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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24. 2022

나는 차막히는 터널이 좋다.

'근성'에 대한 소고

나는 차가 없는 뚜벅이다.

대학 3학년, 일을 시작하면부터 차가 있었으니

무려 30년간 운전을 한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차를 팔아버렸다.

반년정도된 것 같다.


단순한 셈때문이다.

나는 나가는 걸 싫어한다.

나는 매일 만보걷기를 한다.

나는 여기저기 잘 얻어타고 다닌다.

나이들면서 운전하다 졸릴 때가 많다.

운전을 할 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귀로 음악듣는 것 외엔.

자동차세, 기름값 따지면 급할 때 택시타는 것이 훨씬 시간돈에 있어 경제적이다.

이게 차를 팔고 뚜벅이를 선택한 단순한 셈이다.

운전하면서 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모르는 길을 기가막히게 찾아가는 쾌감도

뭐..별로다.

하지만, 터널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터널안의 어두침침한 것보다

어두움을 밝히는 노르스름한 빛도 좋고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좋고

뭔가 벙커속에 숨은 듯한 안정감도 좋고


하지만 진짜진짜 터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가 막혔을 때다.


차가 막힌 터널 속에선

제 아무리

운전을 잘하는 능력도

여기가 어딘지 빠삭한 정보도

차문을 열고 나갈 수 없으니 잘난 외모도 명품치장도,

근사한 세단도

사회적인 지위도, 직업도, 가방끈도

출신성분도, 환경도

뭣도 뭣도

다 소용없더라.

그냥 차 안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이 앉아있어야만 하는

그 똑같은 모양새가 좋다.

왠지 공평한 것도 같고

왠지 다시 모두가 출발점에 선 것도 같고..


제 아무리 목소리 큰 놈도 차막힌다고 성질내봤자 자기귀만 시끄럽다.

제 아무리 성질급한 놈이 아무리 크락션을 울려봤자 무조건 욕만 먹는다.

제 아무리 성격드러운 놈이 답답하다고 뛰쳐나와봤자 자기만 위험하다.

그냥 묵묵히 앉아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켜내야만 하는 곳이

터널이다.


터널은 일단 들어가면 컴컴하고

막상 차라도 막히면 답답하고 나가고 싶고

갓길에 잠시 바람을 쐴 수도 없고

여하튼 차가 막히는 터널 속은

구속된 공간이다.


그런데

터널은 무조건 앞으로만 가야지 뒤로 갈 수 없으며

막히든 어쨌든 그 길 바로 앞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밝아지고

갓길에서 쉴 수도 있고

우회도로도 있고

휴게소도 있고

졸음쉽터도 있고

여러가지 자유로운 선택이 곧 나에게 온다.


터널이네! 싶어 싫었었는데

이제는

터널이구나! 싶어 아주 좋다.


인생에 풀어야 할 숙제는 많지만

숙제해결은 근성. 

이것 하나면 무조건 풀어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경험케 하니까.


빛은 어둠이 있어야 빛인 것이고

행복은 불행을 경험해야 행복인 것이고

성공은 실패를 치러내야 성공인 것이며

자유는 구속을 견뎌내야 자유인 것이다.


터널은

그런 곳이라 좋다.

빛을 위해 어둠을 견뎌내는 근성

행복을 위해 불행을 이겨내는 근성

성공을 위해 실패를 극복하는 근성

자유를 위해 구속을 선택하는 근성.


묵묵히 갈 길을 가는 것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묵묵히 내 정신에 인(仁, 어질인)을 키워내는 것

묵묵히 내 육체에 인(忍, 참을인)을 채워넣는 것


터널.

참 좋다.

차가 막히면 더 좋다.










#김주원교수 #터널 #근성 #성공 #자유 #구속 #실패 #행복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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