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19'
잠깐 네 주변을 둘러볼래?
네모가 참 많을거야. 창, 책, 노트, TV, 핸드폰, 노트북, 티슈, 식탁, 봉투 등등.
엄마는 네모가 참 좋다!
빛을 전해주는 창, 정신을 살찌우는 책, 내 속을 꺼내게 하는 노트, 상상을 불러오는 TV, 언제나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노트북, 사랑하는 너를 보고 듣게 해주는 핸드폰, 모든 걸 깨끗하게 닦아주는 티슈, 맛있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식탁, 뭐든 가득 담아내는 봉투...
그러고 보니 주변이 거의 네모더라구.
방도, 책상도, 포스트잇도, 인덱스도 다 네모야.
당연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
당연하게 내 눈에 들어온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어떤 순간에는 찬찬히... 깊게 들여다보면서 너에게 해줄 말이 생각났어.
네 시야에 포착된, 네 손에 닿은, 네 곁에 그저 그렇게 놓인 것들을 단순한 사물이라 여기지 말고 하나하나가 너와 만나는 순간, 어떤 의미를 갖게 된다면 네 인생이 훨씬 재미나고 풍성해질 것 같아서 말야.
그래서 오늘은 많은 사물들 가운데 너에게 무한의 경험을 줄 수 있는 2가지를 얘기해볼까 해.
물론, 엄마의 머리속, 생활속의 경험들을 꺼내놓는 것인데
바로 노트북이나 핸드폰, 그리고 책이야.
여기서는 TV나 노트북, 핸드폰을 그냥 핸드폰이라 퉁치고 얘기할께.
엄마는 주로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너희들은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사용하겠지. 아무튼 이들에게 종속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지. 이 시대엔 이렇게 살아가는거지. 굳이 그 재미난 용도의 것을 사용하지 않을, 줄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년이 되면 핸드폰사용을 줄이겠다. 하는데... 글쎄... 얼마나 지켜질까?
엄마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
핸드폰이 내 인생에 일단 들어와 영향을 미친다면 굳이 줄이는 방향 말고
제대로 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면 어떨까?
드라마와 영화를 자주 보렴
네가 살면서 겪은, 그리고 겪을 경험들은 어쩌면 너무나 단순한 것들이란다. 물론, 그 경험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 작은 부모의 울타리안에서 작은 경험들로 만들어진 너의 범주에서 겪을 수 있는 것에는 무조건 한계가 있단다. 하지만, 네가 살아야 할 세상은 이미 international을 너머 global, 아니 우주까지 진화한 세상이야. 이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기에는 시간이나 공간, 비용면에서 너무나 제약이 따르지. 그래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무한한 세상을 네가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드라마와 영화인 것 같아.
로맨틱을 보면 감정을 읽을 수 있고 법정이나 수사극, 의학드라마를 보면 소신을 배울 수 있고 역사극에서는 책으로 접하지 못한 서사들을, 그리고 공상, 상상이 펼쳐지는 극에서는 지금은 영화속 한장면이지만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느껴지지. 극속의 '가정'을 보며 다시금 '정(情)'을 알게 되고 '조직'을 보며 '이해관계'를 염탐하며 '사회'를 보며 사회계층과 구조를 한탄하기도 하고 '국가'를 보며 뜨거운 가슴을 느끼기도 하지. '세상'을 만나면 가보지 못한 그 곳을 염원하기도 하고 '자연'을 만나면 신이 네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함을 알게 되고 '우주'를 탐험하면서 미물같이 초라한 나와 직면하기도, 하지만 중심이 너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되지.
스탠리큐브릭, 팀버튼, 히치콕, 키에슬로브스키, 레오까라와 같은 감독에 심취했었고, 왕가위의 등장에 박수를 보냈고, 스필버그에 놀라면서 영화에 빠져들었었지. 영화광이었던 엄마는 영화한편을 4번에 걸쳐서 봤었단다. 처음엔 스토리를 그냥, 두번째엔 감독의 의도를 알기 위해, 세번째엔 영화음악을 느껴가며, 마지막엔 다시 전체를 감상하며. 그렇게 진하게 영화는 엄마에게 갈 수 없거나 가보지 못하는 시대와 세상, 만날 수 없는 인물들, 결코 내 것이 아닌 감성들을 알게 했어.
