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란 녀석, 참 고약해.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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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독일로 유학간 이후 엄마는 알았지.

네가 엄마보다 음식을 더 잘 한다는 걸.

정말 훨씬 잘 하더라.

음식은 맛이잖아. 정성이고.

엄마는 대충 하는데 넌 사소한 포인트 하나를 직감적으로 알더라.


'이제 밥먹어요.'하며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면

엄마는 늘 놀라워.

믿음직스럽구.


스스로 자신의 밥상을 간단하지만

직접 만들어 매일 먹는다는 건

요즘 시대에 흔하지도, 쉽지도 않아.


고맙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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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밥과 모든 반찬을 직접 해먹는다. 김치랑 짱아찌도 담아서 모든 음식을 직접. 소소한 찬이지만 정성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엄마가 해준 물떡이 먹고 싶다는 말에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면서도, 한동안 물떡은 못 먹겠군. 했지.


네가 물떡이 먹고 싶다고 하면,

한동안 물떡을 먹지 못해.

또 네가 좋아하는 음식도 그래.

복숭아, 귤, 비지찌개, 미역국.

뭐 그런 거 말야.


네가 특히 좋아하는 먹거리 앞에서

엄마의 입맛은 너의 그리움으로 채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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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그립고 보고 싶다는 건

신비한 화학작용이야.

배가 고픈 물리적인 증상보다

그립고 보고 싶고 안스러운 화학적인 증상이

훨씬 강하다!


'기분'이란 거 있지?

그렇게 센놈이란다.

그리고 참으로 고약하기도 해.


우린 자주 '기분에 사로잡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바람을 쐬러 나가지.

뭐, 이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기분'때문에 상황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켜야 할 의무도 내팽개치게 되잖아.

'이 기분으로 내가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말이야.


'감정'이 외부로부터 받은 내면의 반응(response)라면

'기분'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상태(state)잖아.

감정이 깊고 오래 간다면

기분은 비교적 가볍고 빨리 바뀌지.

감정이 의미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기분은 흘러가는 상태야.

너를 막 데려가.

늘 빠르고 쉽게 바뀌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분'을 탓하면서

너무 쉽게 지난 시간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책임을 가리고

나아가 신뢰를 뭉개고 있어.


'기분'은 사람의 신뢰와 책임까지 가려버리는 무서운 존재더라.

'감정'보다 가볍지만

더 날카롭게

지금껏 쌓아온 것을 순간에 끊어내.


물론, 기분을 즐기고 느끼는 것은 좋지만

좋지 않은 기분이 들 때,

그 때 그 기분을 만든

네 안에 응축되어 풀지 못한 감정들을 잘 살펴.

분명 그 감정이 온 이유와 의미를 네가 상실했을지도 몰라.


엄마가 좋아하는 시인(주)의 노래를 들어봐.


[눈가루]


까마귀 한마리

독당근나무 위에서

눈가루를

내 머리 위로 흩뿌리니


내 마음 밝아져

수심에 싸였던

나의 하루가

새로워지네.


이렇게 위대한 시인도 기분에 사로잡혀 나무 밑을 걷는단다.

그러다가 까마귀가 떨어뜨린 눈가루에 상기된 얼굴이 차갑게 느껴지면서

순간 기분이 상쾌해져.


기분이란 이렇게 잠깐의 순간만으로도 흘려보낼 수 있는거야.

네가 좋아하는 고양이,

네가 만든 고양이쿠키,

네가 감동받은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떠올려 봐.

기분이 널 빠르고 가볍게 데려갔듯이

너도 가볍게 녀석을 흘려보낼 수 있어.


좋은 기분일 때는 하고

좋지 않은 기분일 때는 하지 않고.

이런 사람은 결코 책임과 신뢰를 쥘 수 없단다.


엄마가 숱하게 알려줬지?

기분은 기준에 의해 정하고

기본을 다시 다지고

기세를 다시 일으키라는 신호라고.


주>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미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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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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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5:00a.m. [엄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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