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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Sep 14. 2022

부(富), 그 사유와 실천14

집중과 에너지

* 본글 '부, 그 사유와 실천'은 현재 '글로벌경제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지담의 컬럼입니다.


집중이 강하지만 에너지가 약한 사람은 나태함에 압도되는데 

집중에는 어느 정도 나태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강하지만 집중이 약한 사람은 산만함에 압도되는데, 

왜나하면 에너지에는 산만함의 성질이 일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서로 동일해져야 한다.

-올더스헉슬리 영원의 철학 가운데 붓다고사-


우리는 성공의 한 요소로 집중을 요구한다. 

집중하려면 뭣부터 해야 할까? 무언가에 에너지를 왕창 쏟는 것이 집중이기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 뿌리고 있던 에너지를 몽땅 한 곳으로 모은 정신적 행위다. 그러니 다른 곳은 지연하거나 포기하는 선택을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지연하는 것이니 당연히 신경 써왔던 그 부분은 허술해지거나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손에 있는 모든 것들에 골고루 분산된 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바라는 자는 정신병자다’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손에 있는 것을 놔야 그 빈공간에 다른 에너지가 채워지고 채워진 에너지는 집중을 요하는 그 곳으로 사용될 수 있다. 


놓지 못하여 오히려 한발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보다 놓음으로써 주어지는 혼란과 엉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현명하다. 분명 그 과정 없이 집중은 힘들기 때문이다.


혼란을 피하는 사람들,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없다’, ‘재미가 없어서 집중이 안된다’. 과연 그럴까? 이런 말들 이면에는 ‘그냥 살던 대로 살아도 된다’라며 나아가려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자기 자신의 아집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기 싫은 감정을 근사하게 포장한 것은 아닐까? 재미는 집중하여 미쳐버리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그 과정의 결론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얻어지는 쾌감이다. 재미라는 감정 때문에 이성이 날 이끄는 과정을 스스로 외면해버리는 감정에 사로잡힌 인간일지도 모른다.


또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도전’, ‘포기’, ‘집중’은 ‘어쩔 수 없는’ 그것을 안하는 것을 수반해야만 가능하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


내가 진행하고 있는 새벽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늦잠을 잤다.’, ‘어쩔 수 없이 못 읽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시작단계에서는 반드시 실수와 실패가 존재하며 이 과정없이 성장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이니까.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근사한 핑계인 ‘바빠서’, ‘어쩔 수 없는’이 입에 붙어 있다면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나? 라고.


경단녀들을 주로 만나는 나는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 집에 있을 때 해왔던 살림이나 육아 등을 일정부분 나누거나 포기하라고 한다. 조금 더럽게 살고 조금 덜 챙겨줘도 괜찮다고 한다. 설거지도 좀 미루고 청소도 1주일에 1번만 해도 된다고 한다. 새롭게 직장을 다니는 취업생들에게도 말한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괜찮다. 욕먹지 않고 혼나지 않으려 하지 말고 그냥 실패하고 혼나라. 단, 기는 자세로 혼나라. 혼나는 것도 능력이다. ’결코! 절대! 그럴 수 없고 그러면 안될 것 같지만 새로운 일을 찾고 적응하려면 그리될 수밖에 없고 그리 해야 한다. 


떠밀려서 되기보다 처음부터 포기할 부분을 스스로 선택하고 새로운 생활 패턴으로 서둘러 전환하는 것이 현명하다. 포기한만큼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수월할 것이고 수월한만큼 감정적으로도 덜 피곤하고 그런만큼 일에 가속도가 붙고 속도가 나는 만큼 원래 챙겨왔지만 잠시 스스로 지연시켰던 그것들을 돌아볼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를 더 빨리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하면 다른 것을 돌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과 포기가 동일해질 때 원래의 나를 더 큰 나로 바꿀 수 있다. 강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엔 분산된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고 에너지 없는 곳이 다른 산만함으로 어지럽혀지더라도 일단 그냥 냅둬보는거다. 


세상의 이치는 혼란은 질서를, 질서는 혼란을 견인한다. 인간은 분명 더 나은 나로 가기를 추구한다. 세상은 이 단계를 밟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때와 분산시켜야 할 때를 자연스레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에 감사하며 잃는 것에 더 감사하라. 잃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니.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045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http://www.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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