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보이는 노을...
이 시간을 난 너무 사랑한다.
모니터 너머로 노을이 지고 파두의 음악이 흘러 나오면
그냥 나는...
녹는다....
이런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평안하고 행복하다.
시골에 온지 1년여.
여기 오길 너무 잘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시간도 친구도 마음도 돈도 있는데 여유가 없었다.
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비어 있는 시간에 노닥거리는 것은 뒤쳐지는 듯했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면 왠지 모를 죄책감에 맘이 힘들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주변을 돌아보면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지인들 가운데는 말이다. 물론, 여유있게 골프치러 다니고 쇼핑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골프도 사업이나 일의 연장선상에서였고 쇼핑도 자신의 내면에 뭔가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이 상당했다. 쇼핑몰에 가면 항상 사람들은 북적였고 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여유'라는 단어는 왠지 어색했다.
시골의 삶에는
시간도 돈도 마음도 친구도 (어쩌면) 도시보다 훨씬 부족한데 이들의 삶에는 '여유'라는 두 글자는 아주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나 완벽하게 여유롭다. 그래서 이미 지녔거나 굳이 지닐 필요가 없는 듯하다.
해뜨면 모두가 일어나 논밭으로 나가 당일 해야 할 일들을 마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7시까지 독서토론을 하고 마당을 가로질러 동네를 한바퀴 휘~~ 도는데 이 때 마을 주민 거의 대부분을 만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하기 바쁘다. 그리고 집에 와 글을 쓰거나 코칭을 하고 두어시간 뒤 또 마실을 나가면 마을 회관이나 정자, 누군가의 집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주전부리를 드시며 다들 뭐가 그리 재미나신지 웃음이 활짝이다. '식사하셔야죠?' 하면 와서 밥먹고 가라고 뭐든지 또 다 내주시며 먹고 가라 하신다. 이렇게 오후에도 이들은 그저 고추를 내다 말리고 깻잎을 낫으로 베고...
얼핏 보면
여유를 찾는 자, 여유가 필요한 자가 바쁘게 열심히 사는 듯하지만
여유라는 글자 자체가 필요없는 삶은 이미 '삶 자체가 완성'된 듯하다.
삶에서 찾고 빼내고 누리려는 삶과
삶에 이미 농축되어 누리고 있는 삶...
자연이 곡식을 키우고 사람은 자연에 진 빚을 자신의 노동으로 되갚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하루가 흘러가도 아쉽지 않고 칠흙같은 어둠도 두렵지 않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삶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자체로 존재하기에
더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없는...
뛰는 사람이 없다. 바쁘다는 말도 없고 조급함도 없고 경쟁도 없다.
'뭐 하세요?'하면 '그냥 ~ 늘상 하는 거지 뭐.'
대답의 대부분은 이 정도다.
굳이 설명할 것도 주장할 것도 탓할 것도 없는...
아둥바둥이라는 단어도 여유와 함께 상실된 이 곳.
군주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바르고 조용하다면
군주의 품격이 있는 것이다(주).
이들은 땅의 주인이다.
땅의 군주답게 이들은 항상
편안하고 여유있고 바르고 조용하다.
나는 이들보다 분명 많이 배워 학식을 갖췄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서 풍기는 군주의 향이 내게는 없다. 이들은 자연의 덕으로 땅을 일구고 먹거리를 해결하고 자연의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든다. 벼가 많이 쓰러졌는데도 그저 자연이 그리 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먹을 것은 많다고, 돈이 좀 덜 벌리는 것뿐이니 괜찮다고...
어떤 환경이라도 이미 자신에게 충분히 일어설 힘이 있다고.
자연은 결코 거꾸로 가는 법이 없으니 자신도 바로 걸을 힘이 있다고
지금은 손해더라도 늘 넘치게 베푸는 자연이니 믿으면 된다고...
그러니 굳이
여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그 자체로서.
충분하니까...
자신의 모든 시간은 자연의 보폭에 맞춰져 있으니까...
그렇게 노을이 지는 지금 이 시간...
6시경에는 다들 집으로 들어간다...
처음 시골에 왔을 때는 너무나 어색했다. 6시 이후엔 아무도 안 다니고 나는 너무 컴컴해서 다닐 수조차 없는 그런 저녁이. 1년이 지난 지금, 나도 어두우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아니, 나갈 일이 없다. 밖은 칠흙보다 까맣고 여긴 그 흔한 네온간판 하나 없으니 이 시간엔 각자 집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도시에선 늘 여유를 찾아 사색을 해야 하고
그렇게 나를 발견하고 찾으려 애썼는데
여기 시골에선 내가 찾는 내가 자연스레 내게 왔다,
지금도 오고 있고.
계속 더 새롭고 큰 내가 올 것이 믿어지고.
만들어 내고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여유가 있건 없건 상관없는 삶.
여유라는 단어조차 무용한 삶.
여유를 가지려는 의도 자체가 무색한 깨어있는 마음상태.
여유는 시간을 비워 얻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로서 내가 충만할 때 나도 모르게 내 삶 속에 스며들어 버려야
진짜 여유인 것이다.
매일 바쁜데 매일 노는 삶
매일 시간이 빠듯한데 모든 시간이 여유로운 삶.
이 모순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충분히 채워진 나의 일상.
자연은 오늘도 내게 알려준다.
이미 충분하다고.
이미 되어있다고.
이미 다가졌다고.
주> 귀곡자, 자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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