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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25. 2022

"혼란스러워요!"

'원리'와 '원칙'에 대한 소고

새벽독서모임이나 강의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혼란스러워요!'

새로운 지식의, 관점의, 사고의 진입은 기존지식을 깨뜨리기에

혼란은 당연하다.

즉, 변화를 원해 시작한 공부에서 혼란스러우면 그야말로 빙고인데

변화를 원하면서 혼란스러운 건 싫은가보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이성은 이해불가능한 모순에 수긍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워요!'라고 말하는 이에게 이렇게 피드백한다.

'빙고!!! 잘됐다! 혼란스러우니 다시 재질서가 잡히겠네!! 드디어 변하겠네! 새로워지겠네!'라고.

놀리는 것 같지만 천만에!

'혼란을 축하한다!'고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규제와 관습, 습관.

그리고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

이 모두는 질서화되어 있는 것들이다.

어떤 면에서 나를 편하게 하며 심지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도 해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은

우리는 뭐든 정리하고 정돈하고 각잡고 나열하고 

깔맞추고 벗어나지 않으려 무지 애쓰고 살면서도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에 있으면서도)

일탈을,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즉, 무질서를 원한다는 것이다.


질서는 혼란이 없는 상태,

무질서는 혼란스러운 변화 상태이니 

질서를 위해 무질서(혼돈, 변화)를 택해야만 하고

무질서를 위해 그렇게 편한 질서를 파괴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고야 만다.


늘 정리정돈되어 있다는 것에는

한결같은, 일관된 가치가 분명 담겨 있다.

반면, 늘 같은 습관, 같은 사고, 같은 행동만 반복되니

고집스러운 경직과도 무관하지 않다.

질서에 부여된 양면성.

이로 인해 우리는 늘 질서를 원하지만 무질서, 즉, 변화도 한결같이 원하는 것이다.


자, 이 문장. '변화를 한결같이 원한다' 라는 문장에 잠깐 집중해보자

변화, 즉, 무질서를!

한결같이, 즉, 질서있게 원한다!

= 무질서를 질서있게 원한다. = 무질서가 질서있게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변화하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변화(무질서)해 가는 과정이 질서잡혀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극과 극은 통하는 진리도 여기서 귀하게 적용된다.

새로운 것은 곧 헌것이 되듯

질서는 곧 무질서로 가는 과정이자

무질서한, 혼란 다음에 순서대로 오는 것.

이를 이해하기 위해,

동시에 쌍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동시성)

순차적으로 연속되는(연속성),

모든 단어가 대립된 이면을 지니고 있다는 모순(paradox)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2가지를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 질서잡혀야 할 것은 '원리', 즉 이치에 맞는 근원이다. 질서와 무질서는 쌍으로 존재하며 동시성과 연속성에 의해 순환된다는 것은 원리다.

둘째, 질서잡지 말아야 할 것은 '원칙', 즉 어떠한 것을 위한 규칙이나 제도이다. 원리에 순응하기 위해 정해진 원칙은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내 정신에 제대로 질서잡고 앉아있는 2마리의 개, 편견과 선입견으로 자리잡은 원칙은 반드시 깨야 하는 것이 원리이다. 그리고, 이 깨는 과정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질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깨서 질서잡고 또 그것을 깨서 재질서로 잡고 또.. 또.. 또....

이 과정은 원리에 따라 재배치되어야 하며

원칙을 고수하면서 깨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대변하는 한단어가 있다면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인 듯이다.

변하지 않는 한가지로 만가지 변화에 대응한다.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원리, 즉, 질서화되어 파괴되면 안되는 이것이

지속적으로 깨지며 변화하는 모든 원칙들을 이끌고 간다.

그러니,   
내 삶을 이끌어줄 원리를 지니고, 따르며 산다는 것은

내 삶의 안정과 풍요와 평화를 이미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 삶의 주체인 내게 과연 변하지 않는 원리가 있는지,

변하지 않는 그 원리에 따라 수시로 나의 정신과 행동을 파괴하고 수선하며 무질서로 혼란을 겪고 있는지

나만이 나를 점검, 검열할 수 있다. 

(지담의 삶의 원리는 같은 매거진 '계산은 치르셨는지요?'에서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끝까지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원리에 따르지 않는 것이니 계산을 치러야 할 것이며

원리에 따르기 위해 혼돈이 온다는 것은 원리에 따르는 것이니 이미 계산된 영수증을 착착 받게될 것이다.


*매일 새벽 5시, 브런치글 발행과 함께 

'읽기 어렵거나 까다롭거나 버거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지만 읽기 싫은' 책들을 부분적으로 지담이 들려주고 싶은 문구들을 낭독하여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에머슨, 윌리엄블레이크, 발타자르그라시안, 니체, 스캇펙, 니콜라스나심탈레브, 말콤글래드웰,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데이빗소로우 등등에 이어 오늘부터 조던피터슨의 '질서너머'가 시작됩니다.

https://youtu.be/deQ9q_255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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