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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개의 단어만 남더군요.
루틴/그냥.

나는 나를 키웁니다. - 행동리셋 9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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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개의 단어만 남더군요. 루틴/그냥.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것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행동이 마인드를 견인하는지 마인드가 행동을 견인하는지 이는 불분명하지만 어떤 한쪽이 다른 쪽을 견인하는 것만은 분명하고 이 둘 가운데 하나가 부족하면 나머지 하나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또한 명확하다. 따라서, 연속적으로 변화시키되 동시에 둘 모두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성과 연속성.


나의 기존의 마인드를 새로운 마인드로 바꾸는 것에 10가지, 그리고 이를 위해 병행된 행동의 변화도 10가지, -운동시키기가 젤 어려웠어요, 기다리려구요, 단백질 안 먹으면 밥을 안 줬어요, 'ㅂ'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못쓰게 했어요, 목표를 정하고 잊어버리라 하고선, 새벽에 무조건 일어나, 1일 2시간, 1일 1편의 글에 목숨 걸어보라 했지요,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못난 나를 드러내야 잘나진다는 것을 알게 했더니, 단 두 개의 단어만 남더군요. 루틴/그냥, 네미시스를 훈육관으로 둔 덕입니다.-

이제 9번째, 단 두 개의 단어만 남더군요.를 기술할 차례다.


말 그대로 지금 나의 마인드에는 ‘그냥’, 행동에는 ‘루틴’ 단 두가지뿐이다.

학교에 다닐 때 어떤 친구가 공부를 잘했는지 가만히 보면 수업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친구였다. 같은 학교로 등교하고 같은 교과과정에 의해 같은 시간에 같은 선생에게 같은 과목을 같은 교재로 배우는데 누구는 100점을, 누구는 0점을 받는다. 선천적인 환경 어쩌구는 수많은 변수가 있으니 제외시키도록 하고 같은 환경에서 100점받는 이를 보면 단 2가지의 차이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수업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쉬는 시간 땡! 종이 울려도 딱 1분 더, 배운 것을 본다. 사실 종이 울릴 시간이 되면 먼저 책을 덮고 뛰쳐나갈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80%, 선생이 교실밖까지 나가서야 책을 덮는 학생들이 20%정도다. 쉬는 시간 종이 치는 그 찰나 내지 1~2분간이 한끗차이다. 또한 학교가 파한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가 변수다.


나의 삶이 이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먹고 자는 일상과 일은 학교수업 시간과 같다. 나머지 시간에 나의 미래에 있을 시험에 대비하고 있는 사람이 나중에 치를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확률이 높다. 이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루틴만한 것이 없다. 일상을 파괴하고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일상, 일은 그대로 하되 모두에게 공평한 자유가 주어진 그 시간, 놀아도 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에 자신의 미래를 위한 ‘해야 할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루틴이다.


나의 루틴도 그러하다. 루틴이라 이름붙이고 시작한지가 몇 년째 계속되니 별로 내세울 것은 없고 게다가 실패로 가득하지만 책읽고 글쓰기, 운동만은 어긴 적이 없다. 일상을 남들과 같이 살면서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독서와 글, 운동을 빼먹으면 분명 미래에 사단이 난다. 건강을 잃든 정신을 잃든 돈을 잃든. 인생을 고달픈 길로 끌고 갈 3중의 하나는 부실해진다. 퇴직하면 0이 되는 숫자 앞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뭘 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니 돈을 잃는 것이고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정신은 혼란스러울테니 정신을 잃는 것이며 너무 앞만 보고 달린 나머지 건강을 잃기도 한다.


학교다닐 때 매일 1일 1학습지같은 것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1장이 뭐 별거냐 하겠지만 매일 1장이 쌓여 문제집 몇 권을 푼 효과를 얻는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수업 외에 딱 1장.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 24시간 가운데 생존과 관련된 일과 일상 제외, 1~2시간을 지속적으로 투자했을 때 나의 미래는 분명 개척되고 개화되고 창조됨을 믿는다. 진짜 나만의 인생을 만들기 위해, 나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매일 1~2시간이면 족하다.

루틴은 그렇게 나의 삶의 방향, 내가 진짜 나로서 살고자 하는 어떤 길을 위해 매일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라는 질문 아래에 추출되어야 한다. 방향없이 미라클모닝 어쩌구를 백날 해봤자 부족한 잠에 피로할 것이며 방향없이 백날 자기개발서만 읽어봤자 머리만 복잡해지고 좌절감만 는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 백날하는 에너지를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자가 훨씬 현명한 것은 분명하다.


매일의 작은 축적은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 1일 1학습지의 효과처럼 매일 1시간 독서의 효과도 엄청난 위력을 지닌다. 위력은 중독성이 강하기에 책벌레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무언가의 반복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반면, 안 좋은 것의 반복도 가공할 위력이 있다. 매일 술 한잔, 게임한판, 드라마 한편과 같은(이게 나쁜지의 여부는 각자의 몫) 것들의 반복도 어김없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무엇으로 루틴을 구성하여 반복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그것을 꾸준히 3년 이상 반복했을 때 3년 뒤 원하는 방향으로 가공할 위력을 가져올 그것을 루틴으로 정하면 된다.

