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에 대한 소고
나의 재테크는 3부류의 통장으로 아주 단순하다.
하나는 입출금 신한은행통장, 둘은 테슬라와 애플이 들어있는 투자증권통장,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통장이 그것이다.
신한은행통장은 말 그대로 번 돈을 담아두고 필요할 때 쓰는 용도
증권통장은 번 돈을 불리기 위해 10년간 건드리지 않고 이후 요긴하게 쓸 용도
비밀통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돈을 만들어내는' 평생 나에게 자유를 보장해줄 용도.
내가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당연히 가장 집중하는 통장은 3번째 통장이다.
이미 '부'와 관련된 나의 글들을 통해 언급한 바있지만 노동수입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은
버는 / 번돈을 불리는 / 돈을 만들어내는
3가지로 분류해서 나에게로 온다.
'불리는' 단계부터 아인슈타인이 말한 8대 불가사의, '복리'의 마법이 작용하는데
특히, 마지막 돈을 '만들어내는' 단계는 복리에 이자까지 후하며 리스크도 내가 통제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에 아주 효율적이다.
단, 이것 하나를 명심해야 한다.
부의 신 플루투스가 어쩌다가 나에게까지 마구 뿌려둔 풍요로운 이 비밀통장은
그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여신 네메시스(Nemesis)에게 철저하게 감시당하는 통장인지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녀는 단 한번의 잘못에도 잔고를 0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냉정하기 그지없고 깐깐하기론 모든 신중에 최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제환경이나 기타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이 통장의 모든 것은 나하기에 달려있다.
(*참고로, 저의 '부자', '성공'과 관련된 견해에 대해서는 글 가장 아래쪽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이 비밀통장은
세상이 나에게 명령한 그 길을 걷기로 한 결단기념으로 선물받은 통장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미래
모진, 또는 보상을 받을만한 어느 시점에 나의 공든탑이 결코 무너지지 않게 해줄 최고의 자산통장이다.
이 통장의 계산법은 복리대로
1일 1원, 2일 2원, 3일 4원, 4일 8원, 5일 16원, 6일 32, 64, 128, 256, 512 ....
28일 134,217,728.
29일 268,435,456
30일 536,870,912
한달만에 무려 5억이 넘게 쌓이는 놀라운 숫자의 마법, 말 그대로 날 자유롭게 해줄 통장이다.
2022년 9월 어느날,
글을 써야 하는데도 망설이기만 하던 나에게
우연히 브런치가 내 인생에 들어왔고
이 우연한 브런치작가는 세상의 신호였다.
세상이 매일매일, 대충말고 제대로, 있는 힘껏 글을 하나씩, 100일간 쓰라고 내게 명령했던 것이다.
기특하게 그 명령을 알아들었고
세상의 흐름에 순종하는 나는 지체없이 '네!'했지만
있는 힘껏! 제대로! 다 뽑아내서! 글을 쓰는 것은 뜨거운 죽먹기보다 더 어려운 명령이었으며
게다가 100일간 지속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를 찢어늘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엄청난 도전이었다.
게다가 네메시스는 단 하루라도 빼먹으면 잔고를 0원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엄포까지 놨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형국에 내가 서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 딱! 100일이 지났다. (27일 자정으로 100일 끝)
단 하루도 어기지 않았다.
능력이나 지성이 부족한 것은 내 어쩔 도리없었지만 혼을 담지 않고 발행한 글은 없다고 자부한다.
대충 얼버무리고 뭉갠 글도 없다고 자신한다.
전문가나 문인들의 눈에는 별볼일없는 수준이하의 글일지 모르지만
내 현위치에서 최대한 나를 드러내고 뽑아내고 갈아내고.. 암튼 지독한 100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100일.
내 비밀통장엔 평생 보도 듣도 못한 숫자가 찍혀 있다.
아마도 조의 몇배가 넘은 단위의 금액이 찍혀있을 것이다.
사실 그 통장만 생각하면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쓸 수 없고 자음 모음 하나하나 자판을 두드릴 때도 혼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내 손톱은 다시 'ㄱ'자로 자라기 시작하고 골치아픈 목디스크는 다시 도져버렸다.
'네 글 하나에 잔고가 얼마나 불어나는지 상상하라!'는 세상이 내게 주겠다는
선물에 눈이 멀어 명령을 수행했든 어쨌든
나는 분명 글을 쓰는 행위에 요즘 젊은 얘들말처럼 영혼을 갈아넣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알아낸 기가막힌 사실때문이다.
하나. 정말 감사하게도 신은 결코 내 능력을 시험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 자세를,
내 의지를,
내 정성을
내 행동만을 평가하지
내 재능이나 능력은 결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둘. 능력이 넘치고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많고 가방끈이 긴,
이러한 인간의 잣대에 신은 눈길하나 주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세상을 운용하는 데에 그런 것과의 타협장치는 걸어두지 않았다.
그저 세상의 조화에 이로운지만 평가하기로 하고
내 어깨에, 내 지난 시간에 나에게 주어진 그 무엇도 다 떼어 버리고
자신과 약속한 그 날, 통장을 손에 쥐어준, 그 날부터가 1일, 시작!이었다.
