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 7.4, 순수결정체인 당신에게

J.Y.에게

by 지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써주면서 왜 나에게는 아직이지?'

당신이 얼마나 나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렸을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맘이 먼저 듭니다. 그러나, 변명같은 충분한 이유를 말씀드릴께요. 일단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수주간 '나의 글'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간 발행하던 글들 대신 나의 글과 일상,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스스로의 논쟁과 비판과 상심의 시간들을 써내려간 것을 당신도 아시지요? 그런 상태에서 감히 당신에게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신이 계속 변하는 겁니다. 아, 이쯤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만난 당신은 또 한뺨 성장해 계신 겁니다. 여기서 쓰려 했는데 다음 날 당신은 저기에 서계시고 저기서 쓰려 하니 다음 날 다른 곳에 또 서계시더군요. 어쩌면 오늘 이 글을 쓰고 며칠 뒤 받아보시는 그 시점에 당신은 또 다른 위치로 옮겨가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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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선 나태주시인의 '풀꽃'이 생각납니다.

아니, 당신은 이 시의 주인공인, 풀꽃입니다.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당신은 이 시의 주인공입니다. 마치 나태주시인이 저처럼 당신을 오래.. 매일.. 보고서 이 시를 쓴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 시에는 당신이 담겨 있습니다. 클로버 풀밭에서 오..래..보고 찾아낸 네잎클로버처럼, 언뜻 보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오..래.. 보다가 귀하고 소중하게 발견된, 그런 존재죠.


그냥 헝클어진 머리에 얘들 둘 데리고 쩔쩔매며 대충 배달음식 시켜먹으며 하루를 전전긍긍하던 아줌마. 그 평범함 속에 그렇게도 간절했던 '배움'에 대한 열망과 '성장'에 대한 갈증과 '예술'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튀어나올듯한 창작의 혼이 담겨 있었을 줄이야... 그 누구가 알았겠어요...?

당신을 오래... 보고서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당신과 나는 이웃에서 친구로, 그리고 지금 비밀스런 연애를 하듯 표정으로, 눈빛으로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 썩 괜찮은 사람이잖아!'라고. '내 안에 이런 게 있다구요!'라고. 이제 꽃봉오리 살짝 세상으로 내보내며 당신은 드디어 세상을 향해 당신의 깊숙한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창작의 날개를 서서히 펼치고 있네요. 결코 기죽지 않고,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결코 앞서지 않고, 결코 배움에 순종하며 당신은 그렇게 당신의 꽃을 피우고 있네요.

아...

이런 당신을 지난 8개월간 매일 새벽에 만났다는 것은 신이 제게 보낸 특별한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순간, 또 저에게선 감탄과 감사의 기도가 넘치는군요.


아마 사람에게 명품이 있다면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아니라고!' '과찬이라고!' 손 내젓지 마세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절 잘 아시죠? 좋은 말도, 싫은 말도 아닌, 그저 진심을 말하는 사람인거!


저는 그냥 마트에서 나눠주는 시장바구니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명품 에*** 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명품이랑 시장바구니랑 똑같이 생겼네. 순간 당황했지요. 그런데 모양도 비슷한 것이 왜 어떤 것은 시장바구니이고 어떤 것은 명품일까요? 명품은 한땀한땀의 장인의 정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오며 시간 속에 자신을 켜켜히 묵히고 묻혀가며 자체의 빛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값어치는 감히 물질로 환산하기 어렵죠. 즉, 우리는 오래된, 순수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지닌 자체의 빛을, 자체의 격을 본능적으로 느낄 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입니다. 명품이지요. 화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지만 오랜 시간 묵혀둔 당신만의 것을 지닌 순수결정체지요. 미간에 주름잡고 보일듯 말듯한 왼쪽 볼의 보조개 잠깐잠깐 힘주면서 당신은 당신자신도 속이지 못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와 모두를 대합니다. 미안하면 미안한대로, 자신있으면 자신있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알면 아는대로. 그렇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보여줍니다.


당신에겐 필터가 없어요. 감정도 이성도 그냥 드러납니다. 그래서 보여지는 그 자체로 당신이 보입니다. 아니, 보여지는 당신이 당신 자체라 믿어집니다. 가식도 설정도 치장도 없는 그 자체. 당신과 같은 사람은 상대의 에너지를 보호해 줍니다. 애써 당신을 알려하지 않아도, 당신의 입술로 나오는 언어를 애써 해석하지 않아도, 당신이 마음에 무엇을 감춰뒀는지 애써 찾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저 당신이 보여주는 그 자체가 당신의 내면이니까요. 참.. 귀한 사람이죠...


