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는 골통이니
내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by 지담

오늘 새벽독서토론에서 '당신은 하루의 대부분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장난꾸러기 한 분은 '교수님은 요즘 생각할 시간이나 있으세요?' 했고

이내 나는 늘 그렇듯 툭 내뱉는다.


'내 머리는 골통이라서 내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 인스타그램 틀 (4).png


나의 무의식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주입되어버린 고정된 인식들이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요즘엔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고 나는 나에게 난 구멍을 찾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어제 발견한 1번째 구멍은 '나는 기준이 낮다'였다. 기준이 낮으니 그 정도까지 가면 쉽게 만족하고 적당히 날 칭찬하고 더 이상 가려하지 않는 나를 발견해서 기준을 높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발견한 나의 2번째 구멍은 '무의식에 자리잡은 나도 몰랐던 나의 고정인식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사고는 행동으로, 결과로 이어지는데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지 못한 것에는 분명 나의 의지가 닿지 않는 범주의 무의식이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이 타임에선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다소 남아선호가 강한 집안, 돈을 지독하게 아껴쓰는 집안, 웃음보단 갈등과 다툼이 많았던 집안, 사랑을 표현하기보단 곰처럼 침묵하는 것이 더 통했던 집안에서 자라왔고 나도 모르게 그러한 무의식적 행동들이 나의 도전에 상당한 방해를 받고 있음을 나는 이제서야 고쳐보려 시도한다.


'안정되게 살아야지', '아껴써야지', '듣기 싫어도 남자말을 듣는 게 집안이 조용해'와 같은 수시로 내 귀에 들리던 말들은 어느새 나의 무의식속에 무겁게 자리잡게 되었고 어떤 판단앞에서 그냥 남자말을 듣고, 일단 아껴쓰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삶으로 날 행동하게 해왔다는 사실. 귀로만 듣던 말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이다. 이미 형성된 나의 무의식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니까 말이다.


고정된 인식을

마치 진리인양 따르는

우메함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실제 열차레일의 표준궤(1435m)가 결정된 유래를 따지고 들어가면 마차바퀴의 폭이 그랬었고 더 거슬러 가면 애초에 건설 인부들이 레일간의 간격을 어떻게 할 지 몰라 쩔쩔맬 때 조지스티븐슨 이라는 사람이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라고 제시했다는 설이 있다. 뭐, 마차를 끌던 말 2마리의 적당한 간격이 저 정도의 넓이여야 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여하튼 그 오래전 이러저러한 기준없는 규정이 지금 전세계의 레일표준궤가 되어 있는 것이다.


햄의 가장자리를 꼭 잘라서 버리는 와이프에게 남편이 왜 버리냐 물으니 '엄마가 그랬다.'고 말했고 어머니에게 물으니 똑같이 '엄마가 그랬다'라고 말했고 더 거슬러 알아봤더니 당시 후라이팬이 작아서 그랬다고 한다(하브에커 '백만장자시크릿' 발췌)


듣고 보는 것의 위력은 상당하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느냐가

나의 사고, 마인드에 자리잡혔고

이 마인드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었고

행동에 의해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자, 이쯤에서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묻자.


'너의 관념 속에 네가 직접 경험으로 주입시킨 것이 있느냐?'
'네 경험으로 주입된 것이 과연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지금 따를만한 것이냐?'
'지금 너의 생각대로 판단한다면 과연 다른, 원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


나는 나의 인식이 명하는 판단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보다 더 큰 시선에 무릎꿇겠다는 말이다. 대부분 판단은 기억에 의존하는데 기억이란 녀석은 감정의 강도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지라 상당부분 이성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기억에 의존한 판단이 내 행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될 듯 하다.


느껴지는 것, 즉 감각적으로 '이걸 해볼까?', '이게 나을 것 같은데?'라고 느껴지는 느낌(feeling)은 영혼의 자극이자 신호이다. 느낌이 오면 심장이 뛴다. 기운이 감정으로 전해진 것다. 하라는 기운이면 하고 왠지 아니라는 느낌이면 안한다. 신호, 즉 느낌은 감정(impression)으로 전달받아 이성(thoughts)으로 보내진다. 이성이 판단하고 명령하면 행동(actions)이 일어나고 행동의 반복은 결과(result)로 드러난다.


어떤 일이든 이 순서대로 나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 나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켜야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나의 구멍, '귀로 들어왔던 말들이 무의식속에서 자기 위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나는 이 순간부터 나의 느낌을 따라 전달받은 감정에 의존하여 이성으로 보내고 이성이 기억을 배제시킨 상태에서 판단하고 행동에 명령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하여 결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형성된 나의 무의식이 나의 생각을 좌우한다!

나의 생각은 인식이 되고 인식은 이성에 의해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성이 판단하면 행동에 명령한다!

명령받은 행동을 반복하면 결과로 드러난다!


사소하지만 현명한 행동의 반복은 가공할 위력으로 뜻밖의 결과를 이뤄내지만

사소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행동의 반복 역시 가공할 위력으로 뜻하지도 않은 안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들어가면 나온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이든 들어가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느낌이 들어가서 행동으로 나오는 단계에 있어 나는 물어야만 하겠다.

감각에서 이성으로 가는 그 단계에서 나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나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관념은 없는가?'라고.


여기서 잠깐!

몽테뉴가 말해준 대로 내 '골통에 설사제'를 또 한번 넣어줘야 할까보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260




매거진의 이전글의욕없는 청년,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