빠졌다면 

오그만디노와 파올로코엘뇨의 책을 읽으렴. 

동화작가, 소설가에서 영성학자로 추앙받는 이 두 작가의 책은 엄마에게 아주 커다란 힘을 줬단다. 

오그만디노의 4가지 동화는 모두 읽고 파올로코엘뇨의 책 가운데 '연금술사'와 '아크라문서', '아처'를 읽도록 해. 여기 담긴 내용은 남들이 뭐라 하건 네가 너의 목적을 추구하고 그리로 갈 수 있는 강력한 정신으로 널 무장시켜 줄거야. 


책에는 항상 해답이 있단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지. 그러니 정답을 찾으려 말고 해답을 구하렴. 안가본 길의 정답이 네 머리에 있을리 없잖아. 그러니 그릇된 오답만 피해가면 그 자체로서 이미 해답의 길을 가는 셈이야. 주변의 누군가에게 넋두리나 하소연, 푸념할 시간에 책을 읽으렴. 그러면 네가 간절히 원하는 대답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네 눈앞에 등장할거야.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아주 간단해. 

누구나 목적을 향해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잡고 반복훈련을 위한 행동을 하지. 

여기까지는 아무나 누구나, 말 그대로 나이불문하고 해. 

어릴수록 더 잘하지. 

목적->목표->계획->행동 말이야. 


그런데 반복하여 훈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거든. 반복과 훈련에는 시행착오가 반드시 동반되니까. 여기서! 어떤 이는 '아, 내가 목표를 잘못 세웠나?', '이 길이 아닌가?', '다시 더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는데?'하며 과거로 돌아가서 손에 든 지도를 바꾸려고 하지. 하지만 어떤 이는 그저 행동만을 반복해. 손에 지도를 들기까지 이미 충분히 자신을 들여다봤거든. 그렇게 지도를 믿고 반복을 통해 자신의 힘을 키우지. 


잠깐 생각해보면 전자의 경우, 고심하고 고뇌하며 마치 자신의 삶에 진지한 듯 보이겠지만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의심하며 그 길을 회피하려는 비겁하고 게으른 사람이며 자기 내면의 큰 자아를 외면하는 약한 존재지. 반면, 후자의 경우, 생각없는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철저하고 확고한 맹목적인 신념아래 계속 전진하는, 부지런하고 자신에게 떳떳한, 적나라한 의지를 드러내는, 현실의 나대신 내면의 큰 자아를 승리로 만드는 존재란다.


결국, 전진과 후퇴, 성공과 실패로 갈라지는 지점은 '의심'이 등장하면서부터야. 

'의심'한다는 것은 마음이 둘로 셋, 넷으로 갈라져 있다는 증거야. 

즉, '믿음'의 부족이야. 


그런데 이상하지? 데카르트는 무엇이든 의심하라 했는데 말야. 이 말의 깊은 의미는 자기가 갈 방향에 대해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야.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나?',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일까?', '내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토록 간절한 것은 나보다 더 큰 의지가 나의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인데 내가 이기려 해도 될까?'와 같은 더 큰 네가 되는 것의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를 자꾸만 들여다보는 질문을 하라는 것이야. 


실제 데카르트도 삶의 근원을 파고드는 규칙들을 만들겠다는, 신과 영혼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명증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반복하여 행동했단다. 자신의 목적지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향하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심했던 것이지. 숱한 오해와 비판과 외면이 있었지만 결코 목적지를 바꾸지는 않았어. 그 곳으로 가는 경험을 쌓고 방법들을 깨우치기 위해 9년이나 방황을 하면서도 오로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지.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탐구의 깊이를 파내려갔지. 끊임없이 자기 속에 내재된 심정과 관념을 의심하면서...그 결과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근원적인 명제를 도출해낸 거야.   

 

성공. 앞에서도 말했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잖아.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야. 

지도. 

지도에 그려진 그 길. 

그 길을 가는 자체가 성공이야. 


아무리 늦게 가더라도 갈 수 있단다. 

방법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멈추지 말고 믿으렴. 

참을성있게 견디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너의 강인함을, 

묵묵히와 꾸준히를 이길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너의 지성을, 

목적있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자 가치라는 너의 신념을, 

그렇게 너는 너보다 더 큰, 지금 네가 몰라보는 더 큰 너를 스스로 끄집어낼 수 있는 존재임을.


혹시 아니? 

네가 아는 너보다 네가 더 큰 존재일지?


