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매거진 - '김지현'님의 새벽독서
브런치 8개월에 접어들며 선언한대로 나의 글의 모체인 '새벽독서'를 모두와 공유하는 매거진 [새벽독서의 기적]은 수년간 혼자였던 새벽독서가 '함께하는 새벽독서'가 된지 9개월에 접어들면서 감사의 표현으로 독서모임멤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나의 독서모임의 목적은 자신의 성장에 포커싱되어 있다. 책만 읽고 해석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2 가지의 큰 양상, 첫째 지적허영이다. 헛똑똑이, 지식만 증가하는 바보지식인을 엄격하게 지양하고 둘째, 감정의 치우침이다. 마음의 위로나 과거의 환기만을 남긴 채 현실에서 더 멀어지는 것 역시 진지하게 경계한다.
인생과 삶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아무리 자신이 발버둥을 쳐도 세상은 성장의 방향으로 나간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인간 모두는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을 찾고 자신을 알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세상의 조화에 일익하는 것이니까. 단지 그것뿐이다. 이를 위해 현재가, 일이, 자원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무한한 내면을 경험하고 믿고 그것으로 당당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개체가 되는 것이 지적탐구의 일환인 독서의 목적인 것이며 코칭이 이끄는 길이다.
지담북살롱 카페 전체가 들썩인다. 매주 줌으로 1:1 코칭을 하고 있으나 요청에 의해 오프라인 집단 코칭을 처음으로 개설하고 처음 시도했는데 카페 전체가 온통 자기알기, 자기이해, 자기미래, 자기극복, 자기정화, 자기 성장으로 들썩인다. 들끓는다. 짧지만 강한 몇개의 글만으로도 나는 이 강력한 에너지를 온 몸으로 느낀다.
오랜만이다. 이 느낌. 개인적인 연유로 수년간 일을 접고 고립하여 나의 공부에만 매달렸었는데 새벽독서를 함께 하는 이들로부터 나의 코칭은 다시 세상으로 나왔고 과거 조직이나 가정 등 집단코칭을 하며 겪었던 강력했던, 엄청난 변화로 뿌듯했던 그 느낌을 이번에도 살짝 감지해본다.
사람의 성장은 놀랍고도 신기할 정도로 고마움을 준다.
어떤 누군가의 성장은 나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나뭇잎의 두께만큼 땅에 거름이 되어 후손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크기가 작든 크든 딱 그만큼 대자연의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해 쓰이기 위해 소멸된다.
우리 인간 개체도 그렇다.
나도 딱 나만큼 쓰이다가 그 다음 세대를 위해 소멸된다.
내가 나를 키워내는 것은 그만큼이라도 더 쓰이다가 다음 세대에 그만큼이라도 더 보탬이 되고자 하는 거시적보상을 위한 현재의 대가인 것이다. 한 개인의 성장은 그래서, 나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다.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이니까. 내 자식이 잘 되면 나는 행복하니까. 이기는 이타이며 이타는 이기가 된다. 나 역시 이런 관점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게으를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를 키워내고 소멸된다면 그 누군가의 자식이 살아갈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누군가도 자신의 자식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맘으로.
이런 지극히 단순한 관점에서 독서와 코칭은 아주 강력하게 자신을 성장시키는 도구이다.
나는 이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것이 나의 일이자 가치이자 꿈이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란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서 걷길 바란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서 이루길 바란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서 남기고 소멸되길 바란다.
나부터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면 누군가도 또 누군가도...
세상은 점점 본성으로 다가갈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우리의 뜻을 알아줄 것이기에
나의 이러한 집중은 세상이 알아서 키워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해야 할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어깨가 심하게 뭉쳤다. 나의 오른쪽 어깨는 늘 나를 곤란하게 하지만 곤란한 이 녀석 덕에 나는 늘 운동을 한다. 세상은 항상 곤란한 그것으로 개인을 동기화시킨다. 독서모임의 울보담당인 한분도 자신을 곤란한 지경으로 빠뜨린 자기 자신으로 인해 강력하게 동기화되어간다. 그리고, 에머슨의 깊은 뜻을 알아챈 듯하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가장 나에게 적합한 자리다'. 그리고 치고 나간다.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앞으로 걸으려 한다. 더 자신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으려 떠난 길이지만 서서히 알게 되겠지.
이미 적합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계속계속 적합한 줄 알았는데 자신을 키우면서 적합이 부적합한 자리로,
그래서 다시 적합한 자리로 걸어가겠지....
난 이 분의 삶이 너무나 기대된다...
내가 서있는 자리가 가장 나에게 적합한 자리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할 수 없다.
이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
강력하게 나아가고 싶다.
따라서
내가 지양해야 할 것은 지금 나로서의 판단.
찰나의 나 역시 과거이다.
과거는 결코 미래가 될 수 없다.
지금 나의 판단에 의지한다면 가보지 않은 미래의 원하는 내가 될 수 없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다 더 잘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
격하게 가지고 싶다.
창 밖의 짙은 안개는 마치 나의 머릿속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새벽 독서 모임이 끝나고 살짝 걷힌 모습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 나는 아직도 모자란 인간이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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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프왈도에머슨, 자기신뢰철학, 정광섭역,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