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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2. 2023

유럽행 2일전 기가막힌 일탈
- 응급실

나홀로유럽 2일전

* 본 연재글은 지난 10월, 50평생 처음 홀로 여행을 떠나며 아무 계획없이 있는 그대로에 노출되며 제가 느낀 감각을 피력한, 기행문이 아닌 일기형식의 자기고백록입니다.


2023. 10. 21. 떠나기 2일전.


오늘은 정상적인 일상으로 하루가 시작될까. 

나의 정상적 일상이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코칭하는 하루인데 여기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일상을 단지 2일 보냈을 뿐인데.. 참.. 감사하다. 비정상으로 인해 정상을 알게 되고 일탈을 통해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10/18일 오후 12시 경, 갑자기 추웠다. 그냥 너무 추웠다. 이가 덜덜 떨리고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너무 추워 나도 모르게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아무리 몸을 공벌레마냥 동그랗게 말아도 추웠다. 듣기만 했던 '오열전율'인가? 게다가 가장 아랫쪽 배가 쥐어짜듯이 아팠고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진짜 몇년만인지. 몸이 아픈 게 말이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울었고 울음과 신음이 뒤섞인 혼음이 이불속을 가득 채운 채 한참을 그렇게 동그란 내몸이 소리질러댔다.     

           

수년간 병원이라곤 코로나예방접종때외엔 가본 적이 없는 내가 살아야겠다는 본능적인 힘으로 핸드폰을 잡았지만...이런...젠장.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이고 싶은 이가 없었다. 가까이에서 바로 올 수 있는 누가 있지? 119? 오버다. 옆집사람?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럼 혼자? 몸을 못 가누니 혼자는 불가능하다. 차로 5분거리에 아무 사심없이 나를 위해 달려와줄 수 있는, 그리고 나의 어떤 모습이라도 귀하게 봐주는 나의 벗에게 전화를 했다.             

   

"있잖아.." 한마디에 

"왜? 목소리가 왜 그래요?"     

"나 너무 아파요. 너무 춥고 배가..." 하니 

"당장 갈께요"한다!


그렇게 나는 응급실에 도착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내 모습때문인지 중증환자로 분류되어 재빠른 조치가 취해졌다. 강력한 진통제때문에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눈을 떴고 오한도 사그라들었다. 열이 아주 높았다. 참 이상하다. 몸말이다. 고열인데 춥다. 


신체가 자기한계 이상으로 강해지면 신체를 제외한 몸의 모든 요소들, 정신과 감정은 다 힘을 잃는다. 분명히 이런 경우는 인생살면서 몇번 겪지 않을 일이겠지만 신체가 이리 날뛰며 온몸을 강타하면 육체(신체+정신+영혼)는 신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지 나 몰라라 하는지 맥을 추리지 못한다. 여하튼 그랬다. 고열인데 너무 추웠고 이는 분명 추워서 추운 것이 아닌 줄은 알지만 이런 감각을 '춥다'라고밖에 표현할 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응급실에서 진통제와 해열제에 의지한 채 오랜만에 '내 정신이 아닌 정신'으로 여기저기 검사를 받느라 분주하게 옮겨졌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 과장은 하나의 검사를 더 권한다. 'CT를 찍어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내 대답에 그는, 그리고 날 응급실에 들쳐메고 온 지인 역시, 눈이 동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검사 안할래요. 어차피 뭐가 나오더라도 난 치료 안받을거니까.' 비몽사몽이지만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그랬다. 평소 나의 사고가 그랬으니까. 역시 '내 정신이 아닌 정신' 속에서도 굳어진 사고는 굳어진채로 내보낸다. 이로써 나는 또 확인했다. 잠재의식이 바보라는 것을.

결코 수정, 조정, 삭제, 보충. 이런 거 없다. 

들어앉은 모양 그대로 송출하는 녀석. 잠재의식. ㅋㅋ

                

내가 무슨 대단한 자연치유나 대체의학에 견해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저 몸은 몸 그자체로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니 자체치유를 해낼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렇게 긴 세월 병원이고 약이고... 다행히 그럴 일도 별로 없었지만 설혹 몸이 어딘가 고장난 듯해도 약에 의지하지는 않았었다. 이런 내 생각이 '내 정신이 아닌 정신'의 나일때도 툭. 하고 입밖으로 나온 것이다. 


눈이 동그래진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이런다. "왜요? 치료받으면 되는데 왜 안하세요?" 맞는 말이다. "몰라요. 그냥 지금은 안할래요." 우기다니. '내 정신이 아닌 정신'이라 나는 무리수를 두며 우기고 있는 우스운 꼴도 보였다. 내 정신이라면 어림도 없는 꼴이다.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다고 조근조근 내 주장을 할텐데 '내 정신이 아닌 정신'이니 우기기가 제일 편했나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잘못된 처사다. 진통제랑  해열제랑 그렇게 많이 넣어서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라고 다그친다. 좀 내정신이 돌아왔을 때 상의해주면 좋으련만,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기다리지 못하는 이상증상에 시달리며 남의 정신따위는 아랑곳없이 자기 할일을 부지런히 해나가는 데에만 열중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하니 더 속상하다. CT를 왜 찍어야 하는지, 무엇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설명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급하다. 계속 뛰어다니고 별 거 아닌데 다그친다. 