안가본 길을 가는 것에는 안해본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 이미 나와 있는 방법안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야. 안가본 길이니까. 현실에 해답이 없으니 미래인거지. 그러니 지도를 보면서 이미 네 안에 존재하는 방법, 가령, 바다를 건너려면 배를 타야 하네, 와 같은 '이미 아는 것'들을 염두에 두지마. '배를 타야 하네-> 어떤 배를 타지?-> 비싸네, 오래 걸리네-> 그러면 어떻게 돈을 벌지? 다음에 갈까? 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 와 같이 이미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를 꺼내들면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게 돼.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두려워지고 하기 싫어지고 안해도 그만이고...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과정에 머물러. 

이는 방황이 아니라 포기를 위한 변명찾기에 불과해. 마치 오래동안 심사숙고하는 신중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성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변명만 찾아대는 어리석은 사람이야. 방법을 모르겠다고 징징대는 것은 모순에 빠진 바보같은 짓이야. 가보지 않은 미지의 미래를 걸으면서 현실에서 방법을 찾는 한심한 행위는 하지 않길 바란다. 


네가 가고자 하는 길. 

그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방법은 세상이 알려줄거야. 

그러니, 현실에서 네가 알고 있는 그 안에 방법은 없어. 

없으니 찾지 마. 

새로운 길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그저 한걸음 떼고 또 다시 한걸음 떼고. 

그렇게 묵묵히 가. 

무언가를 찾아낼 때까진 하던 것을 계속 해. 


그러다 보면 너는 너도 몰랐던 비밀들을 알게 되지. '아! 나에게 이런 면이?' 한번도 꺼내쓸 기회가 없어서 너조차도 몰랐던, 비밀스럽게 묻혀 있던 너의 면면이 드러나게 돼. 의지의 제복을 입은 너의 미세한 영혼의 감각세포들이 바로 이런 일을 하는거야. 그리고 또 있어. 가다보면 '아! 이런 방법도 있었네!', '와우! 여기서 이 분을 만나게 되다니!' 와 같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기운들도 네게 끌려올거야. 그러니 너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매일 너를 연마하기만 하면 돼! 

무엇으로? 

믿음으로! 

믿음은 네 안의 모든 의지를 연합시키고 의지는 너를 행동으로 이끌며 행동은 의지의 힘을 모으지. 


많은 사람들이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면 거기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높이높이 탑을 쌓고 자기 내면이 갈구하는 삶과 점점 멀어져. 심지어 내면과의 경계마저도 한계로 인식하고 그것이 자기 운명이라고 한정짓는 것 같아. 자신을 스스로 그만한 크기로 규정짓는 것이지. 그런데 인간의 내면은 무한하잖니. 자기 자신을 겨냥해서 노는 것만큼 고상한 놀이가 어디에 또 있겠니? 


너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라

그러면 너의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천개의 지역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한다면 마음 속 우주지리학의 전문가가 될 것이다[5] 

지도 한장이면 충분하단다.

지도를 믿는 마음이면 충분하단다.

아름답게 방황하며 묵묵히 걷는 자세면 충분하단다.

네 머리속이 아닌, 세상이 알려준 새로운 방법과 방식에 순종하면 충분하단다. 

너도 몰랐던 더 큰 존재인 너를 탐험하고 그 자체에 한계를 두지 않으면 충분하단다.


이미 모든 것이 널 위해 준비되어 있어. 너는 무엇이든 가질 권리가 있고 어떤 욕구라도 성취할 자격이 있단다. 원하고 믿고 걸으면 된단다. 이는 비단 엄마의 말이 아니라 많은 사상가, 철학가들이 강조하는 가르침이야. 


세상은 너의 명령을 기다리고[6] 있으며 언제든 네가 원하는 세상의 문은 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것이야. 이는 우주의 약속[7]이란다. 



[1] 인생철학이야기, 세네카, 2017, 동서문화사

[2] 1818년 존 클리브스 시머스(John Cleves Symmes, 1780~1829)가 '나는 지구의 속이 비어 있고 그 안에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지구 속에는 몇 개의 단단한 동심구가 존재하며 각각의 극 부분은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3] 월든, 헨리데이빗소로우, 2017, 열림원

[4] 무지의 구름, 작가미상, 1998, 바오로

[5] 윌리엄해빙턴(1605-1664)의 '나의 명예로운 친구, 기사 에드'에서 발췌

[6] 네빌고다드의 저서, '세상은 당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009, 서른세개의 계단).' 제목인용

[7] 여기가 끝이 아니다. 린 그라본, 2021, 나비스쿨

[지담연재]

월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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