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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룹의 연대

by 지담

여름내 마당을 덮고 길가를 덮은 풀들을 거둬냈다.

예초기로 확 밀어버릴까 했지만, 살릴 수 있는 것들과 밀어버려야 할 것들을 시골 1년차가 알 리 만무하기에 예초기와 낫과 호미와 손을 골고루 사용하며 매일 조금씩... 나름의 구획을 나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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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가 있는 흙위의 잡풀이나 잔디사이에 난 풀들은 잔디를 피해야 하기에 손으로 뽑는 게 최선이다. 손이 땅에 닿도록 밑둥을 꽉 움켜쥐고 살짝 좌우로 흔든 후 비스듬히 들어 올리듯이 뽑으면 흙과 함께 뿌리째 뽑힌다. 이 손맛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이게 뭐라고 의외의 쾌감이 인다. 마른 흙에 핀 풀들은 호미를 땅에 콱 박아서 뿌리째 뽑아야 한다. 손으로 했다간 뿌리는 그대로 남고 잎만 끊어지기 때문이다. 내 허리를 넘겨 자란 녀석들은 낫으로 일단 밑둥까지 자른 다음에 살릴 풀들을 피해 예초기로 정돈했다.


시골 1년차가 뭘 알고 하겠냐마는 이렇게 매일 땅에, 풀에, 꽃들에 정성을 들이는 이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한 사색의 시간이다. 마치 지난 시간의 뚜껑을 열고서 손으로 뿌리까지 뽑아내야 할 것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 가운데 끝까지 살려내야 할 것들...을 골라 정돈하는 시간이랄까... 그렇게 이 시간은 내게 기억을 되돌려주기도, 꼭 살려내기 위한 나의 씨앗들을 부여잡는 힘을 주기도 한다.


여름 내 방치했던 마당 옆 길가의 잡풀들은 허리를 훨씬 너머까지 자랐다. 결국 녀석들을 일망타진하기로 하고 낫으로 길게 자란 풀들을 베다가 작년에 2개밖에 없던 두룹들이 왕성하게 뿌리를 뻗쳐 무려 10개로 번식한 것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바위 뒤에서도, 비탈에서도 두룹은 어디서 갑자기 솟아났는지 풀을 정리할 때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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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기 아래쪽으로부터 연계된 듯 갑자기 솟아오른 집왼쪽 길가 두룹 10여 그루.


작년 처음 이 곳에 이사왔을 때만 해도 그 비싼 두룹을 마을 곳곳에서 따먹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남과 충만을 너머 신비롭기까지 했는데 뿌리로 번식하는 두룹이 여름 한철을 나면서 이렇게 무려 4~5배수로 번식하여 자기 얼굴을 땅위로 드러낼 줄 나는 몰랐었다.


마당 끝 오른쪽의 두룹들은 아랫집 두룹으로부터 연계된 것일테고

현관쪽의 두룹들은 집뒤 숲의 두룹으로부터 연계된 것일테고

집의 양옆, 주방쪽이나 마당 한가운데의 두룹들은 위의 두 곳의 두룹으로부터 연계된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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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왼쪽 마당 한 가운데에 올라온 두룹 2그루


땅속의 뿌리가

옆으로 옆으로...

흙을 밀치며

어둠 속에서

전부 연결되어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얘네들이 없거나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숨쉬는 땅속에서 두룹의 뿌리들도 함께 숨쉬며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위해

서로 연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뻗치다가 어떤 지점을 만나면 자신의 존재를 외부로 쑥... 드러낸다.

그렇게 흙위로 자신을 솟구쳐 올려 버렸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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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오른쪽 당귀 옆에서 솟구친 어린 두룹 1그루


네모난 우리집을 빙 둘러 앞뒤, 양옆까지 4면에 모두 두룹이 솟았다는 것은 우리집의 가장자리로 두룹의 뿌리가 둘러싸고 있다는 의미다. 집이 없었으면 얘네들은 더 왕성했을텐데 콩크리트를 피해 이렇게 자기들끼리의 연대와 군집을 형성해 나가는 비상한 생명력에 난 연일 놀라고 있다.


땅 속을 머리에 그려본다.

곧게 직선으로 아래로만 뻗는 뿌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뿌리, 가는 뿌리, 굵은 뿌리.

