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에 대하여
굳이 복수하지 마라,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누군가 당신에게 해악을 끼치려거든 굳이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서 강물을 바라봐라
그럼 머지 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올 것이다(주1)
음..
내겐 참으로 원망이 많았다.
‘원망’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왠지 안스럽고 부당한 일을 당한 듯 싶겠지만
‘원망’의 다른 이름은 ‘남탓’이다.
내게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순간 ‘원망’이 생기고
그 감정에 불의가 섞이면 ‘앙갚음’,
좀 더 심한 표현을 들자면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상과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따졌을 때 ‘원망’이 생기는 것인데 과연 이 원망이 합리적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합리적이라면 원망이 아니라 그냥 처리하고 해결하면 될 일인데
속내에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이 가세되니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망은 어쩌면
’나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는 자기기만일수도 있고
일정 부분의 사실적 오류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합리’라는 속성은
인간으로서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비합리가 무조건 함유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당하고 상대(또는 대상)는 부당하다는
자기중심적 지배 논리가 잣대로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어느 날, 어떤 사건에 의해서, 그러니까 내가 하는 북클럽의 열혈팬이었던 이가 평소 나를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하루 아침에 변해버린 태도에... 아무튼 ‘배신감’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 때, 내가 그간 쏟았던 정성을 배신으로 돌려준 그(녀)를 응징(?)하고 싶어졌고 원망과 한탄과 비애와 심지어 나로 하여금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든’ 그(녀)를 원망하며 괴로웠었는데 그 때 알게 되었다.
나는 갈 길을 가고 있었고
그(녀)는 갈 길을 잃었으니
길잃은 양에게 복수하거나 가르치려는 것을 시도할 필요는 없다.
길을 잃은 자체가 그(녀)에겐 벌이니까.
이러한 명제가 하나 강력하게 생긴 이후로 내 안의 원망이나 비애, 불안감이 살짝 고개만 내밀다 사라졌다. 그렇게 감정이란 녀석은 ‘자각’을 위해 온 것이라는 사실, 그렇게 자각하는 순간 순식간에 자기 할 일 끝낸 후련함으로 내게서 떠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악타이온’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이 명제에 근거 하나를 더 얻게 된 것이다.
신화 속 인물인 악타이온은 여신의 벌을 받아 사슴으로 전신했다가,
제 손으로 기른 사냥개들에게 물려서 찢겨 죽었다.
그런데 악타이온이 이런 변을 당한 것이
팔자가 그래서지 딱히 어떤 죄를 범해서는 아니었다.
그에게 죄가 있었다면,
길 잃은 죄밖에 없었다(주2).
‘길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에서 시작된
새벽의 호기심은
‘나는 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로 이어지더니
기어이 ‘악타이온을 죽게 만들고서야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힌
;아르테미스의 원망이 내 안에서 날 괴롭히는 원망과 무엇이 다른가?’로 줄기를 뻗어
악타이온이 길을 잃은 것만으로도 죄를 받은 것이라면, 이 신화가 내게 던져준 메세지는
결국,
노자의 말대로 운명이 벌할 것이니
인간인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수천, 수만년 전의 사람, 사건이 지금 나와 다르지 않다는 연결성과 동질성.
수 차원의 우주 속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 역시
지금 나의 삶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일체성.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누군가가, 어디선가에서 겪었다면
나 역시 겪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연속성과 순차성.
.
책은 참으로 내게 소중한 존재다.
오늘 새벽독서는 내게
나의 사상에 가는 실하나를 보탰고
원망이나 복수와 같은 무서운 감정이 해석에 의해 내게서 멀어졌고
시공간을 초월한 일체의 경험 모두가 배움이라는 사실에 감사했고
진정한 앎은 삶에 대입되었을 때 가치가 더해진다는 사실을 경험케 했다.
나 역시 길을 잃을 때 누군가로부터가 아니라 내 운명이 날 벌할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며 길을 헤맬지언정
갈 길을 잃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헤맬지언정 아무 곳에나 머무르지 않는 것.
늦을지언정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 것.
잘못 갈지언정 멀리 돌아서라도 당도하리라 믿는 것.
이를 지켜주는 덕(德)은 소신이다.
타협하지 않게 이끄는 힘.
내겐... 있다.
주1> 노자 도덕경
주2>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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