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10번째 편지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결혼생활도 괜찮았고 게다가 부유했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던 톨스토이는 그의 고백록에서 '사람이란 소중한 무언가를 믿기 때문에 사는 것[1]'이라는 결론을 내렸단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엄마 역시 너희들 키우면서 뒤늦게 무의미한 삶에 방황했던 시간들이 깊고 길었던지라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살고 있지. 산다는 것은 나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 나를 알고 내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믿음의 카펫 위를 묵묵히 걸으며 나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것이라고.
어쩌면 우리가 너무 지식과 물질위주의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해 벼락을 맞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 많이 배우고 많이 벌기 위해 정말 누구보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산 엄마세대. 그 삶의 방식이 거름망없이 통과되어 그대로 너희들에게까지 전해진 듯한 안타까움이 크지.
이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데 이같은 감정을 젊은 네가 깨달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 성급한 듯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네게 누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네게 무상으로 주어진 시간과 자연, 그리고 환경을 맘껏 사용하면서 너만의 길을 찾고 너의 뜻을 펼치고 너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란다.
물질에 대한 추구는 수많은 인재들을 '전문직'이라는 함정 속에 빠뜨리며 영혼없는 자본주의의 노예를 생산했지. 그리고는 지금 마치 레밍(lemming)쥐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너희 모두를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듯해.
스스로 레밍쥐를 자처하며
너도나도 비슷비슷한 직업을 추구하고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비슷한 스펙을 위해
비슷비슷한 능력으로
고만고만한 경쟁을 위해
고만고만한 시야로
다같이 같은 방향으로 앞만 보고 달리며 결국 다같이 함정에 빠지고야 마는....
혹여 그 속에서 이탈되어 자신이 꿈꾸는 삶을 만날까봐 오히려 두려워하는...
모순과 역설에 빠져 있지만 그것이 정상이라 착각하는...
각자의 개성은 '불안정'이라는 3글자로 너무 쉽게 무시되어 버리는 시대.
그런데 말이다.
이제 '지식의 저주'에서 풀려나야 할 때란다.
이미 알고 있듯이 지금은 '뉴노멀(new normal)' 시대지. 새로운 표준으로 기준이 바뀌고 '파괴적 혁신[2](disruptive innovation)'이라 불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위협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격동의 시대이며 낙관이 통하지 않는 시대, 과거의 영광을 돌이킬 수 없는 시대, 영원한 위기의 시대. 이것이 네가 살아갈 시대의 현주소[3]야.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지.
쉽게 말해, 상점이 없어도 온라인으로 판매가 가능하고 저가경쟁이 아니라 공짜와 경쟁해야 하고 유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서비스, 즉 무형의 질적 수준을 논해야 하는, 그야말로 철저히 기존의 상식이 파괴된, 개인의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와 창조성이 최고의 자원으로 등극된 시대가 된 것이야. 이제 예측이 아니라 현실인거지.
'새로운 시대가 온다(A Whole New Mind)[4]'로 유명한 미래학자, 다니엘핑크(Daniel Pink)는 우리가 왜 새로워지고, 창조적이지 않으면 안되는지의 이유를 '3A'로 요약했어. Asia(아시아), Automation(자동화), Abundance(풍요).
이제 현실이 된 이 3단어를 그래도 잠깐 언급하자면, 인도 등 아시아의 신흥인력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엔지니어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인력초과 현상이 일어나 이들의 임금은 결국, 평균수준 정도로 하락했어.
그러니,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또 찾아야 하고 게다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재, 창의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테고 물질풍요 시대에 인간의 욕구는 더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를 거부하고 잠재된 욕구를 읽어내는 창의적 인재야말로 시대가 필요한 인재라는 것이지.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절대 레밍쥐[5]가 되서는 안돼. 레밍쥐의 DNA에는 앞으로 달리는 것밖에 없나봐. 지금 네 주변을 봐봐. 인간의 DNA가 아니라 레밍쥐의 DNA를 가진 자들이 많이 보일거야. 앞에서 뛰는 쥐의 꽁무늬를 놓칠까 봐 무작정 앞만 보고 뛰는 레밍쥐. 모두가 취직하려 난리고 자기 개성으론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자신의 천재성'은 펼쳐보기도 전에 창고에 가둬버리고선 남들만큼 사는 것이 자기 꿈이 되어버린, '행복이 별건가요?', '돈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꿈이요? 일단 취직부터 해야죠.' 자신이 미래를 설계하려기보다 정해진 몇개의 길안에 자신을 구겨서라도 넣고야 말겠다는 말도 안되는 사고방식이 너희 세대에 주입되었어.
