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11번째 편지
잠깐 네 주변을 둘러볼래? 온통 네모야! 창, 책, 노트, TV, 핸드폰, 노트북, 티슈, 식탁, 봉투 등. 엄마는 네모가 참 좋다! 빛을 전해주는 창, 정신을 살찌우는 책, 내 속내를 담은 노트, 상상을 불러오는 브라운관, 세상의 소식을 듣고 엄마의 소중한 글이 모두 담긴 노트북, 사랑하는 너를 보고 듣게 해주는 핸드폰, 모든 걸 깨끗하게 닦아주는 티슈, 맛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식탁, 뭐든 가득 담아내는 봉투...
그러고 보니 주변이 거의 네모더라구. 방도, 책상도, 포스트잇도, 인덱스도 다 네모야. 당연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 그냥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별로 관심두지 않았던 것들인데 어느 순간 찬찬히... 깊게 들여다보다가 너에게 해줄 말이 생각났어.
네 시야에 포착된, 네 손에 닿은, 네 곁에 그저 그렇게 놓인 것들을 단순한 사물이라 여기지 말고 하나하나가 너와 만나는 순간, 어떤 의미를 갖게 된다면 네 인생이 훨씬 재미나고 풍성해질 것 같아서 말야.
앞서 지식만 쌓는 것은 오히려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우려가 될 수 있음을 얘기했는데 이번 편지에선 진짜 삶의 지식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많은 사물들 가운데 너에게 무한의 경험을 줄 수 있는 2가지를 얘기해볼까 해.
물론, 엄마의 머리속, 일상속의 경험들을 꺼내놓는 것인데 바로 노트북이나 핸드폰, 그리고 책이야. 여기서는 TV나 노트북, 아이패드, 핸드폰 모두를 그냥 핸드폰이라고 할께. 우리는 어느 새 이것들에 종속되어 버린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이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지. 지금 시대엔 이렇게 사는거지. 많은 사람들이 신년이 되면 핸드폰 사용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글쎄... 얼마나 지켜질까? 엄마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
굳이 그 재미난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줄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핸드폰이 내 인생에 일단 깊이 들어와 있다면 굳이 줄이는 방향 말고 제대로 영향을 미치도록 잘 사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네 에너지를 어딘가에 쓰는 것인데 있는 물건 안쓰려 애쓰는 것보다 있는 물건 제대로 효과적으로 쓰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지. 전자는 소모, 소비라면 후자는 축적, 투자가 되겠지.
오전 수업을 다 끝내고 엄마는 오늘도 영화한편을 봤어. 그리고 후다닥 점심먹고 이제부터 글쓰기에 몰입하려구!! 네가 살면서 겪은, 그리고 겪을 경험들은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고 한정된 것들이란다. 물론, 그 경험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평범한 부모의 울타리안에서, 한정된 사람들 안에서, 이렇게 좁게 만들어진 너의 범주에서 쌓은 작은 경험들에는 무조건 한계가 있단다.
하지만, 네가 살아야 할 세상은 이미 international을 너머 global, 아니 우주까지 진화한 세상이야. 이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기에는 시간이나 공간, 비용면에서 너무나 제약이 많지. 그래서 간접경험이라도 네게 무한의 세상을 경험시켜 줄 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드라마와 영화인 것 같아. 많은 엄마들이 '머리'속에 무언가를 넣는 것에는 집착을 너머 집요하면서도 가슴속에 무언가를 넣는 것은 치부하거나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데 말야.
사람은 가슴이 뛰어야 머리가 다리에 명령한다!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어떻게 열심히, 자기 자신을 파괴시키고 극으로 몰고 한계를 극복하면서까지 하겠니? 가슴이 뛰어봐야, 그 쾌감과 전율의 감각을 느껴봐야, 계속해서 맛보고 싶어하거든!
그렇게 네 시야에 네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를 자꾸만 등장시켜.
그렇게 쾌감에 전율해보고 그것이 네 머리속의 질서들을 파괴하면서
아! 이거였어?
이런 게 있어?
이렇게도 된다구?
에피파니[1]를 느끼게 해야 해!
그 느낌!
그 최고의 전율은 네게 통찰이나 직관, 그리고 초월된 지식을 선물할거야!
수많은 경험들이 있겠지만 영화나 드라마가 비교적 손쉽게 강렬한 자극을 전해줄 수 있는 도구같아. 물론 어떤 영화, 어떤 드라마를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선택이야 개인의 개성에 달려 있겠지. 성향과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그저 네가 원하는대로 보렴.
