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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게
얼마나 위대한가!

이기는 이타다 3

by 지담

본 글은 매거진 '어떻게 살 것인가'의 1편부터 연이어 읽어나가시길 권해드리며 본 글은 '2장, 해체, 그리고 맥'의 1. 이기는 이타다 3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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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의 질‘을 논하는 시점에 선 자.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자들은 드물다.


이는 디오게네스(주석1)의 일침으로 증명되는데 그는

'음악가가 리라의 현은 가락을 맞추는데 자신의 영혼의 상태는 부조화인 채로 있는 것.

수학자들(천문학자)이 태양이나 달에는 눈을 돌리는데 자신의 발밑에 있는 일은 지나쳐 버리거나,

변론가들이 정의에 대해서 논하는 데에는 매우 열성인데 이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돈을 헐뜯고 있는 주제에 이를 지나치게 선호하고 있는 것,

재산보다도 뛰어나다는 이유로 올바른 사람을 칭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크게 재산을 축적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자들.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들에게 희생을 바치면서 바로 그 희생식의 와중에 건강을 해칠 정도로 성찬을 드는 것'을 자기단련의 부족이라 꼬집으며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라 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방으로, 어떤 의식 수준으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으로서 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하지 못한 것이다.

늘 깨달음을 갈구하고 의식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정직하게 열려있는 자신이 되고자 현실의 자신을 거부, 저항하며 더 큰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

진심, 진리, 진실, 진짜에 관심을 기울이고 진정성있는 자신으로 세상과 교우하며 자신의 목표가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자신에게 심겨진 씨앗임을 인지하는 지성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

이러한 자야말로 진정으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더 큰 세상을 사랑하는,

조화에 일익을 담당하는 자다.


이러한 자들에게서는 사랑과 감사가 자연스럽게 몸에서 우러난다. 더 풍족한 삶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내면의 자아에 저항했던 자신이 아닌, 스스로의 천재(天才, 하늘이 내려준 재주)를 찾아 기여(寄與)와 자선(自善, 선한 나)의 세계에 서 있는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자연이 베풀어준 모든 것에, 심지어 그것이 고통이나 슬픔일지라도 이유가 있어 자신에게로 온 모든 현상, 대상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게 된다.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혼자가 되어 고독에 몸을 맡기는 것을 허가받은 지금, 반은 타고나고 반은 터득한 이 재능이 나타났다'는 천재작가 괴테(주석2)의 말처럼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분명 자신의 내재된 천재성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부터 먼저 사랑하는 자애(自愛)

자신의 사랑으로 자신부터 다스리는 자기(自己)

자기를 다스리기 위해 자신부터 바라보는 자시(自視)

자신을 바라봄으로서 자신이 근원이 되는 자리(自理)

자신이 근거가 되어 자기를 스스로 돕는 자조(自助)

자기를 도움으로서 스스로를 맑게 하는 자정(自淨)

자신의 맑아진 영혼의 자극으로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자존(自存)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자기 삶을 살아낼 자유(自由)


이러한 삶을 통해

자신이 보여지는 존재만으로도 선(善)이 되는 자선(自善)

자선하는 자신이 전해지고 계승되어 자체 동력이 되는 자전(自轉)

자전의 에너지를 더욱 강력하고 길게 유지시킬 수 있는 자력(自力)

이미 내재된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스스로 아는 자는

존재 자체가 자석이 되어 수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됨이 분명하다.


이러한 자야말로 자신에게서 드러나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창조‘의 주체임을 인지하고, 창조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타협하지 않으며 책임진다는 것이 비단 자기 인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승‘의 의무로까지 이어짐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을 결코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이야말로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에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자신을 더욱 크게 신뢰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것은 모두 자신 속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덕성과 지혜로 튼튼하게 보호받고 있으면 있을수록,

우정을 구하고 그것을 가꾸는 데에도 탁월한 법(주석3)이다.

그렇게 자신을, 주변을, 더 넓고 멀리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진정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전체의 중심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고 그렇게 삶을, 시간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걸어가야 한다.


경쟁이 아닌, 창조의 씨앗으로,

대립이 아닌, 협력의 교신으로,

유한이 아닌, 무한의 시선으로,

혼자가 아닌, 모두의 이익으로,

편협이 아닌, 일치의 통합으로,

개성이 아닌, 조화의 흐름으로,

증오가 아닌, 사랑의 느낌으로,

소인이 아닌, 대인의 걸음으로,

인식이 아닌, 의식의 세계에서,

시력이 아닌, 관조의 시력으로,

도덕을 너머, 대법을 따름으로써

이미 존재하는 자신만의 반석위에 자신을 세워둔다.


모든 것은 에너지로 교신한다고 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여럿의 가치로 이어진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나의 존재가치를 높은 수준으로 이끈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가치도 소중하게 상승시키는 기동체(起動體)이자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사회는 이렇게 하나의 개체, 개인으로부터 개혁이, 혁명이 시작되고 혁명이 체계를 만들면 문화로 관습으로.. 그렇게 계승된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나로 인해 옆 사람이, 또 그 옆의, 옆의, 옆의 누군가, 무언가에게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대(巨大)한 시선은 나 자체가 전체임을 자각하게 한다.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나 시대를 뒤집을 대단한 혁명가나 억만장자가 되어 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위업을 달성하는 것만이 이타가 아니라 나를 세워 내 옆, 누군가에게

바르게 산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라는 것은,

배움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본보기, 멘토, 너무 거창한가?

그저 닮아도 좋은,

따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이기가 어찌 이타가 아니란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진정한 의미(주석4)인 '보여주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주1>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라에르티오스, 2016, 전양범 역, 동서문화사

주2>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2016, 최은희 역, 동서문화사

주3>키케로 인생론, 키케로, 김성숙 역, 2009, 동서문화사

주4>교육(education)의 어원은 '밖으로(ex) 끄집어내는(duce)' 것이며 가르치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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