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오늘은 치즈 얘기할께.
놀라지마.
이 글은 지난 4월 3일에
너희들에게 쓴 4일간의 기적같은 이야기야.
삶과 죽음의 곁에서 벌써 4일째.
4일 전 첫날,
각도기의 바늘이 불안한 쪽으로 심하게 기울었었어.
너희에게 계속 영상과 사진도 보냈듯이
치즈는 강아지같은 고양이잖아.
비탈 아래 사시는 노인회장님이 먹이를 주던 마당냥이가
두어 달 전 어느 날,
엄마를 졸졸 따라오더니 엄마다리 사이를 오가고
엄마가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졸졸 따르고 그랬잖아.
엄마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치즈가 따라다니고
집안에 있으면 창문으로 빤히 쳐다보던 녀석.
노란털에 뾰족한 턱을 가진 녀석.
엄마가 아일랜드계 귀여운 청소년같다고 했지?
너무 애교많은 녀석.
‘치즈’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주길 잘했어.
이름이 붙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대상이
관계로 이어지거든.
치즈도 이름을 부르면서부터
엄마랑 관계가 시작된 것 같아.
마당 오른쪽 비탈아래에 개울이 있잖아.
그 개울 너머까지가 녀석의 영역인가봐.
멀리 가 있어도
‘치즈야~’
이 한마디면
녀석은 어디선가 나타나서 엄마쪽으로 온다!!!
신기하지?
고양이가 저럴 수 없잖아.
그것도 시골 길냥이에다가
엄마가 키운 아이도 아닌데.
치즈가
엄마를 졸졸 따르는 것도 신기했지만
더 신기한 건 이거야.
아가고양이 둘을 데려왔잖아.
엄마가 계속 오지 말라고 쫒아내도
치즈는 묵묵히 매일 그 두 녀석을 데리고 왔잖아.
결국,
엄마가 졌지.
한 녀석은 ‘모루’,
또 한 녀석은 ‘코’.
키운다는 생각은 없어.
녀석들이 노인회장님이 사료를 주지 않고
쫒아낸 이후에
비쩍 말라 있었거든.
여전히 사냥본능을 남아있겠지만
이미 길들여진 습관은 좀처럼 없애기 어려워.
이미 사람의 손길을 탄 녀석들이라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나 봐.
치즈는 그렇게 아가 둘을 며칠째 계속 데려오는데
그냥 내칠 수가 없더라구.
마당테라스에 그냥 상자 몇 개 놔뒀는데
마치 처음부터 자기들 집인 것마냥 자연스럽게 입주를 끝냈어.
얼마전에 엄마가 전화로 얘기했듯이
치즈는 동네깡패 ‘타이슨’하고도 싸웠어.
‘타이슨’은 고양이같지 않아.
덩치도 엄청 크고
(그냥 엄마 생각인데 삵하고 교배된 녀석같아. 엄청 사나워)
어느 날, 밖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서 뛰쳐 나갔지.
타이슨이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데
치즈가 소리를 지르면서 어쩌질 못하고 있더라
그런데
엄마가 나간 순간,
치즈가 엄마를
딱~ 돌아보더니
타이슨을 향해 돌진하더라구!!!!!!!!!!!
막 뛰어서 쫒아가는데 무섭게 쫒더라.
그리고는 순간,
둘이 동그랗게 엉켜서 비탈 아래로 굴렀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너무 무섭더라.
엄마가 작은 소리로 불렀어
‘치즈야~~’
잠시 후,
치즈가 비탈 아래에서 올라오는거야.
엄마가 감동받은 것은 이게 다가 아니야.
치즈는 엄마한테 바로 오지 않고
타이슨이 가는 방향을 계속 주시하더라구.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엄마 앞으로 와서 펄썩 누워 버렸는데
비탈아래 개울로 빠져서 온몸은 젖어 있었고
다리는 물어뜯겼고
가슴은 온통 피였어.
아마 타이슨도 다쳤나 봐.
치즈 상처는 다리뿐이었는데
가슴이 온통 핏자국이었거든.
꽤 쌀쌀한 날이었는데
그 젖은 몸으로도 또 벌떡 일어나더니 타이슨이 간 방향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한참 또 그러고 있더라.
치즈의 뒤에는
모루랑 코가 놀란 눈으로 떨고 있었구.
시골에 길냥이는 흔해.
그리고 녀석들은 사람을 피하지.
그런데 치즈는 다르잖아.
왜 이 녀석이 엄마를 졸졸 따르는지,
녀석의 속내와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치즈가 보여주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엄마는 의미가 찾아지더라.
겨우 두어달인데 그냥 달라.
의미가 분명 있어.
그래서 말인데...
그래서...
엄마는 오늘까지 4일간 겪은,
지금부터 해야할 말을 너희들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했어.
혹 부정적인 말,
말 이전에 품은 생각이 현실이 될까 봐
말을 삼키고 똑같은 일상을 보냈지.