단, 하나에 중독되지 않는 정신으로 봤으면 해.
중독은 완벽한 치우침이야.
그렇게 되면 치우침에 감춰진 이면이 힘을 쓰지 못해서 삶 자체가 치우치게 돼.
그러니 너의 취향? 성향?은 말 그대로 취향이고 성향이어야지 편협이나 중독으로 함몰되서는 안될 것 같아.
사실 지금과 같이 OTT[2]가 엄청난 창작물을 쏟아내는 시대에 뭘 봐야할까에 대한 대략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기', '재미', '광고', '요약된 영상'들을 보며 선택하곤 하는데 그 이면에는 엄청난 자본주의의 힘이 움직여. 많이 광고하면 많이 보게 되지. 많이 봐야 많이 버니까. 그래서 엄마는 주로 믿음직스런 감독과 배우가 선택한, 그러니까 그들의 작품선택을 믿고 그들의 것을 주로 봐.
왜 알잖아.
이런 배우가 선택한 작품이면 재미를 떠나 의미가 있을거야.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면 광고를 떠나 권고할 무언가가 담겨 있을거야. 싶은 기준말야.
로맨틱 멜로를 보면서 감정을 읽고 법정이나 수사, 의학쟝르를 보며 소신을 배우고 역사극에서는 책에서 부족한 서사들을, 그리고 공상, 상상이 펼쳐지는 판타지를 통해 과거나 곧 현실이 될 미래로도 떠나봐. 극에 등장하는 '가정'을 보며 다시금 '정(情)'을 알게 되고 '조직'을 보며 '이해관계'를 염탐하며 '사회'를 보며 위계와 서열, 그리고 구조와 힘에 한탄하기도 하고 '국가'를 보며 뜨거운 가슴을 느끼기도 하지.
'세상'을 만나면 가보지 못한 그 곳을 염원하기도 하고 '자연'을 만나면 신이 네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함을 알게 되고 '우주'를 탐험하면서 우주 속 작은 점에 불과한 너와 직면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너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지. 라이온킹, 토이스토리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이러한 스토리와 영상이 주는 무한상상과 아름다운 감성이 인간사회를 아직도 따스하게, 순수하게 유지시키는 원동력이구나도 느끼고 또 '쉰들러 리스트', '아름다운 인생'과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눈과 귀로 경험하고 한 사람의 소신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감동하길 바래.
엄마는 20대에 스탠리큐브릭, 팀버튼, 히치콕, 키에슬로브스키, 레오까라 감독들에 심취했었고, 왕가위의 등장에 박수를 보냈고, 스필버그에 놀라면서 영화에 빠져 들었었지. 영화광이었던 엄마는 영화한편을 꼭 4번씩 봤었단다. 처음엔 그냥 스토리를, 두번째엔 감독의 의도를 중심으로, 세번째엔 영화음악을 느껴가며, 마지막엔 다시 복합적으로 전체를 감상하며. 그렇게 영화는 엄마에게 갈 수 없거나 가보지 못한 시대와 세상, 만날 수 없는 인물들, 결코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감성들을 경험시켜줬어.