내가 가야할 길을 정했는지
그 길로 갈 작정인지
작정이 참인지 뻥인지
그것만 지켜보니
어찌보면 수월하기도,
어찌보면 지독하게 어렵기도 했다.
작정하기도 어려웠지만
작심삼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습관에 내가 이기는지 지는지
수시로 날 테스트해대는 통에 고달프기로는 더할나위 없었는데
도대체 내 정신에 무슨 짓을 해서 그 비밀통장을 믿게 만들었는지..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이 근원이 되어 분명 미래 어느 순간
그 비밀통장은 '물질화된 정신', 즉, 눈에 보이는 숫자로 내 앞에 놓일 것까지도 나는 믿게 되었다.
3년이 넘는 지독한 새벽독서는 분명 3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
이 신기한 기적과도 같은 경험은
막 100일을 마친 지독한 새벽독서 후 글쓰기로 진화되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감히 내 작은 머리로는 가늠이 안된다.
매일매일 적지만 일정한 '양의 축적'은 압축을, 압축은 폭발을, 폭발은 질적 승화를,
승화는 다른 차원에 나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매일 글을 쓴다고 당장 돈이 돼?'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확언하겠다.
'결코! 절대! 당장 돈이 안되지. 하지만 매일매일 3년, 1000일의 글이 쌓이면 가공할 힘이 될 걸!'이라고.
그 가공할 힘을 속된 말로 몸값, 글값, 저작료, 자산이라고 하겠지.
나를 속물이라 흉봐도 좋다.
신성한 글을 돈때문에 쓴다는 논리의 비약을 퍼부어도, 호들갑에 주책이라 해도 내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어느 누구의 흉도, 수근댐도 개의치 않는다.
호들갑떨 거 별로 없는 인생에 이 정도 호들갑은 충분히 용인된다.
단, 본성에 어긋난, 자격없는 인간에게는 당장 잔고를 0으로 만들어 버리는
치밀한 계산법을 가진 네메시스의 눈만 똑바로 쳐다볼 수 있으면 된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사색과 사유를 즐기며 이를 글로 표현하며 살고 싶으니까.
한번도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 적은 없지만 여기 한 구석에서 치열한 날 발견못하는
출판사의 가려진 눈 상관없이
내 글이 필요한, 내가 읽히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해 마음껏 찍어내고
돈과 무관하게 내가 배운 것을 원하는 장소에서 맘껏 들려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니까.
세상이 내게 명령한 그것을 묵묵히 해낸 보상으로 내가 받게 될 선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꿈은 이루어지잖아'를 증명해내고 싶은 거니까.
인간의 본성은 욕구로부터 시작되며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세상의 조화를 위해 내가 명령받은 나의 본성이니까.
언제가 될지는 내가 결정하지 못한다. 해서도 안된다.
나는 그저 오늘도 네메시스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이렇게 계속 계속.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네메시스는 나에게 충분한 신뢰를 보내며 통장비밀번호를 알려주겠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든다.
정신이 물질을 만들고
이상이 현실을 이뤄낸다.
나는 정신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만드는
매일의 작디 작은 행위의 가치에
결코 나의 모자란 인성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를 키워나갈 뿐이다.
명령받은 것을 그.냥. 하면 될 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르쳐준
'정신이 멀쩡한데 육체가 항복하는'
비굴한 인간이 나여서는 안되니까.
마지막으로 큰소리 한 번 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나는 상당히 효율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매일 치열하게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위의 계산대로 조와 경, 업이 넘는 돈이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내가 손해인가?
금액을 팍팍 줄여 억, 천, 백단위만 내 손에 들어온다고 내가 손해인가?
시간을 팍팍 늘여 100일이 아니라 1천, 1만, 1억의 날짜 뒤에 그 돈이 온다고 해서 내가 손해인가?
설사 돈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해도 나의 정신이 100일간 치열하게 탐구하고 사색했다면 내가 손해인가?
그 믿음이 손해인가?
그래, 좋다. 막말로 이도저도 제쳐두고 100일간의 정성.
과거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정화수떠놓고 100일간 손바닥 닳도록 빌어댄 그 정성이 지금 나와 연관이 없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들인 이 정성만으로도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인생에 내 정성이 기여하지 못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손해란 말인가?
내가 형이상학과 관념으로만 일관하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던 그 몇몇분들이 퇴직하고
뭘해야할 지 고민하며 여기기웃 저기기웃하는 것보다 내가 손해본 게 뭐란 말인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100일간 치열하지 않을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100일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며 나를 움직이는 머리와 혀는 도대체 누가 심어놓은 것인가?
큰소리쳤더니 속이 뻥 뚤린다...^^
열정대신 진정으로
열심대신 진심으로
나의 시간이 고통을, 좌절을, 스트레스를 갖고 오는 건
나를 바꿔야 하는데 달리 방법을 몰라서
그런 모습으로 오는 것임을 알기에
그것들 뒤에 곧이어 따라 온 보람도, 기쁨도, 모든 쾌락도 함께 누렸던,
지나치게 행복했던 100일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100일간 나는 진.짜.로. 살아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진입해 자리를 틀려하는 기가 막힌 선물,
습관을 너머 중독! 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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