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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9. 2022

브런치 4달째

창조된 것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숨쉬며 갈길간다

2022.12.18. 브런치 4달되는 날.

2022.12.19. 새벽 3시 캡쳐

이번 달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편의 글을 썼다.

장하다. 잘했다.

분명한 것은

글이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글쓰기가 완전한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손끝까지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단어를 선택 조합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이래저래 시간을 벌었다.


1달째엔 그저 쓰는 것에, 또 기존에 써놓은, 노트북 속에서 잠자는 글들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2달째엔 새로운 글쓰기, 가령, 에세이쓰기에 도전하며 곤혹스러웠고

3달째엔 그냥 나오는대로 써버리는 한달이었다. 소재가 빈약해 읽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했고.

4달째 소재가 빈약하다는 느낌은 사라졌다. 일상의 그 어떤 것들에서도 소재는 존재하며 나아가 일상에서 소재를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글쓰기는 멈춰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기본을 이제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서술식 글쓰기로 시작한 브런치글은

주장하다 설명하다 그러다가 정리가 되었고

정리가 된 것에서 다시 소재를 찾아 그 소재에 나의 사고들을 투입시켜 나갔으며

4번째 달에는 이를 다시 배열하다보니 또 다른 소재가 튀어나와 늘 그것들 주워담느라 바빴던, 하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게 그렇게 얻은 소재에 나의 혼을 싣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던 기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글이 염세적으로, 냉소적으로 치우친 경향들도 좀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바닥까지 가야 다시 치고 올라오니 오히려 희망적인 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면, 탐구는 근원까지 가야 멈출 수 있으며 근원은 모든 것들을 거둬내는 작업이기에 거둬내는 그 과정은 염세적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나를 중심으로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지속해서 연재중이던 -천일의 새벽독서가 준 발견과 해체-에 이어 나, 그리고 책과 연관된 타인을 대상삼아

관계에서 느껴지는 편지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찰이, 그의 눈빛부터 그들이 보내주는 에너지까지 아주 민감해진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렇게 섬세하게 관찰하며 살아봤을까 싶을 정도로. 또 민망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깊은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그대로 글로 표현하는 욕심을 부렸다고 할까...물론, 나의 언어표현이 나의 마음을 따라주지 못해 속상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던 시간에서, 그리고 글을 읽은 이들이 내 속내를 알아준 것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책으로부터 나로,

나에서 타인중심 관계로.

차후엔 이들의 통합으로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의 글이 탄생하겠지 기대도 하련다

서술방법은 아직 가릴 처지가 못되어 이런저런 방법을 모두 모색해야겠다


구독자는 840명이 넘었고

목표한 바는 없지만 남들이 말하는 구독자 1000명까지 얼마 남지 않다. 잘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1000명이 되면 뭐 달라지는 게 있나?

내 마음은 물론 달라지겠지.


몇몇글은 어디 드러내진 것도 아닌데 조회수가 2000이 넘었다는 메세지를 받기도 했으니

창조된 것은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숨쉬고 있음을 체감했다.

갈 놈은 가고 멈출 놈은 멈추겠지.


여하튼 숫자의 증가는

책임의 무게를 보태고

영향있도록 글을 써야겠다는 다부진 의지가 어떤 것인지도 느끼게 한다.


몇몇분은 매일 덧글로 나의 글에 응원과 격려, 그리고 자신의 의견들을 피력해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떻게든 나중에 보답은 해야겠다. 서로의 생각들이 공기중에 떠돌다가 오묘한 지점에서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서로 마주보고 한참 공감의 느낌 주고받으며 지나치기도 하는 정신의 교류덕에 내가 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 어떠한 타격이 없으면 내 정신이 타인의 정신과 섞일 수가 없으니 나의 사고가 글로 형태를 갖추어 공기중에 떠도는 것은 누군가에게 타격을 가할 것이며 누군가의 글로 인해 나도 타격을 받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주는 지장이 훨씬 강기에 글이 주는 힘을 결코 무시하면 안될 것이라는 기본자세도 다시 한번 고쳐 재정비해본다.


아울러, 내 정신이 세상에서 놀다오라 내보낸 나의 말과 글이 어떤 짓을 하며 누구랑 노는지 나는 좀 더 지대하게 관심을 두기로 했다. 어디가서 자기 영혼을 뺏기기도 하니(표절)말이다. 물론, 큰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내버려두자니 내심 찜찜하다. 그렇다고 어쩔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참 신기한 것은 형태도 없는 정신의 것들이 어찌 이리 자꾸만 생산되는지, 이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또는 많은 지체들을 담고 있기에 무한정 생산되고 무한의 세계를 떠돌며 내게로 오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양들이 생산될지 나는 내 정신속이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매만져주지 않으니 이 정신이란 녀석이 내 관심이 필요했던지 무진장 열심이었던 시간에 내 보답은 해야할 듯 하다.


내 정신과 세상이 앞으로 어떤 협정으로 이어질지 가히 기대도 된다. 때문에 애초에 50개로 끝내려고 했던 '천일의 새벽독서가 준 해체와 발견',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매거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쓰게 되었고 현재 69개이니 100개이상 쓸 것 같다는 묘한 쾌감이 벌써 내 안에 꿈틀댄다.


그냥 계속 해보는거다. 하지 않으면 내 속에서 썩어 없어지는 낭비가 되니 그냥 방출하는거다. 이래저래 잘하려 말고 그냥저냥 내 속을 내비치면 되는거다. 다듬어 내보내지 말고 그저 못난대로 내보내다 보면 알아서 시간과 함께 다듬어지겠지. 양이 쌓이면 질적승화가 일어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양을 지속적으로 쌓아보는거다. 그 쌓이는 양에 맞춰 어떤 지점에서는 새로운 소재의 창조가, 어떤 지점에서는 새로운 문체의 창조가, 어떤 지점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글발이 등장하다 그것들이 스스로의 에너지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내겠지. 


내가 재단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매일매일 정해진 양에만 도달하면 된다.


이제부턴 '의도하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 글에서도 의도하는 바가 없어야겠다. 진짜 근원적인 글로 모두가 자기해석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공감하는, 그러면서도 인간이기에 공통적으로 공감이 되는, 말하자면, 모두 인간이기에 공감하지만 자기 환경에서 달리 해석하여 적용되는, 그런 글말이다. 애초에도 그랬지만 더더욱 나에게서 빼버려야 할 것이 '의도'다. 그저 읽음으로써 들어오는 것을 내 정신이 어찌 만들어주든 의도없이 내보내는 것. 힘을 더 빼고 자연에 맡겨보는 것. 지금부터는 더 그리 해보는거다. 그리 한다면, 앞서 말했듯이 창조된 그것이 알아서 제 갈길을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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