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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26. 2022

남이야 뭐라하건!

'글'에 대한 소고

대학원 강의때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글 가운데 첫사랑글(아래링크참조) 읽었는데 

어떻게 첫사랑을 공개하셨어요? 용기가 대단하시다!'

...

그런건가?

그런 건 공개하면 좀 거시기한건가?


내가 배우고 

내가 알려주고자 하는

한마디로, 지식에 나의 경험이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안다'고 할 수 없는데?

나는 그날그날, 순간순간 내가 느낀 감각으로 인간을, 나를 해체시키는 게 좋은데?

배운 이론만 떠드는 떠벌이는 나는 싫은데?

남의 이야기, 남의 말 옮겨대는 앵무새가 되면 안되는데?

나의 글에

나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담겨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주장 내지 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나는 이러한 경험을 이렇게 감각하고 인지하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어요!'를 피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오픈한다.

여기에 용기는 필요없다.

오히려 혼을 담지 못한 글을 발행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 용기가 없어 나는 나를 오픈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


'소크라테스'도-물론, 직접 그가 쓰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직접 만나 나눈 대화를,

'몽테뉴'도 그 유명한 '에쎄'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데이빗소로우'도 '월든'에서 자신의 생활을

'괴테'도 '시와 진실'에서 자신의 과거 시절과 가정사를

'에머슨'도 '수상록'과 '자기신뢰철학'에 자신의 주관적인 사고와 의지를

'니콜라스나심탈레브'도 자신이 살며 부딪힌 난감함을

'롭무어'나 '보도세퍼'도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위해 민낯을

'리차드파인만'도 자신의 엉뚱한 짓들을

'앤디워홀'도 자신의 발칙했던 발상과 행동들을

'팀페리슨'도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을

'아우구스티누스'도 자신이 가슴치는 성찰하는 고백을

'마르쿠스아우렐레우스'도 자신이 전쟁터에서 겪은 난해한 인간군상에 대한 탄식을

'톨스토이'도 '인생론'에서 자신이 직접 읽은 책들을, '고백록'에서는 자신의 과오를

'릴케'도 자신이 지인에게 보낸 리얼한 편지를

'세네카'도 자신이 네로와 생활한 감정들을


모든 위대한 책에 저자의 경험이 없는 것은 없다.

철학은 일상, 즉, 실천의 옷을 입었을 때 진짜 가치를 갖게 된다.

self-narration.

감정이든 지식이든 경험이든 무엇이든 

글쓴이의 것이 없으면, 

또는 글쓴이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떠벌이며 앵무새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의 서사(敍事, narration)가 들어가야 내 것이다!

내 것이니

유일하고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며

탁월할 수밖에 없다.

나만이 유일하게 겪은, 

나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가 

글에 혼으로 담겨지기에 

남이 뭐라하건, 

나의 글은 세상에 유일하며

그래서 나에게만은 탁월하다!


나는 앞으로도 나를 오픈하려 한다.


머리통도 열고

기억도 열고

미래꿈도 열고

뭐든 다 열어젖히며 

나를 글에 묻힐 것이다.

아니,

글이 나를 파헤쳐줄 것이다.


릴케의 조언대로 '나의 평범한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주제로 나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중략). 나의 꿈의 영상이나 추억을 적극 활용'해보련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수십년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궁금한 -모든 인간의 궁극의 질문이랄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나는 나의 글에 그 답을 맡겨봐야겠다.


비로소,

나는 또 다시 분리되었다.

'나'와 '나의 글'로.


* 본 글의 제목 '남이야 뭐라하건!'은 리처드파인만의 저서제목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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