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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18. 2022

철학에서 '부(富)'의 근원을 찾다-세네카 1편

예지에 가난이라는 벌을 내린 자는 없었다.

"예지에 가난이라는 벌을 내린 자는 이제껏 한 사람도 없었다. (중략) 다른 사람의 피에 물든 것도, 또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치며 비열한 방법으로 얻은 부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쌓아 올려도 좋다. (중략) 현자는 명예로운 방법으로 재산을 손에 넣어도 그것을 자랑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중략) 현자는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은, 단돈 한 푼이라도 문지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큰 부라도, 운명이 주는 선물이고 자신의 덕이 맺은 열매인 한, 거부하지도 쫓아내지도 않는다. 실제로 부에 좋은 장소를 내주는 것을 아까워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온다면 오게 하라!"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폭군 네로의 스승이면서도 네로에게 자살명령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내게 스승이다.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내 인생의 뼈대를 잡아준 철학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세네카는 나의 사고에 큰 타격을 가했다. 내 사고체계 안에서 '부', '부자'라는 단어는 다소 터부시되어 왔다. 왠지 내가 속물같고 더 나아가 '나는 이대로 잘 살고 있는데 뭘. 내가 가난해지겠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었던 나에게 세네카는 '현명한 부', '공명정대한 부'라는 개념을 심어주며 그렇게 살라고 나에게 호통을 쳤던 것이다.


세네카는 확언하듯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부는 '명예로운 부'라고.

'얼마든지 쌓아올려도 좋다'고.


지금 나의 현실은 지금껏 내가 거쳐온 선택과 판단들의 결과다. 즉, 지금 나의 통장잔고는 냉정하지만 지금껏 내가 선택한 결과들이 정량화, 물질화된 것이며 결과적으로, '부'는 나의 삶의 객관적 증표인 것이다. 

그러니 할말없다. 

딱히 치열하지도 딱히 게으르지도 않았던, 남들만큼만 열심히 하고 주변 누구누구보다 쪼끔 더 나아지려 노력정도에 그치는, 별다른 꿈없이 여기저기 투덜거리던 나에게 세네카는 명령하듯 알려줬다.


'부'를 추구하고 '부'를 나누라고!

그런 자가 '현자(지혜로운 사람)'라고!

 

국내 경영학계에서 최초로 '경영인의 지혜(managerial wisdom)을 연구해 논문우수상을 받은 학자로서 나는 나의 연구대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다. 감히 말하건데 '지혜'란 실행(executive)이 포함된 개념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삶의 지혜로 발현된다는 것은 반드시 실행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렇게 발현된 결과가 '지혜로운' 결과이다.


나의 삶의 성공은 '나의 가치실현'이다. 이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허상가, 망상가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해내는 진정한 성공자를 의미한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증명해내고 나라는 사람이 삶에서 구현해내야 하는 간절한 무언가를 찾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삶의 총체적 숙제다! 이런 내게 '부'의 개념이 터부시되어 자리잡혔었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두 다리로 서있지 못하고 한쪽 다리로만 절름발이처럼 살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몽테뉴의 표현을 빌자면, '이성의 절름발이' 였던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나에게 세네카의 '부'에 대한 규정은 나름 파격이었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내 사고를 완전히 옮기게 했으며 덩달아 행동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다. 가령, '나라곳간 걱정말고 네 곳간이나 걱정하라'는 그의 말은 삼삼오오 모여 정치, 경제, 환경, 학교 얘기로 나름 친목모임에 나가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착각하던 나에게 '도대체 뭐가 중한디?'라며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내 머리를 쳐박았다. 그저 지적인 허영이나 부린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래 좋다! 부를 추구할 것이며 정당하고 공정하게 만들어 낼 것이다.'라는 각오를 굳히며 내가 쌓은 부를 세상에 나누며 이 세상을 멋지게 하산하는 나의 모습을 서서히 구체화시키기 시작했고 이제는 당당하게 '부를 원한다'. '부를 가질 것이다'를 나 스스로 나에게 주입하고 확신하고 주변에 떠들고 다닌다. 속물이라고 놀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세네카가 규정한 부를 가진 자를 속물로 보는 그 사람은 어차피 부자가 못될 것이니 그 말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돈을 쫒는 것이 아닌 돈이 나를 쫒도록, 투명하고 깔끔한 정신에 대한 물질적 보상으로 나는 '부'를 쌓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 책을 읽고 배운다. 투명하고 깔끔한 정신, 정신의 질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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