그래서, 당신을 만나면 엄마의 양수와 같다는 농도 PH7.4의 물을 마신 듯 합니다.

어떤 유해물질도 다 거른 채 안전하게...

그냥 그렇게 내 몸에 그대로 흡수해도 전혀 문제없는,

그냥 그렇게 내 정신에 당신의 사고(思考)가 들어와 자연스럽게 섞여도 괜찮은,

그냥 그렇게 어떤 장벽도 없어 두 다리뻗고 대해도 결코 날 오염시키지 않을 그런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순간, 아니 순간보다 더 찰나에 진지함보다 더 진지한 듯 야릇한 어떤 표정이 당신에게서 드러납니다. 아주 찰나예요. 당신은 무언가에 콕 빠집니다. 콕 잡아냅니다. 콕 받아버립니다. 그 때 당신표정을 대변할 언어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무표정? 아니, 표정은 있는데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어떤 감정이 자신에게 훅 들어올 때 어떤 표정을 짓겠죠. 자신만이 아는 감정일테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표정을 내뿜겠죠. 당신이 찰나에 그런 표정을 합니다. 멍청했다가 애기같다가 순수했다가 아줌마같다가 뭔가 표정에 이름붙일만한 단어들이 많은데 그 표정은 어찌 이름해야 좋을지요? 2개월전쯤 그 표정이 제게 포착되었을 때 전 아주 놀랐답니다. 그리고 또 한번, 또 한번, 요즘엔 자주. 당신에게 그런 표정이 자주 포착됩니다. (이런 이유로 매번 편지쓰기를 미루게 된 겁니다.)


아... 이 사람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디어 드러나는구나...

아... 이 사람이... 자기가 뿜어낼 에너지가 안에서 나오는구나...

아... 이 사람이... 자기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구나...

아... 이 사람이... 자기안에서 드러날 실체를 감지했구나...

아... 이 사람이...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큰 자신을 발견했구나...


이렇게...

당신은 나비가 되기 위해 자기 안에서 꿈틀대는 송충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챘구나...


그래서 당신에게 저는 당부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자칫 종이한장 차이를 무시하곤 합니다.


어른이 되면 근엄하고 보다 짙은 색채를 지녀야 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진정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고

순수한 물과 같아야 하며

하얀도화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의 본성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으로서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자신과 모두가 부여받은 '삶'이라는 선물에 책임지는 인생인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니체가 말한 대로 '가장 높은 수준의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른으로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그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순수함을 잃어서, 누군가는 일찍 철이 들어서, 누군가는 너무 짙게 채색되어서 결코 되찾을 수 없는 그것을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새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분인 듯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가 어른이 될수록' 가져야 하는 그것으로 기죽지 않고 자신을 키워내는 삶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바로 시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능력이 아닌 의지가,

환경이 아닌 간절함이,

주입된 것이 아닌 내면의 것이,

남으로부터가 아닌 나로부터가,

지금 가진 것이 아닌 앞으로 가질 것에 대한 간절함

자신을 얼마나 성장시키고 또 나아가 인생을 변화시킬지를 보여주실 분이십니다.


결코 당신의 꿈을 잃지 마시고 내려놓지도 마시고 피하지도 마세요.

이미 당신은 당신의 '꿈'으로 가는 다리 위에 서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이리 오...래... 보면서 알아가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이리 오...래... 알면서 깊어지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이리 오...래... 대하며 사랑하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에 저는 또 누군가를 그리 오...래... 볼 여유와 이유를 선물받았습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아마도 같이 새벽독서하는 모든 분들께 당신이 너무나 커다란 선물을 주고 계신 겁니다. 남보다 탁월하지 않아도, 남보다 부자가 아니어도, 남보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어도, 남보다 잘난 능력없어도. 모두가 당신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신이 가진, 때묻지 않은 순수함, 하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은, 그리고 배운 것을 주저없이 실천해버리는 신성한 무의식, 알고 느낀 것을 가감없이 표현해낼 줄 아는 자체용해력, 그리고 당신 안에서 세상으로 나올 기대품은 잠재된 무한성. 이 모두를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당신이 이미 지니고 있는 이 귀한 것들이 당신을 분명 당신이 원하는 그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당신을 닮아가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겠지요.

당신은 그렇게 참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참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참 대화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참 궁금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참 오...래... 같이 걷고 싶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오...래... 제 곁에서 함께 걸어주길 바랍니다..

저도 당신을 닮아 당신곁에서 오...래... 함께 걸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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