그렇게 앞만 보고 옆사람보다 조금 빨리 당도한들...
낭떠러지야.
그렇게 죽으라 공부했는데
고생끝에 낙(樂,즐거울 락)이 오기는 커녕
N포세대, N잡러가 되는,
고생끝에 낙(落,떨어질 낙)이 되는 세대.
그러니
잠깐 스스로에게 질문해볼래?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서 있지?"
네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대해 너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면 잠시 멈춰.
그냥 멈추라구.
조금 비굴하게, 비겁하게 보여도 괜찮아!
부모님께 말씀드려.
나의 꿈을 위해 조금만 도와달라고, 내 꿈을 펼치기 위해 도끼날[6]을 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러한 잠깐의 비겁과 비굴은 결코 부정이 아니라 더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의도된 물러섬'일 뿐이니까!
그렇게 네 손에 든 지도를 펼치고 너의 길을 걸어야 해. 낙타처럼 앞무릎을 꿇고 네 삶에 명령된, 합당한 짐을 당당히 등에 싣고 뚜벅뚜벅 걸어야 해. 스스로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러한 너의 가치가 작은 점만한 크기로라도 세상의 변화에 일조한다는 믿음이 네 안에서 싹을 틔울 때 진정 너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너는 네 소중한 삶을 남의 것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란다. 어디선가 들은 얘긴데...사람의 신체는 심장이 멎을 때 죽지만, 사람의 영혼은 꿈을 잃을 때 죽는대. 그래서 꿈이 없는 사람은, 즉, 사명과 신념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는 시체라고 하나봐. 너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 그리고 인식의 창고에 너의 꿈을 당당하게 꺼내렴. 그 어두운 심연에서 간절하게 너를 기다렸던, 네가 들여다보지 않을까 한껏 움츠리고 있는 너의 꿈을 세상으로 내보내렴.
지식이 꿈을 만들게 하기보다 꿈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쌓아보자. 지식,
즉 능력의 차이는 5배에 불과하지만 의식의 차이는 100배가 넘게 무한정한 차이[7]를 만들어.
그만큼 지식위주의 시대는 너의 의식, 영혼을 말살하고 너를 평준화시켜 고만고만한 사람이 되게 해버리는 함정이란다.
아는 것이 사는 것으로 체화되어 네 삶이 되지 않는 한 넌 영원히 악마가 걸어버린 지식의 저주에서 헤매게 돼. 아주 무서워. 알만하면 세상이 변하고 또 어찌어찌 자격증 하나 따면 또 세상은 널 버리고 저만치 앞서 가있지. 그만큼 급변, 예측불가한 사회에서 지식에 이끌리는 신념은 쓰레기통에 쳐넣어 버려야 해. 네 능력을 숫자화시키는, 마약같은 공모전나 자격증에서 과감히 등을 돌려도 괜찮아!
유명한 잡스는 어려울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능력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 나 스스로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8]'이라 했고 나심탈레브도 노동을 파는 노동인간과 아이디어를 파는 아이디인간을 구분짓고 자신은 아이디어 인간이 되기로 했다고 선언[9]했으며 버진그룹의 리처드브랜슨 역시 '나는 때때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는지, 그 속에서 행복한지를 스스로 묻는다. 그것만이 유일한 잣대다. 만약 즐겁지 않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들이 너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면, 이들의 말을 한번쯤 귀담아 들어보는 건 어떨까? 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지식'보다 '꿈'을, 자신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라고 말하는 걸까? 그렇게 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쫒아온다고, 아니 그렇게 해야 시대에 맞게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런 말을 진부하다고 간과하지 말고, 시대가 변했음을, 그래서 다른 류의 인간을 -이를 신인류라고도 하더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렴.
지식, 즉 능력은 세상에 차고 넘쳤으니 이제는 지식의 가치를 더 높게 고양된 정신과 결합시켜 인류를 위해 자신을 사용할 인재가 필요한 것이지. 이를 우리는 미덕(virtue)이라고 해. 지혜(wisdom)라고도 하고 의식(consciousness)이라고도 하지. 칙산트미하이는 ‘아무리 좋은 조건일지라도, 이 시대가 지향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지식만으로는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야 하는데 이는 지혜의 특별함으로 가능하다[10].’고 했어.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알면서도 모르고(know all-know little) 심도 깊은 이해를 하면서도 불필요함은 없애고(dive deep-fly high), 순간과 전체(now-not now), 복잡함과 단순함(complexity- simplify),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면서도 타인을 고려하는(only me-no me) 등 상반된 모순(paradox)을 모두 포용하는 사람'[11]이야.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지식과 감정 모두를 통합하여 지식의 해독력으로 자신을 운용하는 사람이지.
