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 나를 해체해보니 1
본 글은 제목도 미정이고 글도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출간을 염두에 두고 그저 써내려 가는 글이라 제목도 마음 내키는대로 그때그때 수정될 예정이며 당분간 -새벽독서로 깨달은(배운) 어떻게 살 것인가-로, 문제도, 어투도, 내용도 오락가락할 것 같습니다. 단편에세이가 아닌 글을 써내려는 과정에서 의례 겪어야 하는 수순이라 그대로 노출하는 용기를 내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 외면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이라면 연재되는 글이니만큼 지난 1~5편을 먼저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매일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발행은 매일 하지만 본 글은 매일 쓰지 못하며 띄엄띄엄 발행이 될 수도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자아의 의식혁명 단계에 이르면 단순 감각은 느낌(feeling)으로 승화된다.
즉, 보이는 것을 보는 시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해안, 안목이 되고
알고 이해한 지식은 ‘실천’이라는 입체적 경험이 보태져 지혜가 되며
귀로만 들리던 청취는 언어에 눈빛, 말투, 자신감과 같은 표현까지 보태진 경청이 되고
대화는 이면의 본질까지 공유하는 소통이 된다.
이렇게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생각차단, 인식제어 훈련이 이성을 활동시켜 정신이 자리를 잡도록 이끄는 자아의식혁명의 훈련이 거듭되면서 이성은 지성으로, 지성은 지력으로, 지력은 지혜로, 한마디로 메타인지로 승화되는 것이다.
자,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 더 정신을 물고 늘어져 보자.
내 정신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하는 질문에 우리는 관념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것을 깨지 않아 그대로 고착되면 고정관념. 처음 들어온 사고가 굳어지면 선입견.이라 부르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메타인지를 갖기 위해서는 관념, 나를 지배하는 생각덩어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를 파헤치려면 내가 어떤 생각들로 지내왔는지를 연역적으로 거슬러 가보면 알 수 있다. 관념은 내가 겪은 실재(實在)적 경험의 축적이 누적된 것이다. 이를 먼저 취한 행동, 즉 '선취행동'이라고 하는데 반복된 선취행동이 서서히 굳어지면서(습관이 되면서) 나에게 관념으로 자리잡혔고 이 관념이 곧 나의 정신이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원인과 결과, 즉, 인과로 이뤄져 있다. 하나씩 연역하면 나의 정신을 채운 관념의 속성들이 체계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마치 형사가 탐문 수사하듯. '난 뭘 해도 안되는 사람이야'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연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속된 실패했던, 좌절했던, 포기했던 경험이 드러날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난 뭘 해도 안돼'로 관념화된 사람은 잠재의식이 그대로 '내 주인은 뭘 해도 안되는 사람'으로 힘을 키우고 있으며 당연히 커진 힘은 더 큰 에너지로 우주와 교신하며 잘 될 일도 안 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현실로 가져온다.
인간의 본성은 ‘추구’에 있다. 기면 걷고 싶고 걸으면 뛰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일어나기 싫고. 이것을 먹으면 저것을 먹고 싶고 저것을 먹으면 그것도 먹고 싶고. 여기에 가면 저기도 가고 싶고 여기저기 다 가면 아무데도 안가고 싶고. 인간은 항상 ‘추구’한다. 다른 말로 ‘욕구하는 마음’, ‘욕심’을 누구나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욕심에 ‘옳음’이 가미되면 성장이고 ‘그릇됨’이 가미되면 ‘나태’가 된다.
성장이란 지금보다 나중이 더 낫다는 것이다. 성장, 즉 더 나은 결과를 위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첨가되어야만 한다. ‘변화’말이다. 즉 ‘욕구’에 의해 감각으로 느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변화가 요구되고 변화의 시작은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부터다. 안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짓이기도 선취행동과 반대되는 행동 내지 선취행동을 안하는 짓일 수도 있겠다. 앞서 언급하였던 순환단계에서 행동의 전단계가 바로 이성의 명령이어야 하니 안하던 짓을 하려면 이성이 기존의 관념을 깨도록 지시해야 한다. 관념을 깨라, 배제해라, 외면해라, 는 말이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그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니, ‘기존관념’을 의심하고 차단하고 외면하는 용기는 ‘성장’을 위한 필수다. 아니, 기초다.
잠시 여기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당부하려 한다. ‘선취행동으로 만들어진 관념’에 따르지 않는 행동은 아주 불편할 것이다. 매일 양치질을 하다가 안한다고 생각해보라. 치약으로 양치하지 않고 소금으로 양치한다고 여겨보라. 선취행동, 고착화된 행동을 하지 않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날 불편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하기 싫을 것이고 짜증이 극에 달할 것이고 포기라는 단어가 내 옆에서 덩실거리며 춤을 출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당부한다. 안했던 행동이니까 낯선 것이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편한 것은 편한 쪽으로, 낯선 것은 익숙한 쪽으로, 어설픈 것은 숙달된 쪽으로 방향은 정해져 있으니 그냥 반복하면서 죽 가야 한다고 나는 나에게 당부하련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을 지녔다면 ‘추구’의 전제는 ‘변화’,
변화의 전제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시도의 전제는 ‘안하던 짓’,
안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불편과 낯섦,
불편과 낯섦은 반복만이 편함과 익숙으로 이어지니
내가 해야할 것은 안하던 짓을 반복하는 것뿐.
간단하고 단순하고 명료하다.
행동의 반복은 반복만큼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하면 계속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습관이 되고 우리는 이 행동을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즉, 처음엔 의식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나중에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체화되고 드러난다는 의미다. 행동->정신->감각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이것을 굳이 단계로 말하자면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안하던 짓(무행동)을 안하는 지도 몰랐던(무의식) 내가 어떠한 변화를 위해 안하던 짓(무행동)을 하려는 시도(유의식)를 하게 된다. 이것을 계속 반복(유의식 유행동)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나는 저절로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이 습관화(무의식 유행동)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몸에 체화된 것이며 이로써 변화에 성공한 것인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의식하고 행동하는 (유의식 유행동)단계까지의 양이 쌓였을 때 습관.이라는 결과를 거머쥐게 된다.
양을 쌓는 반복의 단계는 필수다. 이것이 원리다. 양이 쌓이면 질적인 승화가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인, 물질적인 가격(加擊)은 화학적인, 비물질적인 변화를 이끈다는 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인식이 의식이 되고,
인지가 메타인지가 되고,
소리가 경청이 되고,
대화가 소통이 되는 차원은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혁명적 전환, 즉 차원의 변화다.
질적변화이며 화학변화인 것이다.
그래서, 양이 쌓여야 한다.
양은 반복만이 답이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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