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고 또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엄마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니 여기서는 네가 앞으로 접하기를 바라는 책들을 소개삼아 그저 나열할께. 한사람한사람의 성현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그들의 가르침이 네 삶에 조금씩 체화되길 바래. 한순간 유명한, 훌륭한, 뛰어난 사람은 많아. 하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성현들은 소수야. 여기 적은 책리스트만은 네가 꼭 읽길 바래. 분명 네 정신에 굵고 단단한 체계를 세우는 맥이 되어 줄거야.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삶을 위해 네게 장착해야 할 기본자세들을 체크하고
소로우를 만나 소신있는 자연주의적 삶을 체험하고
에머슨을 만나 자기만의 철학을 스스로 배워, 채워, 세워보고
세네카를 만나 인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아보고
릴케를 만나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느껴보고
나폴레온힐을 만나 성공이란 단어의 실체와 깊이, 방향을 인지하고
귀곡자를 만나 처세술을 배우며 진정한 관계의 묘수를 익히고
올더스헉슬리를 만나 방대한 지식을 하나의 궤로 꿰는 위대한 통달도 경험하고
루크레티우스를 만나 세상이 움직이는 기본 중의 기본원리르 터득하고
에피쿠로스를 만나 궁극의 쾌락에 동의와 동감을 보내고
알랭드보통을 만나 인간의 언어가 주는 아름다운 조화도 느껴보고
파올로코엘뇨를 만나 현실감있는 통찰도 경험하고
스웨덴보그를 만나 함께 영혼의 영적세계를 탐험하여 너의 인식을 깨보고
리차드파인만을 만나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도 따라하고
오그만디노를 만나 두루마리 비법을 전수받고 아카바같은 별친구도 만들고
톨스토이나 괴테를 만나 네 인생의 서사가 철학이 되는 소중함도 깨닫고
몽테뉴를 만나 신사의 철학속에서 네 삶의 채색과 결을 점검하고 다듬고
네빌고다드와 월레스와틀스를 만나 천재의 단순함과 부(富)를 가치를 배우고
나심탈레브를 만나 사회를 이롭게 하는 학문의 맛도 느껴보고
데카르트를 만나 네 또래 그에게 네 정신을 맡겨 이성과 논리의 가닥을 잡고
제인로버츠를 만나 열세한 개인의 위대하고 신비로운 사상도 접해보고
발타자르그라시안를 만나 네가 아는 지식을 모두 내려놓고 지혜를 구해보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만나 따끔한 회초리 한대 부탁드려보고
크세노폰을 통해 키루스를 만나 최고의 리더십을 익혀보고
칼릴지브란, 예이츠, 세익스피어, 블레이크 등의 문학에서 소멸되어 가는 감성을 다시 호출해보렴.
책은...너의 영원한 친구이자 스승이란다. 친구란 오래된, 만나면 좋은, 가끔 사는 얘기나 나누는. 그런 존재라기보다 너의 동반자로서 삶의 길을 함께 걸으며 삶의 결을 온화하고 깊게 다듬고 언제든 네게 필요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해. 책이 네게 친구이길 바란다. 책을 친구로 삼으면 더 없이 소중한 여럿의 친구들을 네게 소개시켜 줄거야. 자연과 우주와 세상과 신과 책속의 다양한 인물들이 모두 너의 삶 곳곳에서 교제를 청한단다. 그렇게 네 인생에 스며들어 살면서 결코 너를 외롭게 하거나 비탄에 빠지게 하거나 과거에 잠식당하게 하거나 현재에만 몰두시키거나 허상같은 미래를 그리게 내버려두지 않지. 정말 소중한 친구는 너만의 삶에 네가 잘 어울리도록 이끌어 준단다.
매일 해야할 것들을 벗어나 네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디지털과 꼭 친구로 삼길 바라는 책과 같은 아날로그 세상속 수많은 경험들을 모두 네 것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미래는 기억속에 있지 않고 앞으로 네 기억의 공간을 채워줄 것들이지. 네 경험은 네 기억으로 남겠지. 영화를 비롯한 극속의 간접경험들이 네 기억의 양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책은 풍성해진 기억속, 미진하거나 불안정한 틈새를 찾아 단단하게 이음새를 만들어 준단다. 그렇게 네 정신 속의 기억들이 올곳게 단단하게 채워지길 바래.
행운과 기적은 미래에 있지 과거에는 없어. 네 걸음 앞에는 수많은, 엄청난 크기의 행운과 기적들이 대기중이야. 네가 원하는 미래가 너를 기다리며 두 팔벌리고 기다리고 있어. 세상은 네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기저기에서 네게 신호를 보낸단다. 그 신호는 네가 경험하는 직,간접적인 현상, 사물들속에 하나씩 담겨져 있어. 그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연결시키면 그것이 기적으로, 운으로 네 앞에 등장한단다.
그러니 네게 가까이 있는 것들, 당연하게 여기는 소소한 것들을 항상 귀하게 여겨야 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아는데도 미루고 멀리하던 습관에서 가까이 하는 습관으로의 변화는
결국 행운과 기적같은 신비로움에 너를 데려가는 유일한 길이란 걸 꼭 명심하렴.
[1] 에피파니(epiphany) : 초자연적인 것의 출현, 현시(顯示), 강림(降臨)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갑작스럽고 현저한 깨달음 혹은 자각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과학적으로 획기적인 성과 혹은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발견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떤 문제나 현상을 더욱 새롭고 깊은 관점에서 이해했을 때의 계몽적인 깨달음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사용될 수 있다.(위키피아 발췌)
[2]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교육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화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수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