자, 얘기나온 김에 지식만 믿고 까부는 사람들을 현시대 지능연구의 최고라 불리는 로버트 스턴버그(R.Sternberg)가 제발 이제는 지식믿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며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 5가지'를 알려줬는데 잘 읽어보렴.
나는 지식이 많으니 뭐든 알고 있다고 믿는 오류야.우스갯소리 한마디 할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게 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래. 그런데 더 무서운 자는 모르는 그것에 소신이 있는 사람. 더더더 무서운 사람은 무지한 소신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람! 우습기보다 무섭지? 한 마디로 '지식믿고 까부는 사람 =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이지.
얼마나 무섭니? 사고가 경직되었다? 굳었다는 거잖아. 돌처럼 단단하게.
그것도 지식이 많을수록 더 크고 더 단단한 돌이 된거야.
깨야 할 필요도 못 느끼고
깨려니 아플 것 같고
그러니 주장을 하기 위해 목소리는 커지고 우기고
게다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봐야만 자신이 우위에 서서 인정받는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의 잘못은 타인에게 있다고 주장하지. 자기는 다 알기때문에 자기 잘못은 없다는거지. 네 주변에 너무 많지? 그런 사람? '잘난 사람'들 특징이기도 해. 이들은 늘 변명하기 바빠. 그렇게 많이 배우고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그렇게 좋은 옷을 입고 그렇게 근사하게 말하지만 다 변명이야. 변명이 습관으로 고착되면 사회의 악이 되지. 아는 것은 진짜 많은데 그 지식의 대부분이 해로운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지.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다소 영적인 느낌을 주지만 어떤 사람인지 딱 감이 오지? 자기는 공부도 너무 잘했고 S대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자기는 다 안다고, 그러니까 덤비지 말라고, 까불지 말라고, 얕보지 말라고, 나는 못하는 게 없다고. 또 이렇게도 표현해. '내가 다 알아서 해줄께.' S대를 나오면 뭐하니.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오히려 자만만 가득해서 다른 이들을 자기보다 못한 존재로 바라보고 사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지.
특히, 국영수를 잘해야 하는, 죽으라고 공.부.만 해야 좋은 대학가는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에서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이런 자만에 빠지기 쉽지. 자만은 자기만 모르는 치매이며 베푸는 영혼이 없을 때 서둘러 침입하는 퇴보[12]이며 자기통제밖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간질병[13]인데 스스로를 그런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 창날을 가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는 사람은 실상 자신을 겁쟁이[14]로 여기기 때문이란다.
무적의 불사신. 단어는 좀 우습지? 자신은 천하무적이라는 거야.
내가 어느 대학출신인데!!
내가 난데!!!!
내가 누굴 아는데!!!
내가 어디어디 다니는데!!!
내 직업이 뭔데!!!
다 덤벼!!!
뭐 이런 거지.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서운 게 없는 사람. 자신감이 넘치는 게 아니라 자존심만 강한 바보. 그래서 자기가 바보니까 남들도 바보로밖에 보지 못하는, 참으로 불쌍한, 어쩌면 배운 건 많은데 자기가 어디를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지. 공부 잘 한다고 오냐오냐 키워지면서 얻은 혜택이 오히려 삶의 무능함을 이끈 것이야. 이쪽이 기울면 반드시 저 쪽이 들고 일어나는 법이란다.
자, 스턴버그가 말한 지식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공감이 되니?
중요한 것은 지식이 많은 것이 사단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만 많은 것이 사단인게지.
지식이 많은 것은 바람직한거야.
지혜의 기본도 지식으로부터야.
기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고체계가 제대로 구성되면 지능(intelligence)이 되고 지능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진리를 쫒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르며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란다. 지식, 능력을 우습게 보거나 필요없다는 식으로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능력의 한계에 갇혀 버리는 저주에 걸리지 말라는 말이란다.
지식이 ‘알기 위한’ 기능이라면 지혜는 ‘아는 것을 옳은 방향으로 실천’하는 기능이지(Liew[15] 그림 참고).
지식과 능력은 반드시 '비교'를 전제로 해.
시대에 맞게 누구보다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떤 기준에 따라 높은지 낮은지 '비교'되지.
