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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사실보다 감정에 더 무게를 싣는가?

ch1. 나를 해체해보니 7

by 지담


이 글은 한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작성하는지라 그냥 죽죽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다소 문체나 흐름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글이라는 것이 쓰고 나면 반이상을 버려야 하는 것임을 감안하여 그저 날 것 그대로 노출하고 있답니다. 본 글은 매거진 '어떻게 살 것인가'의 1편부터 연이어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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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실보다 감정에 더 무게를 싣는가?]


자, 이제 감정의 정체가 에너지인 것을 알았으니 보다 현실적인 얘기로 들어가 보겠다.

나는 나에게 먼저 묻는다.


‘왜 감정으로 힘들어 하는가?’,

‘왜 사실보다 감정에 더 무게를 싣는가?’


그리고 나는 답한다.

첫째, 이성이 감정보다 나약해서

둘째, 감정은 이미 이성 속의 인식이 거짓과 오류투성이임을 알고 있으니까.


첫 번째 답은, 너무나 주관적이라 보편성에서 다소 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답하려는 시도는 오래된 나만의 습성때문이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도 잘못되며 질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답도 정답에서 멀어질 수 있고 혹여나 질문에 따라 정답은 없거나 모르더라도 정답을 찾기보다 오답을 피하는 것이 삶에 대한 질문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나의 질문은 항상 이러한 성향을 띄기에 주관적이고 보편성에서 멀더라도 질문자체에 의의가 있다면 정답말고 오답을 찾아 그것을 제거하는 쪽으로 나를 유도한다.


여하튼, 첫번째 답변에 대해서는 너무 주관적이라 설명할 수가 없다. 이성이 강한 사람, 흔히 FM이라고 칭해지는 부류의 인간들은 제 아무리 옆에서 누가 통곡을 해도 잠깐 움찔할 뿐 자기 할 일을 해내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상대가 화를 내더라도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제 아무리 하소연을 늘어놓는 상대 앞에서도 이성적으로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려서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어쩜 그리 냉정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부류도 있다. 그래서 감정이 이성보다 강하거나 약하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이기에 감정이 왜 인간을 힘들게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기에는 다소 부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는 결코 FM적이지 못한지라 이성이 종종 감정에 패하고 감정에 이끌려 일을 그르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이성에 패하고야 마는, 나와 같은 이들의 경우 공감이 깊기에 공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눈코입을 둘러싼 얼굴근육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이점이 있다. 또한 눈에 비치는대로 마음이 받아들여 바다를 보면 입이 절로 벌어지고 엔틱분위기의 카페에 가면 순간 주저앉아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고 할 일이 앞에 놓여 있어도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세워두고 아무리 이성이 나를 말려도 감정이 앞서 상대에게 내 것을 모두 내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감정으로 힘들어하며 사실보다 감정에 더 무게를 싣는지...어쩌면 본능적으로 인간 자체가 정신의 진실성에 다소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을 관장하는 이성, 이성 속에 자리잡은 인식. 이 자체에는 거짓과 오류가 많다. 인식이란 기억에 의해 자리잡은 관념이기에 기억의 정체를 파헤치면 이성이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기억이란 한마디로 감정 강도의 우선순위다. 우리는 쉽게 경험한다. 하나의 상황에서도 모두의 기억이 달랐던 경험, 분명 바로 직전에 내가 행한 행동에서도 기억이 토막나 있던 경험, 시간상으로는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려도 무방할 것인데 아니면 잊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도 기억이 선명해서 없어지지 않던 경험. 어디선가 꼭 본듯한 데자뷰의 경험. 기억은 감정에 의해서 소실, 희석, 편집, 소생된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모두가 다른 기억을 소유하고, 심지어 서로 어긋나게 기억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즉 기억은 ‘이익이 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손해가 되는 것은 나쁜 것으로 기억하기’ ‘우리는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뇌가 해석하고 재구성한 것을 진실로 믿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보호하고 상대의 믿음을 공격'한다. 한마디로 기억은 편향과 편견의 덩어리로 감정에 의해 판단된 인식의 저장창고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인식은 편향과 편견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인식 자체가 기억의 덩어리이기에 당연한 사실이다. 편견은 내가 어떤 안경으로 대상을 보느냐이고 편향은 사실보다는 감각, 감정에 의해 확증시키거나 편집시켜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판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인식의 속성에는 거짓(또는 비사실)이 포함되고 거짓은 잘못이나 오류를 도출하고 오류는 인식의 중요기능인 판단의 비효율, 비정상을 초래한다. 이러한 근거에 의해 감정의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 매겨진 기억의 덩어리인 인식은 오류와 비사실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오류와 비사실에 근거하기에 진실에서 비켜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이 살아온 경험이 다 다르기에 기억도 다르고 인식도 다르고 따라서, 인식이 근거가 되는 사고의 방향도 다르니 우리는 모두 편견을 지닐 수밖에 없고 편향으로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또 하나의 인정을 나에게 요구해 보는데 나는, 나의 인식은 나의 감정에 의존하여 좋은 것을 기억에 남기고 나쁜 것을 기억에서 배제시키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이므로 나의 기억은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재구성된 믿을 수 없는, 믿으면 안되는 정체라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왜 감정으로 힘들어하는지는 나에게 명령하는 뇌 속의 기억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에 감정은 오류를 비켜나려, 또는 나 편하게 사실을 오류화시키려 현상을 무진장 왜곡시키고 왜곡되어 느껴지는 것을 바로잡으려 이렇게도 저렇게도 열일하는 것이 주된 일이기 때문에 늘 감정에 시달리는 것이다.


감정은 이미 이성 속의 인식이 거짓과 오류투성이임을 알고 있으니 어쩌면 감정이 열일하며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의 이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뇌는 어떤 정체를 저장시키기도 소멸시키기도 합성시키기도 하면서 점점 이성의 기능을 진화시키고 있으며 이성의 수준이 사람마다 다른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이성을 강화, 훈련, 정돈, 질서화시키는 것은 감정이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정체성, 밀란 쿤데라, 이재룡 역, 1998,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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