음..실화에 근거한 것들을 보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수퍼맨을 알지.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동화가 주는 무한상상과 아름다운 감성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쉰들러 리스트, 아름다운 인생, 라이언일병구하기와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눈과 귀로 경험하고 한 사람의 소신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감동하지.
두번째 네모는 눈치챘겠지만 책이야.
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네가 앞으로 접하길 원하는 책들을 그저 나열해볼께.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나 삶을 위해 네게 장착해야 할 기본항목들을 체크하고
소로우를 만나면서 소신있는 자연주의적 삶을 체험하고
에머슨을 만나면서 자기만의 철학을 스스로 배워, 채워, 세워 나가보고
세네카를 만나 인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아보고
릴케를 만나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느껴보고
나폴레온힐을 만나 성공적인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고
귀곡자에게서 처세술에 대한 명강의도 들어보고
올더스헉슬리에게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지식으로 하나의 궤를 만들 수 있음도 알아내고
루크레티우스를 만나 세상이 움직이는 기본 중의 기본도 터득하고
에피쿠로스를 만나 궁극의 쾌락에 동의와 동감을 해보고
알랭드보통을 만나 인간의 언어가 저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음도 느껴보고
파올로코엘뇨를 만나 현실감있는 통찰도 경험하고.
스웨덴보그를 만나 함께 영혼의 세계에 놀러도 가고
리차드파인만을 만나 진짜 자기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알아내고
오그만디노를 만나 두루마리의 비법을 전수받고 아카바와 같은 별친구도 만들고
톨스토이나 괴테를 만나 서사에 철학이 어찌 이길 수 있으랴... 네 인생경험의 소중함도 깨닫고
몽테뉴를 만나 신사의 철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네 생애의 색도 골라보고
네빌고다드와 월레스와틀스에게서 천재는 이렇게 단순하게 부자가 되는구나도 배워보고
나심탈레브를 만나 학문이 이렇게만 진행되면 참 이로운 사회가 될텐데에 동조도 해보고
데카르트와 악수하면서 당신에게 내 정신을 잠깐 맡기겠다고 저당도 잡혀보고
제임스앨런을 만나 형제없이 사라진 이가 남긴 주장과 사상이 후세에 이리 큰 힘을 발휘하는구나도 느껴보고
발타자르그라시안에게 네가 아는 지식을 모두 내려놓고 지혜를 구해보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삶의 힘겨움앞에 약해지는 너를 만나면 따끔하게 회초리 한대 부탁드려보고
칼릴지브란, 예이츠, 세익스피어, 블레이크 등의 문학에서 너의 소멸되어 가는 감성을 다시 호출해보는.
책은....
너의 영원한 친구란다.
친구란 오래된, 만나면 좋은, 가끔 사는 얘기나 나누는. 그런 존재라기 보다는
너와 삶의 결을 비비며 언제든 네게 필요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해.
책이 네게 친구이길 바란다.
책을 친구로 삼으면 그 친구는 더 없이 소중한 또 여럿의 친구들을 네게 소개할거야.
자연과 우주와 세상과 신과 책속의 다양한 인물들이 모두 너의 삶 곳곳에서 절친이 되지.
그렇게 네 인생에 스며들어 살면서 결코 너를 외롭게 하거나 비탄에 빠지게 하거나 과거에 잠식당하게 하거나 현재만 몰두시키거나 허상과 같이 미래를 그리게 내버려두지 않지. 정말 소중한 친구는 삶의 전진에 너를 잘 어울리도록 이끌어준단다.
매일 해야할 것들을 벗어나
네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디지털 속에서, 그리고, 디지털 밖에서
너는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수많은 경험들을 모두 네 것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미래는 기억속에 있지 않고 기억밖에 존재해.
네 경험은 네 기억으로 남지만
극속의 간접경험들은 네 기억의 양을 풍성하게 해주고
책은 그 기억들의 틈새를 찾아 네 미래에 필요한 부분들을 제대로 세팅해주지.
행운과 기적은 미래에 있지 과거에는 없어.
네 인생을 위해 수많은, 엄청난 크기의 행운과 기적들이 대기중이야.
이들에게 너를 데려다줄 이정표가 바로 책과 극이야.
이들을 멀리하던 습관에서 가까이 하는 습관으로의 이동은
결국 행운과 기적같은 신비로움에 너를 데려가는 유일한 길이란 걸 잊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