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 7년을 넘기며 큰 선물이 있다면 나를, 현상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실을 살지만 현실의 이유를 들여다볼 눈이 생겼고 미래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7년의 새벽독서를 통해 얻은 15가지 삶의 관점을 하나씩 풀어본다.
오늘 9번째!
하루를 0에서 +1로!
하루에도 몇번, 아니 수십번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앞에서
나에게 기준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이 두 단어를 말할 것이다.
'계산서 말고 영수증'
계산서는 값을 치르기 전
영수증은 값을 치른 후에 받는 것이다.
당연히,
계산서보다 영수증이 후련하다.
계산서는 치러야 하니 의무를 남기고
영수증은 치렀으니 권리를 남긴다.
계산서는 먼저 누리고 후에 받는 것이며
영수증은 계산을 치렀으니 누릴 수 있는 자유증서다.
그러니,
계산서말고 영수증으로 하루를 만드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다.
아니, 바람직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하루를 0으로 만든다'고.
스트레스를 없애라,
고통을 극복하라,
불안을 떨쳐버려라.
우리는 이렇게 관념에 박힌 말들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나는 그러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없앨 수 없기에 관리해야 하며
고통은 쾌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가이니 거쳐야 할 과정이고
불안은 현실을 점검해줄 동기이니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고통, 불안과 같은 부정감정,
또는 이를 몰고 온 부정상황을 피하는 것이 바로
계산서를 받는 행위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일단 나몰라라 하며 회피하는 것은
계산하지 않겠다는 처사다.
지금 나에게 온 스트레스나 불안,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한 후 그 과정을 잘 지나치면 영수증을 받는다.
대가를 치렀으니 보상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보상이라면 다양하겠지.
후련한 감정부터 상황의 역전까지.
자신만이 아는 그 느낌, 그리고 변화된 상황, 실재, 현실.
이 모든 것들을 영수증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나는 눈뜨자 마자 '하루'라는 자연이 준 선물을 일단 받고 시작한다.
치러야 할 계산부터 가득이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할 때
오늘은 계산서가 남았나, 영수증이 남았나? 를 습관처럼 묻는다.
둘 다 남기지 않고 0이 되면 후련하다.
혹. 내가 치른 대가가 넘쳐서 영수증이 남았다면 저축해둔다.
다음에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꺼내쓰도록.
계산을 먼저 치르는 삶이 습관이 되어 영수증이 지속적으로 많이 쌓인다면 나는 이를 우리 아이들에게 상속시키고 떠나고 싶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조상의 은덕'. 뭐, 그런 것처럼 내가 쌓아놓은 영수증이 나 죽고 없는 세상, 우리 아이들의 삶에 한장씩이라도 사용된다면 오늘 치른 계산의 값어치는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을 0으로 만든다.
치러야 할 대가가 시련이든 역경이든 고통이든 무엇이든 올테면 와라.
공짜는 싫으니까.
비싼 것이라면 비싼 대가를 치를 정도의 이성은 갖추고 있으니까.
올테면 와라.
내게 오는 그 모든 대가가 의무의 다른 이름인 것쯤은 아니까.
올테면 와라.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를 누리는,
권리를 혜택이라 착각하는,
혜택을 받고서 은혜에 둔감한,
내가 그런 어리석고 졸렬한 인간은 아니니까.
올테면 와라.
나는 당당하게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겠다.
그리고 충분히 누리겠다.
더 달라고도, 덜 받지도 않겠다.
그저 자연이, 신이, 우주가, 세상이 내게 약조한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크다. 나를 어찌 쓰려고 이리도 여린 가슴에 그토록 지겹고 무거운 세상을 살게끔 날 내쳤는지 내 한번 알아내고 싶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수증을 반드시 받고야 말 것이니 올테면 와라.
또한, 오히려
더 많은 계산을 당겨서 치를 것이다.
평생 무료이용권? 뭐, 이런 것처럼 온세상이 허락한 것이 있다면 평생 무료로, 나의 소중한 아이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나에게서 치러야 할 대가라면 찾아서, 당겨서, 남들보다 더 먼저, 많이 계산을 마쳐 버리겠다.
이리도 당당하게 선포한 지금.
어? 이거 뭐지?
나의 기준을 살짝 높이라는 자극이 온다.
기준이 높으면 기본도 따라 높아진다.
기본이 높으면 수준도 따라 높아진다.
기준, 기본, 수준이 높으면 기분에 좌지우지될 턱이 없을 것이다.
하루에 영수증 1장 정도의 잉여만으로도 1달이면 30장, 1년이면 365장, 10년이면 3650장, 50년이면 18,250장. 내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할 때 매일 1장씩 영수증을 쌓으면 거의 18000여장이 쌓인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이 이 험한 사회에서 혹시나 어떤 날 1장, 어떤 날은 10장, 어떤 날은 100장이라도 필요할 때 내가 쌓은 영수증이 '운'으로, '기적'으로, 어떤 '귀인'으로, 누군가의 '사랑'으로 환원된다면 지금 나는 0이 아니라 +1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어떨까?
지금껏 0을 만드는 것에 어려웠고 힘들었다. 늘 계산서를 남기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에서 0이라는 기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거웠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쉽게 말해, 나에게로 오는 스트레스에 짜증도 냈고, 원망도, 억울함도, 화도 내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불신, 편협된 사고, 어그러진 이성, 주체못할 감정들로 겉잡을 수 없이 쌓인 계산서를 하나씩 변제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이런 내가 지난 시간들을 계산서와 영수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풀이해내면서 수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저 흐름 속에 있는 이 모든 부정을 감사히 여기게 되었는데 ...
이 새벽,
나는 더 큰 세상으로 불려나간 듯 떨린다.
더 거대한 세상의 호출에 얼떨떨하다.
조금 더 깊은 사랑을 나누라.
동정이나 위로말고 진실을 말하라.
용기나 응원말고 손잡고 함께 걸으라.
가르치려 말고 보여주라.
어리석은 자선말고 더 크게 세상에 이롭게 나를 온전히 꺼내어 써라.
뭐, 이런 것들일까?
오늘부터 나의 기준을 +1로 승격시켜 보련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안다.
기준이 높으면 수준이 높아지고
수준이 높으면 지경이 경지로 승격되고
경지로 가는 길에 나의 혼탁한 시야는 맑아질 것이며
맑아진 시야는 더 너머의 것과 나의 기운을 연통시킬 것이다.
+1의 기준.
감정말고 이성이어야 한다.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주는 새벽에 감사하지만
과연 이 마음은
가진 것들에 대한, 가고자,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한
포기일까, 단념일까, 체념일까, 의지일까, 각오일까...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명철한 이성에, 쌓여진 지혜에, 믿고 있는 확신에, 나를 이끄는 무서운 힘에
나는 나를 맡겨봐야겠다.
아직도 내가 치러야할 계산서가 있다면 어여 치르게 나에게 내미소서.
혹시 내가 계산을 다 치렀다면 여기에 더 이상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나아가
내가 영수증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이 탐욕이 아니라면 그 길로 나를 데려가소서...
반성이란 것을 하지 않기로 한 나에게
지금 느끼는 새벽의 훈계는
성찰이었음을, 자각이었음을 증명토록 나를 이끄소서...
주> 시민불복종, 헨리데이빗소로우,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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