이 수많은 땅속 생명의 정수들이 서로서로 부딪히고 뒤엉키지만

땅의 양분을 나누며

존재할 것들은 위로

사라질 것들은 그대로 썪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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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당오른쪽 끝 연못가에 올라온 두룹 3그루 / 중> 집 오른쪽 주방옆으로 올라온 두룹 3그루 / 우> 집뒤 현관쪽 바위틈에서 올라온 두룹 3그루


셀 수 없이 많은 비좁은 그 곳에서

두룹도 자기번식을 위해 그 어렵고 고단한 길을 하루도 쉬지 않고 뿌리를 뻗쳐 나갔을테다.

그렇게 연대하며 어디서 솟구칠지도 모르면서

흙을 뚫고 길을 내며 계속 자기 길을 만들어 나갔을테다.

돌이 있으면 피해서 먼 길을 돌았을테고

물이 있으면 온몸이 젖었더라도 기어이, 아니 마땅히 자신을 더 가열차게 뻗쳐 버렸을테다.


저~위 숲에서부터,

저~아래 비탈에서부터

얼마나 긴 시간 흙을 헤치며

당도하여 솟구칠 그 자리까지

멈추면 안된다고 자신을 달래며

스스로의 생명을 늘려 갔을까...


식물은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언제나 위를 향하여 더듬어 오른다(주). 식물보다 못한 미숙한 내 정신은 그저 보여주는대로 느낄 뿐이어서 두룹을 보며 마냥 '두룹이다!'하며 좋아만 했었는데 요 며칠 두룹에게서 우주의 정신과 생명의 원리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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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식물이야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언제나 위로위로 또 더 위로 향해 더듬어 오른다 하자.

인간은 오만가지 감정으로 그러지 못하다고 하자.

그래서 더더욱 '연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솟구친 한 사람이 있다 치자.

그 사람이 혼자 잘나서 솟구친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수많은 손들이 그 한사람을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고 옆에서 잡아 주었으리라.

세상에는 결코 대가없이 얻는 보상은 없다.


누군가의 등을 밀고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또는,

누군가의 손을 거부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솟구친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라면

허공에 잠시 머문 공처럼 곧 바닥으로의 추락할 지 모른다.


긴 시간 나를 위해 존재했던 과거의 연대들에 나는 갑자기 숙연해진다.

연대가 없었다면

비록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일지라도

그나마 이 꼴조차 지니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나 역시 미래의 솟구칠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어둠의 땅속에서라도 묵묵히 길을 내어야 하리라.


지금 내가 양손에 잡고 있는 이들,

지금 내 손을 잡아준 양쪽의 그들.

우리가 손을 잡은 이유는 어느 순간 귀결로서 알게 되리라.


그렇게 각자 잡은 양손에 꽉 힘을 주고,

그렇게 각자 잡은 양쪽의 이들이 솟구치도록 밀어 준다면

한 사람이 모두와,

모두가 한 사람의 솟구침을 위해,

연.대.되는 것이다.

이번엔 내가, 다음엔 네가, 그 다음엔 그가.

그렇게 모든 이들이 솟구쳐 비상할 것이다.


그저 양쪽에 잡은 손만 놓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누구나 단 한사람이라도 전체의 힘으로 일어서게 된다.


뿌리.

정신이다.

제 아무리 어둡고

제 아무리 돌이 길을 막아도

양손에 쥔 손의 약속만 지켜낸다면...

작은 힘이지만 위대한 힘으로 모두를 솟구쳐 올려낼 것이다.


두룹.

어두운 땅속으로 뿌리를 연대하며

하나 둘 땅위로 솟구쳐 군집을 이루듯

자연은 위로 솟구치는 것들에게 대지를 허락한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잡아주고

서로가 서로를 솟구치도록...

내 앞의 돌이라면 그저 돌아가자.

내 옆의 그가 솟구칠 때 마땅히 올려주자.

그렇게 나 또한 솟구칠 때까지 묵묵히 연대를 지켜내자...


이리 한다면,

한 사람이 모두를,

모두가 한 사람을,

연속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결국, 우리 모두는 비상할 것이다.


주> 랄프왈도에머슨, 자기신뢰철학,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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