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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나를 해체하다!

by 지담

본 글은 제목도 미정이고 글도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출간을 염두에 두고 그저 써내려 가는 글이라 제목도 마음 내키는대로 그때그때 수정될 예정이며 당분간 -새벽독서로 깨달은(배운) 어떻게 살 것인가-로, 문제도, 어투도, 내용도 오락가락 될 것 같습니다. 단편에세이가 아닌 글을 써내려는 과정에서 의례 겪어야 하는 수순이라 그대로 노출하는 용기를 내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 외면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이라면 연재되는 글이니만큼 지난 글과 이어서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발행은 매일 하지만 본 글은 매일 쓰지 못하며 띄엄띄엄 발행이 될 수도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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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 나를 해체하다


나를 아는 것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나를 알아야 나의 길을 갈 수 있고 나를 알아야 나를 잘 쓸 수 있고 나를 알아야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해의 차원이어야 나를 개념화하고 규정할 수 있기에 나로서의 삶이 가능해진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고 나로써 기능하고 싶었고 나만의 충만함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알고 ‘나’를 찾고 ‘나’를 규정하는, 처절하지만 집요한 고통의 쾌락에 날 묶어두었던 것이다. 아니, 묶어둘 수 있었다. 간절하니까. 나는 너무나 내가 궁금했으니까. 이 구속은 자발적 강요였기에 그 어떤 형용사로도 대변될 수 없는 아름답고 찬란한, 빛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지금도 그렇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인데 비슷한 삶을 사는 이들. 많은 이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나는 속박을 위해 고립을 택했다. 그제서야 꿈틀대던 정신은 맘껏 시간과 책과 어우러져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공간의 고립은 정체된 듯하지만 신체의 힘을 뺀 정신은 아주 다채로운 놀이를 만들어냈고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책읽고 글쓰고 밥하고 코칭하고 강의하는, 손가락 안에 드는 단순의 극치인 너무나 조용한 일상을 만들어낸 후 정신은 보란 듯이 이 일상의 단순함에 감사하며 사유의 길 위에서 지나치게 분주하게 움직여댄다. 살아있음을 수시로 느끼며 이도 모자라 억지로 구겨넣어서라도 죄다 쓰겠다 작정한 듯 시간의 즙까지 짜내어 하루를 삶 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구속과 자유, 정체와 흐름이라는 모순의 극치가 주는 오묘한 하루의 연속이 이제 일상이 된 지금, 나는 내가 선택한, 사유의 삶, 자유의 삶, 정신과 정서가 충만한 삶의 길에 들어섬을 느낀다. 인식이 차단되고 감각이 열리는, 보이는 것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 신호를 감지하는, 초월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런 것이구나 어렴풋하게 경험하는 찰나를 즐기며 나는 신나게 내 인생을 데리고 놀아보기로 한다.


인생이란 이렇게 내가 데리고 노는 것이었구나

자유란 정신이 주는 재미였구나

삶이란 사유의 길을 따를 때 제 길을 가는구나를 온감각으로 느끼며 나는 어제의 나와 휴전을 선언하고 이제 더 이상 나 자신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 나를, 내 인생을, 내 삶을 데리고 놀 수 있다는 처음 겪는 감정은 지나간 모든 허무를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듯 나를 흥분시켰다. 그래서일까. 나는 '버틴다'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한다. 인생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노는 것이다. 인생이란 삶의 길을 당당하고 재미나게 걷는 것이다.


역시 초월은 절제의 후미에 등장한다.

여유는 분주(奔走)와 단짝이며

자유는 구속 끝에 기가 막힌 맛으로 찾아오며

향유는 오감을 너머 육감, 칠감까지 열었을 때 그 진가(眞價)가 느껴진다.


여유 뒤에 자유가, 자유를 너머 향유의 쾌락을 맛본 경험은 지독한 고립과 철저한 구속이 주는 최고의 보물이리라. 마약보다 강력한 중독효과를 지닌 지적 향유의 향연은 더 이상 내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을 첨가하지 않더라도 눈만 뜨면 책상 앞에서 그 찰나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나는 평생 이 에파파니의 전율을 즐기며 살고 싶은 것이 꿈이 되었다.


사실 매일을 꿈같이 사는 나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겉의 초라함은 내적 충만으로 충분히 상쇄되고 바라는 것이라곤 매일 이렇게 읽고 쓰고 코칭하며 사는 삶이요, 갖고 싶은 것은 이렇게 살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자유이며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데도 안가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며 하고 싶은 것은 매일 이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기에 행색의 빈곤은 정신의 부로 충족됨을 실제 경험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 충만함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외적인 소유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가고 정체성은 나만의 ‘결’을 만들어 주리라. 그리고 같은 결을 지닌 이들이 나의 인생으로 걸어오겠지. 그렇게 삶이 풍성하게 살을 찌우겠지. 부여잡으려 애썼던 수많은 것들이 손바닥을 펴는 순간 모래알 빠져나가듯 스르르 빠져나가고 에너지는 진공상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치대로 나의 두 손은 ‘책’과 ‘글’로 가득차 버렸으니 나의 삶이 이렇게 중년에 정돈되어 가는 것에 대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사용하여 삶을 만들어간다.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모르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정도에 따라 내 삶의 풍성도는 달라질 것이며 풍성해지면 질수록 삶의 결도 더 고와질 것이고 나아가 삶의 질도 다듬어질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 나를 알기 위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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