나에겐 독서와 글, 운동이었다.

새벽독서는 5년이 다 되어가고 글쓰기는 이제 13개월이 조금 지났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새벽부터 움직이다 보니 하루를 쪼개서 치열하게, 열심히,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사는 것처럼 묻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나의 하루는 너무 단순하고 바쁘지 않아 여유가 넘친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겠지만, ‘그냥’ 때문이다.


현재 나의 루틴은 새벽 4~6시까지 글쓰기(+독서), 6-7시 독서토론, 그리고 자유로운 2시간 독서, 운동은 알아서 마음대로, 모두 합쳐 5시간 정도인데 일상에 전혀 지장이 없다. 새벽 시간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일상가운데 자연스럽게 할애된 시간에 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2019일 2월 19일.부터 새벽 4시 기상을 루틴으로 시작했는데 ‘일어나니 마니, 책을 읽니 마니’ 이런 생각 자체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러니 몸이 나를 강한 관성으로 끌어당겨 침대 속에 붙잡아두려 해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일어나게 된다. 아~ 너무 졸린데 내일부터 할까? 조금만 더 잘까? 이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한다. 2시간 새벽독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이 재미있니 없니, 지루하니 어떠니, 정신이 날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더라도 생각없이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냥 했던 것이다. 처음 뭔가를 시도할 땐 '그냥' 하는 것외엔 방법이 없다. '그냥' 하지 않고 생각이나 몸에 끌려다니면 반드시 관성에 지고만다. 신체의 관성과 생각이 합쳐지면 어김없이 그럴싸한 타협해도 될만한 정당성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정당성이 너무나 타당하게 여겨지도록 이성까지 망가진다. 하나둘 무너지는 건 당연하기에 '그냥' 해버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또 하나,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해버리는 수밖에 없다. '하기 싫으니' 얼른 '해버리는 수밖에'라는 단순함으로 그냥 해치우는 것이다. 관성을 이기는 묘수는 ‘그냥’ 이 최고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냥’ 한다. 이 글을 적기 시작한 시간은 새벽 4시, 지금 5시 04분.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냥 앉아서 쓴다. 안 써지면 그냥 앉아 있는다. 앉아있기 싫으면 섰다가 다시 앉는다. 눕고 싶으면 안 눕는다. 자고 싶으면 안 잔다. 왜냐면 쓰는 시간이니까. 그렇게 단순하게 하면 된다. 그냥 말이다. 이렇게 머뭇거리고 생각하느라 갈팡질팡하는 시간이 없기에 시간적으로나 에너지면에서 낭비는 없다. 그래서 루틴을 하느라 바쁘거나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반복은 그 자체가 훈련이며 훈련은 반드시 효과를 몰고오고 효과는 반드시 나를 변화시킨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이것은 명확한 진리다. 아들이 군대 훈련소 들어간 지 3주째다. 순진하고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3주차인데 전화목소리가 달라졌다. 기운차다. 반복은 훈련되고 훈련은 변화로 이어진다.


브런치에 매일 새벽 5시 발행 13개월을 지켜내며 나는 훈련되었다. 글의 퀄리티는 나의 능력과 무관하지 않기에 차후에 더 두고볼 일이고 매일 반복하여 쌓아둔 양의 축적은 가공할 정도다. 지금까지 적은 글만 A4용지(글자크기 10p)로 2천장이 넘는다. 음악을 하는 딸아이의 척추는 S자다. 매일의 연습은 몸까지 변화시킨다. 나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가락 축구선수 박지성의 연습노트를 이미 봐버렸다. 나는 강수진이나 박지성은 아니지만 나의 꿈과 목표를 위해 해야 할 그것을 매일 축적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행동은 ‘유리한 쪽’을 그냥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간단했다.

누울래, 앉을래? 하면 앉는 쪽으로,

쓸래, 안쓸래? 하면 쓰는 쪽으로,

읽을래, 덮을래? 하면 읽는 쪽으로.

그냥 그냥 그냥.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졸려서 어쩔 수 없었다. 주제를 잡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 생각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 지루해서 어쩔 수 없었다. 등등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늘 나를 방해하려 들지만 매일매일 이 선택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그것을 안 하는’ 선택지로 그냥 행동하면 된다. 피곤하고 졸립고 주제가 없고 생각이 많고 어렵고 지루한 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할 것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을 택하지 않는 방향의 일관된 선택으로 나를 습관화시키면 된다. 아니면, 피곤하고~지루한 경우를 인생에서 완벽하게 삭제해버리는 불가능에 도전하든지!


