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라보는 15개의 시선 14
나는 다양하면서 능력이 무한하고 신기한 짓까지 해내면서 너무나 대견하고 대단하고 위대한 몸종들이 많다. 이 몸종들이 제대로만 기능하면, 제대로 제 위치에서 자기 역할만 해준다면 나는 대단한 부를 누리는 주인이 될텐데. 아무래도 이 시점에서 나는 나의 주인으로서의 리더십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리 훌륭한 장수를 여럿 거느린다 해도 적재적소에 써먹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랴. 나는 그런 어리석은 주인은 되기 싫고 되어서도 안된다. 이 몸종들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나의 주인일까?
먼저, 나의 육체가 신체, 정신,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미리 전제한다.
신체는 물질화된 모든 것, 눈코입귀손발각종장기등등등을 의미하며
정신은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이성을 총칭하며
영혼은 나로부터 분리되어 세상과 교류하며 날 자극하는 느낌, 즉, 감각으로 전해지는 모든 것으로 규정한다.
자, 그럼 나의 몸종들을 하나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이 참에 몸종들이 제대로 일은 잘하고 있는지 점검도 해보고 어디 구석진데서 딴청피는 놈은 없는지도 살펴봐야겠다. 다들 막중한 임무를 띄고는 있지만 나름의 서열도 갖추고는 있지만 다들 해야 할 역할들이 달라서 때에 따라 이 녀석을 가장 위에, 저 녀석을 가장 위에, 이렇게 번갈아가며 지배우위의 위계를 바꿔가는데 그 때 감지 못하는 녀석이 있다면 몸종 전체의 시스템이 흔들리기에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명시시켜주는 것은, 가끔 점검해서 짱박혀 있는 녀석들을 일깨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선, '정신' 이라는 몸종이다. 이 녀석은 태어날 때 아주 근사하게 탄생했음에도 본질 자체가 촐싹맞고 나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실컷 돌아다니다가 가끔 되돌아오지 못하거나 만신창이가 된 채 돌아와 여럿을 속썩이는 통에 애초부터 몽둥이찜질을 좀 해야한다. '맞아야 정신차리지.' 이 말이 딱이다. 정신을 차려입게, 차비를 갖추게 하려면 맞아야 한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이 조금만 혼을 내면 이 녀석은 얼마나 충성심이 강한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있어서는 무한하다는 것을 알고 정신의 배우자격인 '이성'과 연합하여 잘도 통제하고 조율한다.
왜 정신이라는 몸종이 제 위치에 서 있어야 하냐면 이 녀석은 감정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모든 것을 신체로 이동시키는 창고이자 트레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하다. 쓰레기 이론, 쓰레기가 들어오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이 기본원리마저도 정신이 무한의 능력을 발휘하면 소용없어진다. 쓰레기같은 감정에 휩싸여 이 것이 나도 모르게 정신으로 흘러가더라도 이 녀석이 제대로 가공하고 정돈해서 쓰레기가 아니라 보물로 만들어 신체로 흘려보내기도 하니 말이다. 참.. 이렇게 대단한 녀석인데 가끔 말썽을 피며 거꾸로도 하니 문제다. 보물이 자기 감추려 살짝 걸친 옷 하나만 벗기더라도 금새 알아챌텐데 이를 쓰레기로 취급하니 말이다.
가령, 불안감이 흘러들어올 때 이를 좌절감으로 가공하며 무기력하게 행동을 유도하기도 하고 똑같은 불안감이 넘쳐 흘러 마구마구 쓰나미가 되어 정신을 뒤덮어버리더라도 이 녀석의 엄청난 가공할 힘은 이를 연마의 과정으로 행동하게 하니. 정신이라는 몸종만큼은 진짜로 정신차리게 잘 가르쳐 데리고 있어야 한다. 정신을 잘 가르치는 우두머리를 우리는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하니 의식은 절대 잠을 재워서도 안되고 아프게 해서도 안되고 어떤 방해요소를 줘서도 안된다. 늘 '깨어있는 의식'이어야만 한다.
다음 몸종은 감정이다. 이 녀석은 참으로 다양하게 나를 데리고 논다. 하루 종일 방안에 쳐박아두기도 하고 몇날며칠이고 나돌아다니며 들끓게도 한다. 이 녀석의 골치아픈 문제이자 엄청난 장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너무 자유로워서 예상도 안되고 통제도 안되고 친구들도 마구마구 데려온다. 설레임이라는 작은 녀석이 조신하게 놀다가도 열정이라는 녀석과 손잡으면 금새 쾌락의 도가니에 빠지는 파괴력을 낳기도 하고 눈을 질끔 감게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심이라는 녀석이 온마당을 휩쓸고 다니다가 이내 자기 짝인 두려움의 손을 놓고 침묵의 과정에 혼자 침잠하여 스스로를 자제시키기도 하니 감정이란 녀석이 흘려보내는 모든 것의 창고인 정신은 이 감정이 어떤 녀석을 업고 들고 매고 달고 오는지 잘 감시해야 할 터이다. 그래도, 이 녀석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으니 이 녀석은 반드시 필요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하하 요녀석이야말로 진짜 머리가 없다. 시키는대로만 하는 녀석인데 바로 신체다. 정신의 명령대로만 움직인다. 정신이 나갔을 때, 출타했을 때는 감정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기도 하는데 바로 요 타임만 조심하면 된다. 감정이 정신을 거쳐 신체로 가야 하는데 정신이 촐싹맞게 자리를 비울 때에는 이 신체라는 몸종은 무조건 방에 쳐박아 문을 잠궈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감정과 바로 손잡으려 달겨들테니 이 때는 무조건 가두는 게 상책이다.
