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始用升授 迺以斗受 (시용승수 내이두수)
요즘 늘 되로 드렸는데 말로 받고 있어서
이를 어쩌나... 싶다...
요즘 하루 3번 마당과 마당옆길을 걷는다.
그 때마다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밤은 한가득이다.
집옆으로 밤나무들이 줄지었고 비탈위를 오르면 밤송이들만도 엄청나다.
마을 전체에 밤나무가 너무 많아서인지 여기까지 밤을 따러 오는 이도 없다. 여기는 밤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지천이라 내 주머니에 아무리 들어온들 내가 줍는 것으로 인해 다람쥐나 기타 먹거리가 필요한 녀석들의 지분을 뺏는 것이 아니란 결론을 내린 후부터 밤줍는 재미는 더 쏠쏠해졌다.
습관처럼, 운동삼아, 재미삼아 비탈을 오르고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주워 담은 밤만 한가득.
이 곳에 이사와 처음으로 줍는 밤이기에 이집저집 나누는 기쁨이 너무~~ 너무 크다!!
다람쥐 녀석들이 먹다만 밤들도 지천에 널려 있다.
볼 때마다 그 녀석들의 야무지게 껍질을 까서 먹는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지고
나도 모르게
혼자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는 뭔가 거창한 이벤트로 기쁨을 찾으려 하지만 아니란 것을 배운다.
소소한 찰나에서 내 몸속의 호흡은 다른 뉘앙스로 물들어 간다.
실체로 드러난 증명으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사실이 영상으로 내게로 느껴질 때
우리는 감.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샘솟고
우리는 감.사.라는 것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우리집 아래에는 내가 이 곳에 이사와 친해진 할머님 3분의 집이 나란히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갈 때마다 날 불러서 손에 뭐라도 쥐어주시는 분들, 밭에서 허리 구부리고 언제나 흙과 함께 하시는 분들. 이 곳에서 낳고 자라 80-90이 되도록 살아오신 분들...
물론 안다.
내가 밤 한봉지씩을 드리러 가봤자
할머니들 부엌 한켠엔 밤이 소쿠리 가득 있을 것이다.
지천이 밤나무이고 이 곳의 터줏대감들이시니 어디에 밤이 많이 열리는지는
우리집옆의 밤나무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언감생심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래도,
주운 밤은 물에 담가 벌레를 빼내고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후 봉지에 담는다.
'집 옆에서 조금 주웠어요...' 하며 부끄러운 손 내밀어도 보고
조금씩 포장해서 여기저기 보내기도 하고...
밤 한봉지씩 드리고는 오이청이랑 복숭아청, 멜론이...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꽈배기 3개 드리니 호박 10개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가지 2개 드리고 황도복숭아 한박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책한권 드리고 전복 한봉지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어무이~ 뭐하세요?" 큰 인사 한마디에 콩 한봉지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마당이 너무 이뻐요, 한마디에 꽃 한다발이...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집에 있는 김 몇봉지 드리고 수박 한통이...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가다 멈춰 손 조금 거들고는 총각김치 한통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어쩌지?
자연의 풍요. 라는 5글자의 의미를 여기에서 절절히 실감한다.
나누고 나누고 나눠도 매해마다, 매계절마다....
자연은 지체하지 않는다.
봄에는 두룹, 쑥, 냉이를 비롯한 나물들이, 여름엔 오디가, 가을엔 밤과 대추가, 그리고 겨울엔 그간 쟁여놓은 먹거리들로 늘 풍족하다... 이 곳에 마트가, 편의점이 없는 이유도 이제 1년 살아보니 알겠다.
넘친다.
그러니
항상 주고 나누는 손길도 넘친다.
받는 것 이상으로 되돌려주고 주는 것 이상으로 되돌려 받는다...
이 깡촌에서 실제적으로 배운다.
"힘들게 농사지은 걸 제가 어떻게 가져가요?"
또 난단다.
계속 나고
계속 넘친단다...
그렇게 김치가, 옥수수가, 무우가, 무청이, 고구마줄기와 고구마가....
끊이지 않고 검정 비닐봉지와 누런 상자에 늘 담겨 집앞에 놓인다.
마실나가면 늘 밭 한가운데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리와!!
고추 따가!!
깻잎 가져가!!!
먹을 거 있어???
그렇게 늘... 주신다...
난 땅도 없고 농사지은 작물도 없고 드릴 게 없다.
give n take가 아니었다.
이는 가난한 마인드였다.
give n give다.
이것이 부자의 마인드다.
무한함을 소유한 자들.
대지를, 식물을, 정신을....
하늘을, 땅을, 꽃을, 작물을, 나무를,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진정한 부자인 것을 배우고 깨닫고 느낀다.
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정신이라면 그야말로 가난... 아니, 거지인 것이다.
나는 앙드레 코스톨로니, 벤저민 그레이엄, 짐 로저스를 비롯해서 성공과 부에 대한 기본 마인드를,
탈레스부터 루크레티우스, 애덤스미스, 몽테뉴 등 많은 철학자들이 부를 어떻게 언급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정리까지 했었다.
적어도 책으로는 할머니들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단 한마디에 무용한 지식이 되어 버린다.
자연에, 땅에, 자신의 노동에 대한 믿음...
나 역시 부자가 되어야겠다.
내가 가진 거라곤 무형의 것뿐.
지금까지 배운 학문과 치열하게 읽어 내려간 책들로 겨우 질서 잡혀가는 정신뿐...
무형의 정신에서
영속적으로 샘솟을,
아무리 가져가도 계속 생산되는 나만의 대지를 일구는 자...
나이고 싶다.
나여야 하겠다.
성경말씀에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질 것(주)'이라 했는데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누는 자가 더 많이 얻을 것'이라 보태고 싶다.
10을 가진 자가 5라도 주는 것을 자선이라 여겼었다.
그러다가, 1을 가진 자가 전부인 1을 주는 것이 진정한 자선이라 여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선은 오만일 수 있다.
도울 게 없는 내가 되는 것.
서로 '도움'이란 게 필요없는 나와 너가 되는 것이 진정한 자선인 것이다.
날 도와줄 필요가 없다.
많이 있으니까.
그렇게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진짜 자선이라는 말이다.
1을 가진 자가 전부인 1을 다 주고도
계속 줄 것이 생산, 생성되어
맘껏 주고 싶은대로 다 줄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부라는 사실을 이 깡촌에서 난 알아버린다.
아는 자 위에 하는 자.
하는 자 위에 해내는 자.
해내는 자 위에 되는 자.
되는 자 위에 누리는 자.
누리는 자 위에 나누는 자.
나누는 자 위에 남겨지는 자...
진정한 부자이고 싶다...
나는 무엇을 배워 무엇을 쌓아 무엇을 나누어 무엇을 잉여화시킬 것인가......
지금 내겐 정신밖에 없다. 정신의 유형이 글이고 글은 물질로 환원되며 이로써 나는 무형의, 한계없는 정신의 성장을 이루는 것만이 내가 가진 전부다. 그러니 글로, 강의로 나는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겠다... 그렇게 주고주고주고 또 주고..........
시골이 참 좋다.
결코...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진리가
여기 내가 사는 터, 자연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 눈은 더 맑아져야 한다.
숨겨있지 않고 드러난 진리들을 난 이제서야 조금씩 보게 되었으니...
주> 마태복음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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