나에겐 꿈이 있다. 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안되면 안되는 바람이 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내가 바라는 나의 삶이 있다. 그 삶을 위해 나는 제대로 된 나만의 사상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내놓기 위해 나를 훈련시켜야만 한다. 이를 위해 매일 무엇을 쌓아갈 것인가? 쌓아갈 그 행위가 바로 루틴목록이다. 물론 나도 루틴 앞에서 지독하게 관성과 매일 사투를 벌이지만 아무리 강력한 관성이 내게 타협하자 손내밀어도 '안되면 안되는' 나의 꿈이 있기에 나는 타협할 수가 없다. 타협해도 괜찮은 꿈은 꿈이 아니라 허상이다. 허상에서 잡은 목표이기에 쉽게 안해도 그만인 것이 되어버리고 루틴자체도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그저 ‘나도 했었다.’라는 위안으로만 남을 뿐이다.


지금까지 100일의 루틴을 수년째 시도했는데 100일을 성공한 경우는 두어번에 불과하다.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실패해도 그 다음날 바로 이어서 또 하는 정신이 나에게 있기에 하루도 멈추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의 룰에서 100일간 루틴을 행하면서 실패하면 가차없이 다시 1일로 카운팅되기에 100일의 성공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체감한 상태다. 100일, 겨우 3달간 나와 지키기로 한 약속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100일간 매일 1만보를 걷겠다! 두 다리만 있으면 너무나 쉬운 것인데도 번번히 실패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년이 지난 지금 대충 걸어도 1만보는 걷는 내가 되었다.

100일간 매일 2시간 책을 읽겠다! 한글만 알면 되는 이 쉬운 미션을 너무나 많이 실패했지만

수년이 지난 나는 평균 2시간 이상은 매일 책을 읽는 내가 되었다.

역시 실패는 성장의 다른 이름이었고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필수요소다.

밥먹고 양치질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습관이 되었다.

시작하고 완벽해지는 것이지 완벽한 시작이란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지금 글쓰기와 독서, 운동은 먹고 자고 옷입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루틴이 자연스레 습관이 되어 일상에 스며들면 또 하나의 루틴을 추가하면서 나는 느낀다. 또 한발 꿈으로 다가갔구나를, 나의 꿈이 한걸음 내게 다가왔구나를. 나의 변화는 나의 꿈으로 다가감이다. 꿈을 이루는 시간이 당겨지는 것이다.


루틴으로 나는 나를 변화시키며 깨달았다. 나는 나를 칭찬하거나 자랑삼지는 않지만 나를 존중하게 되었다.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냄으로써 나로써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변화로 인한 내적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파괴음정도에는 귀를 막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의 꿈, 즉 신념과 가치, 그리고 영혼을 사랑한다. 이것들은 내가 나에게 주입시킨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거대한 존재에 의해 심겨진 것이라는 데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 존재의 이끔에 내가 부실해지면 안되기에

나에게 루틴은

'얻고자 하는 바람'이기보다 '닿고자 하는 이끌림'이다.


루틴의 지속은 나를 증명하는 사람이 되게 이끈다. 평범한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책읽고 글쓰며 나를 변화시켜 꿈을 이뤘다. 그러니 세상탓, 누구탓, 탓탓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켜라! 라는 주장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단 1사람이라도 해냈다면 그것은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며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이며 어느 누구라도 또 해낼 수 있는 선례가 되는 것이니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던 누군가를 닮아가며 내 인생을 걷고 있으니까. 꿈은 꿈을 견인하고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되는, 꿈의 확장이 이뤄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각자의 존재가 우주의 작은 점으로라도 조화에 기여해야 함을, 기여할 수 있음을 직접 알게 해주는 것이니까. 묵묵하게, 꿈을 향해 성실하게, 타협없이, 그렇게 가는 자는 반드시 자신이 서야할 자리에 세워지게 됨을 보여주는 진정한 '삶의 교육자'가 되는 것이니까.


나는 나의 인생을 위해 꿈을 꾸고 꿈을 위해 목표를 잡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루틴을 추출하고 루틴을 위해 하루에 일정 시간을 투자하고 투자한 그것이 소모가 아니라 말 그대로 ‘투자’가 되어 나의 자원으로 내 인생에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다. 처음엔 내가 루틴을 만들어 행하지만 나중에는 루틴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고 쌓인 루틴은 나의 삶의 아주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는 삶 전체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현실에서 신념의 자리로 향하게 나를 이끈다.


해야할 루틴은 하기 싫은, 미운 모양새지만

지나온 루틴은

'내가 뭔가 되어가는 느낌',

'내가 어딘가로 향하는 느낌',

'나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느낌'

'나의 삶이 이 길이라는 느낌'을 선사했다.

루틴의 지속은 신념의 실천이며 이상의 실체이며 믿음의 확고함으로 나를 이끈다.


지금까지 마인드와 행동리셋을 19가지를 작성하면서 이 모든 것들의 변화는 매일의 ‘루틴목록'에 첨부된 것이었다. 하루하루 실패가 많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저기에서 여기로 옮겨져 있다. 변화되었다.

변화를 원한다면 루틴을 추출하고 그냥 하면 된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푸는 바보만 되지 않으면 된다.


50의 나는 나를 변화시켜 키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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