자, 이렇게 내 몸종들의 hierarchy(계급)이 나눠지니 나는 정리가 된다.
감정-정신-신체의 패턴으로 '나'라는 사람이 움직여지는구나. 라고.
그러면,
감정을 움직이는 주체는 뭐지?
불안하다. 왜? 무엇을 경험했던 기억이 주는 공포심때문에,
설렌다. 왜? 무슨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프다. 왜? 무엇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름답다. 왜? 무언가를 봤기 때문에.
그렇다. 감정은 감각이 주체구나.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 그러한 모든 기억에 저장된 감각과 세상이 보내는 여러 감각의 자극들이 나의 감정으로 밀려드는구나. 이 밀려드는 흔들림이 감동(感動)이구나. 밀려드는 속도와 부피가 클수록 감동은 심해지고 작을수록 약한 것이구나.
감각이 나의 감정-정신-신체의 연동고리의 시작인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더 민.감.하리라. 센.스있어져야 하리라.
아, 그런데 또 가만.... 감각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이지?
왜 내가 무슨 기억에 대한 공포심에, 무슨 말에, 무언가를 봄으로써, 무엇을 느낌으로써 지금 여기에 사로잡힌 것이지? 왜 내가 지금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거지? 무엇이 나에게 이 신호를 준 것이지?
그렇다. 나의 가장 위대한 몸종은 영혼이다.
영혼이 나의 보이는신체, 보이지 않는 감정과 정신의 모체구나.
이 신호를 주는 것은 나에게 1%남기고 99%세상을 떠도는 나의 영혼이구나.
결국, 내가 민감하겠다는 것은 영혼의 자극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구나.
영혼의 자극. 영혼이 내게 보내는 신호, 메세지...
가장 위대한 몸종인 영혼의 신호에 따라
감각이, 감정으로, 감정의 동요가 감동의 강도로, 강도에 따라 정신의 질서의 각이, 이 각이 잘 잡히느냐에 따라 신체가....
이렇게 순환되고 연동되는 것이구나.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내 영혼에는 누가 자극하는 것이지?
왜 내 영혼에 내 허락없이 자극을 준단 말인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이 정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이다.
세상이 내게 명령한 나의 사명이다.
아... 세상이 나를 창조시키며 내게 심어준 그것을 꿈.이라 명명하여 부른다면
나의 꿈이 나의 영혼에게 계속 나를 자극시켜 나의 다리를 걷게 하는 것이구나.
꿈은 현재 세상에 없는 것.
하지만, 창조주가 세상을 위해 창조시키려는 것.
그 주인공이 나인 것.
따라서, 꿈은 창조주가 자신을 대신해 내가 그 역할에 딱 맞다고 판단하여 나에게 위임한 과업.
아...
그렇게 나를 통해서 구현해내려고 나를 이리도 체계적이고 조밀하고 긴밀하게 연동시켜나가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꿈이 나의 주인이라는 공식은 성립되는 듯하다!
꿈이 나의 영혼을 자극하고 영혼으로부터 감각-감정-정신-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간절하게, 너무나 절실하게.
그 절실한 감정이 나의 정신을 더 정신차리게 해서 나의 손발을 움직여대며 꿈으로 한발짝 더 나가게, 그렇게 창조주의 위업이 나를 통해 이뤄지게....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사람으로서의 나'는
'나의 주인인 꿈'의 창조,
다시 말해,
나의 주인이 이루고자 하는 그 것을 위해
몸종답게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내 신체는 몸종들의 숙소이자 말 그대로 가장 아래서열에서 시키는대로.
내 감정은 영혼이 보낸 자극을 그대로. 가공없이 느끼어 정신에 전달하는 교신자로,
내 정신은 수정, 삭제, 첨가를 통한 가공하여 곳곳에 명령하는 중앙통제집권자로,
내 영혼은 주인의 의중을 파악하고 제대로 전달받아 적당한 감각을 내게 제공하는 주인의 직접 수신자.
그렇게 정리시킨 후 주인인 꿈이 자신의 과업을 이뤄나가는구나.
이 전체의 연합에서
꿈의 간절함이 크면 클수록 감정의 다른 이름들인 의지와 열정, 투지, 동기, 끈기와 같은 모든 몸종들이 긴밀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나면 정신이 이를 받아 신체를 어떤때는 가열차게, 어떤 때는 빨리, 어떤때는 멈추게, 어떤때는 고립까지 명령하는 것이구나.
결국,
내가 기르고자 했던 의지와 열정과 끈기와 집중과 행동력과 판단력과
기타 모든 이성과 감정작용기능들의 주인은
꿈. 간절함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본다.
나는 몸종이다.
세상이 나를 주인공으로 간택하여 창조해내려 하는 업이 꿈.
꿈의 설계가 목표.
목표의 수단이 나의 몸.
나의 몸은 결국, 꿈의 몸종이고
나의 몸을 구성하는 신체, 정신, 영혼은 꿈의 역할수행주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오로지 세상의 창조에 쓰여야 하는 주인아닌 몸종으로서의 기능밖에는 없구나.
그리고 참!
이 몸종들은 정년이 보장된다.
아니, 정년이 아니라 자자손손 영원히 그 혜택이 보장된다.
주인인 꿈은 그렇게 너그럽고 대차고 후하다.
내가 몸종으로서의 역할만 제대로 수행하면
분명 주인인 꿈은 업을 이룰 것이고
그렇게 이룬 모든 것의 혜택을 몸종들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대대손손 베풀어준다는 사실.
기가 막힌 꿈의 현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