하지만 지금 이 시간,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운명의 각도기가 조금은 생을 향해 기울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야.
4일 전,
치즈가 꼼짝 않고 식빵처럼 앉아만 있는거야.
"치즈! 왜 그러고 있어"하며
엄마가 마당에서 걸음을 옮겨도 녀석이 꼼짝 하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 가 보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더라.
순간, 알았어.
뭘 잘못 먹었구나.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
그러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더라.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고,
약도 없고
이 마을엔 동물병원도 없잖아.
엄마는 차도 없고
여긴 예약하지 않으면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는 곳이고.
일단 마을회관으로 갔지.
어르신이 계시길래 여쭤봤어.
그랬더니,
"죽어. 여기 고양이들은 다 그래.
혹시 모르지.
자생능력이 있으니까 살지도.
그냥 어쩔 수 없어.
다 그래"
그저 마음으로 깊이 안아주며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어.
'치즈야, 괜찮을거야. 이겨보자.'
수백번 눈을 보고 말했어.
그렇게 이틀간
엄마가 마당에 나가도 녀석은 몸을 돌돌 만 채로 움직이지 않았어.
자주 마당에 나가면서도 겁이 나더라.
녀석의 배가 오르내리는 걸 확인하면
안심이 되었고.
그렇게 계속 쓰다듬으며 말해줬어.
'이겨내자. 버티자, 며칠만 잘 버티자. 넌 할 수 있다'
그저께는 치즈가 없어졌어.
동물은 절대 자신의 터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는 말이 스쳤고
불길한 심정에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저녁에 비도 온다는데
녀석이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비에 속절없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건 없어도
가만히 있을 수도 없더라구.
해가 질 무렵이라 엄마도 좀 무서웠거든.
여긴 가로등도 없고 칠흙같잖아.
큰 후레쉬를 들고 나갔지.
이 비탈과 숲에서 이 작은 녀석을 찾을 수 있을까.
'치즈야~'
집 옆 비탈과 집 뒤 숲을 30여분 헤맸을까...?
결국, 텃밭 귀퉁이 비료더미 구석에 몸을 만 채 앉아있는 녀석을 발견했지
혈변을 쏟은 듯 꼬리 안쪽에 붙은 낙엽이 벌갰어.
앞다리를 잡고 번쩍 일으켰는데.
다행히 느낌이 괜찮았어.
녀석이 축 늘어지지 않고 몸에 힘을 주더라.
그래,
잘 버텼다.
하루. 버텼으니 됐다.
이렇게 며칠만 버티자.
살자.
치즈야.
살자.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고
어제,
어제도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집 왼쪽 비탈있지? 그 위에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녀석을 발견했어.
그래도 여기까지 올랐구나.
됐다...
기운이 있구나...
오늘 새벽,
녀석은 웅크리고 있지만
배가 조금 더 힘차게 움직여.
숨이 좋아진 듯 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눈빛이 말해주더라.
엄마,
나 살아 있어요.
버텼어요.
이겼어요.
이제 됐어요.
눈물인지
진물인지
치즈는 동그란 물방울이 맺힌 채 엄마를 바라봐.
그리고 힘겨운 몸을 일으켜
엄마 발 옆에 바짝 붙어 앉네.
그리고
조금 전,
수돗가에 받아놓은 물을 스스로 걸어가 먹었어.
한참을 먹었어.
이제 먹는구나...
운명의 각도기가
'생'쪽으로 넘어간 것 같아....
길고양이 치즈의 운명은 어제 끝날 수도 있었어.
하지만,
녀석은 버텼고
여전히 버티는 중이야.
버티는 생명에게는
운명의 여신이 새로운 생을 이어준다는 걸 녀석이 보여줬어.
마지막을 앞에 둔 생명이
차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쪽에 서서
그 순간을 죽음과 싸워 버텨낸다면
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치즈는 알려줬어.
끝까지 남는 쪽을 선택하면
몸은 그 선택을 향한다고
치즈가 생의 끝에서
엄마에게 보여줬어.
불과 4일 전의 치즈는 없어.
앙상하게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지금
비쩍 말랐고
큰 눈은 얼굴속으로 파묻혔어.
하지만, 작게 보이는 그 눈빛이 달라.
때론 보이는 것 이상으로 더 정확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지 않니?
오늘이 그런 날이야.
이제 나흘째.
지금은 각도기가
선명하게 삶 쪽으로
기운 것 같아.
치즈가 아픈 동안엔 녀석의 사진을 찍지는 않았어.
생과 사를 넘나드는 녀석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잖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너희들에게 이렇게 치즈얘기를 해줄 수 있어서
엄마 마음이 참 좋아....
생명을 키운다는 거.
본능을 남기며 돌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란 걸 엄마가 처음 겪네...
2026. 4.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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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사유의 기록]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사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