우리 뛰어야 할 때, 다그쳐야 할 때만 좀 그리 살면 안될까?  

              

게다가 '내 정신이 아닌 정신'은 곧바로 이리 말해버렸다.

"집에 갈래요."    


진통제덕에 잠시 통증이 가라앉았고 그 참에 나는 또 우겼다. 집에 가겠다고. 

일상에서 벗어난 삶이 나에겐 아주 불편하다. 우리 딸이 나에게 가장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엄마는 하루의 일상이 약간이라도 흐트러지면 아주 불편해'라고 언젠가 아이에게 말했더니 아주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힐끗 쳐다보고 말았으니까. 가족들이 다함께 여행을 가도 난 안가겠다, 주말에 다같이 장보러 가자해도 난 집에 있겠다.. 그들에겐 똥고집으로 치부되지만 나에겐 간절한 고집이다. 난 아주 극단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나름 그 변화가 일상이 되어 가는 중이라 이 고집을 꺾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는 고립을 택하고 그 속에 나를 끼워넣기에 성공하고 있으니. 


이런 내가 2일 뒤 유럽을. 그것도. 혼.자. 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다! 

여하튼 일이 어찌 이리 됐는지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그냥 지금의 나는 그렇다.      

꽉 짜놓고 거기에 맞춰서 사는 이 재미가 너무 쏠쏠하고

이렇게 단순화시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흐트러뜨리는 게 아깝고

이 안에서 얼마나 새로움을 많이 느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리고 얼마나 매일매일이 변화되는지,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나만의 감각으로 나만이 느끼는 것이니까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나이기에 아무리 응급실이라 해도 내 일상이 깨진 것이 너무 불편했고 싫었고

몸을 추스릴 수 있을 때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신이 여러색 중 빨간색 과일을 만들 때,      

같은 빨강것들 중에서도 다른 모양새로 과일을 배정시킬 때,

얼마나 고심했을까.    

사과, 딸기, 체리, 석류...  

색과 크기는 비슷하게, 하지만 맛은 다르게.      

그리고 사과하나에도 제가각 맛이 다 다르다.                

내 일상이 마치 사과같다. 

빨간색의 사과이지만 하나하나의 맛이 다르듯     

나의 일상이 누군가와 비슷한,

남들 눈에는 아무 할일없이 집에 쳐박혀 있는

그저그러한 '일상'이겠지만 

나의 하루는 나에게 너무나 감각적으로 매 순간 다르다.  

    

겉보기엔 다 사과인데 자세히 보면 모양도 살짝 다르고 맛은 천지차이이다. 먹어본 자만이 안다. 내 일상과 하루의 관계도 그렇다. 나만이 아는 나만의 특별함이 내 하루에 담겨 있다. 사과를 한입베어물 때 '캬~'하고 감탄사가 나오듯 내 하루 중 어떤 날이 그렇다. 고만고만한 하루들 속에서 '캬~'감탄이 나오는 하루들을 만난다. 그 만남이 잦아지길, 빨리 찾아오길 바라며 하루를 보낸다.               


여하튼 검사를 거부하고

드라마처럼 바늘을 쫙! 뽑.아.버.리.지.는 못했고

뽑아달라고 졸랐다. 우겼고.

진통제와 해열제와 수액을 죄다 남긴 채 그렇게 집으로 왔으나 

나는 약기운에 다시 긴...정말 말도 안되게 긴.. 잠에 빠지고서 다시 고열에 시달렸다. 오후 6시, 그리고 9시.. 드문드문 눈을 뜨긴 했지만 나는 긴 시간... 그렇게 신체가 정신과 영혼을 내팽개치고 따로 노는, 그런 이상한 나로 그 하루를 보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건데 

혹시... 혹시...     

그런 '일탈'의 하루.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이렇게 아파서 쩔쩔 매었던, 연락할 사람이 없어 난감했던, 이렇게 말도 안되는 우기기를 했던 적이 없었던 걸 보면 긍정적 일탈의 '캬~'소리를 내도 되는, 아주 독.특.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기가막히게 난생처음 '나홀로 유럽여행'이라는 '진짜 일탈'감행 2일전, 이런 '기가막힌 난생처음'을 겪은 것은 어떤 이유때문일까?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진짜 일탈'이 끝날... 10일 뒤면 알게 되겠지. 


어언 5년만의 병원신세, 

그것도 응급실. 

2일 뒤 나 홀로 유럽예정. 

다 말렸다. 가지 말라고.

나는 여행직전 이런 말도 안되는 2일이 왜 갑자기 끼어들었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하다. 

그래서 유럽으로 가야했다. 

아프더라도.            

그냥 정해진대로 직진이다.

                                                                                                                                               ==> 느낌대로! 나홀로유럽 2편 [출발 1일전, 또 다시 응급실]은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 12/21일부터 전체적으로 연재요일을 개편하오니 아래를 참고바랍니다.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철학'에게 '부'를 묻다]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지담놀이터입니다. 

  책, 글, 사람이 진짜로 숨을 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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