그리고 지식은 각론에 불과하다. 이론으로 대변되는 지식은 각론이기에 총론안에서 소멸, 변화될 수밖에 없어. 따라서, 총론을 이해하지 못한 지식은 무조건 새로운 지식에 의해 소각될 운명에 처하지.
또한, 지식과 능력은 경쟁의 함수 속에서 오히려 빛이 나기에 감정을 파도치게 하는 바람같아. 누구보다 잘하면 우쭐하다가 누구보다 못하면 좌절하는. 최고가 된 듯한데 더 잘난 놈이 나타나면 밀려난 최고는 세상의 눈밖에 나버리지. 그래서 결국, 지식은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원인이 돼. 지식이 많으면 자신감, 열정, 의욕, 성취감 등등 모든 것들이 널 위로위로 올리며 자극하다가 갑자기 너보다 더 뛰어난 놈이 나타나는 순간 자신감은 좌절감으로, 열정은 무기력으로, 의욕은 비참함으로, 성취감은 패배감으로 변해버려. 지식은 감정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수지간같아. 그러니, 지식은 활용도구일 뿐이니 더 높은 정신활동을 통해 너의 머리속 지식과 가슴속 감정을 제대로 이해, 해석,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조감도를 그리고 건물의 못을 박는 이나 숲의 토질을 알고 나무를 심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 그리고 자신만의 본성을 알고 그에 맞는 지식을 습득하는 이가 되길 바래. 이렇게 교육열이 높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너나 나나 다 지식이 많단다. 알만큼 안단다. 그러나, 지식의 저주에 빠지지 않으려면, 혹 빠졌다 하더라도 얼른 함정에서 나오려면, 네가 사랑하는 일을 찾고! 네가 사랑하는 그 일이 세상을 위하는 위대한 일이라는 믿음을 먼저 가지길 바란다.
이러한 믿음없이 살기에 네 인생은 너무나 아까워.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렇게 재밌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어지나요?'라고 말한 것을 잘 생각해보렴. 물론 이들 모두가 어려운 과정, 고통스럽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보내어 얻은 결과지. 하지만, 그 고통스런 과정 자체도 이들에겐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었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던거야.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삶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
자신의 삶이 가다 보면 솟구치는 지점을 만날 것 같은 믿음이 생기거든.
고통은 반드시 이면에 쾌락을 동반한단다.
그러니 제발
네가 원하고 세상이 네게 원하는 그 일을 위해 네 젊음의 즙까지 짜내어보렴.
네 정신의 정수에 '너의 존재가치'를 단단히 고정시키렴.
그렇게 거대한 우주의 퍼즐 한조각이 되렴.
우주는 딱 너여야만 하는 퍼즐의 위치와 크기와 모양을 마련해 두었단다.
우주 전체에 단 1사람, 무조건 너여야만 하는 그 자리는 반드시 존재한단다.
그러니 네 정신속에 수많은 지식의 파편들이 하나의 퍼즐조각이 되도록, 섞고 뭉치고 솎아내서 그 퍼즐이 완전체 속에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너의 지식을 의심하고 새로운 지식을 투입하여 초월된 지식을 지닌 지혜로운 사람이 되렴.
[1] 톨스토이, 고백록, 2018, 현대지성
[2] 파괴적 혁신 : 미국의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1997년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
[3] 혼창통, 이지훈, 2010, 샘앤파커스
[4] 새로운 미래가 온다, 다니엘핑크, 2007, 한국경제신문
[5] 레밍쥐는 나그네쥐라고도 하는 설치류의 일종으로 집단자살로 유명하다. 집단자살에는 여러 설들이 있다.
[6] '나에게 나무를 베는 데 6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날을 가는데 4시간을 쓸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링컨의 명언으로 무언가의 기본, 기초를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의미다.
[7] 일본전산이야기, 김성호, 2009, 샘앤파커스
[8] 혼창통, 이지훈, 2010, 샘앤파커스
[9] 블랙스완, 니콜라스나심탈레브, 2018, 동녁사이언스
[10] 4차혁명시대 지혜로운 MOTHER, 김주원, 2019, 피엔에이월드
[11] Mick, D. G., T. S. Bateman. & R. J. Lutz., 2009
[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00, 책세상
[13] 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슨, 2008, 동서문화사
[14]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2015, 한길사
[15] Liew, A. (2013). DIKIW: Data, Information, Knowledge, Intelligence, Wisdom and Their Interrelationships. Business Management Dynamics, 2(10), 49-62.
[지담연재]
월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화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수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