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Feb 02. 2024

가열차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내 삶에 정교한 흔적을

나홀로 유럽-ZADAR & DUBROVNIK

2023. 10. 26

자다르는 일정에 없던 방문이란다. 원래 일정은 바리였단다. 이렇든 저렇든 난 상관없지만 역시 미리미리 엄청나게 깐깐하게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란 이런 것이지.ㅋ


나는 여기가 자다르든 바리든 어디든 아무 상관없다. 

그저 즐기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은 나뿐인 듯하다. 다들 바뀐 일정에 불만을 품기도, 보상을 원하기도 했단다(그저 들었을 뿐). 음... 그렇구나. 


그런데 혹시 바뀐 일정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를, 계획에 없던 패 하나가 던져졌지만 일단 불평부터 한다. 이미 손에 잡은 것이 가장 최선이고 심지어 최고라고 인식한다. 늘 자신의 선택에 과한 확신을 지닌다. 


그렇게 그렇게 선택하며 살아온 인생이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인데도 자신의 손으로 들어온 더 큰 힘을 지닌 패 하나를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아...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패가 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유가 있어서 그리 된 것임을 받아들이기는 인식의 틀이 너무 두터운 것인가,      

자신에 대한 확신이 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만 살았단 말인가.      


크루즈에서 바라본 자다르(좌) 돌아다니며 찍은 드보르브닉(우)


여하튼 나는 여기가 어디든 느낌대로 오늘 하루 하늘이 내 앞에 펼쳐준 판에서 놀아보기로 하고 노트북과 책을 매고 자바르에 상륙, 

내리자마자.... 

아... 

너무 복잡했다. 


나는 해운대에서 청소년 시기까지를 보냈다. 그 때의 해운대는 그냥 해운대였는데 지금의 해운대는 관광지해운대가 됐다. 온통 외국인들로 넘쳐나고 간판들도 죄다 영어, 일어, 중국어로 도배가 됐다. 부모님은 집값이 올라 좋다 하시고 해운대시(市)는 관광사업으로 돈을 버니 좋겠고 누군가는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좋겠지만 나는 싫다. 


변화가 변질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몇 년전 다녀온 보라카이도 너무 개발이 되어 휴지기를 가졌다. 상권을 쥔 자의 통 큰 배팅이었다. 커다란 손해를 감수하면 더 큰 이익이 올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계산과 계략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질된 자연을 복구시키려는 시도는 항상 옳다.       

이 곳 자다르 역시 그런 듯하여 나는 신이 나서 돌아다니는 횡재는 누렸지만 돌아다니면서도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내 변곡점이 곧 오겠구나 싶은 맘이 든다. 원주민은 아주 드물게 찾아볼 수 있었고 수많은 관광깃발과 다양한 민족들, 우루루 몰려 설명을 듣는 이들, 기념품 가게들만 즐비하다. 


이들 사이에서 나만의 여행을 하기에 나는 주변에 압도되었고 해변가를 걷다가..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동네수퍼에서 사탕 하나 입에 물고 관광객틈에 서서 관광지로 변질직전에 서 있는 도시 속 본질을 찾아 뒤로뒤로 다녀야 했다. 


과하다. 너무 과하다. 유네스코에 지정되면 뭘 하나? 지정된 뒤 더 관광객이 많아졌다면 방문객의 수에 제한을 두길 바란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것에 환호하며 자연의 음미 대신 아이스크림맛을 음미하려 그 긴 줄을 한참 서서 기다린다. 한국에서도 잘 안먹는 아이스크림을 굳이 여기서 먹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나는 관광지로 채색된 분위기를 거둬내고 이 곳을 그대로 담으려 내 눈에 경주마의 눈가면을 씌우니 자다르의 고풍이 조금씩 드러나며 자연스런 나를 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도 

해운대처럼, 자다르처럼 무조건 변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부동자세로 서 있어도 세상이 움직이고 내게로 사람들이 드나들고, 

시간은 전진하니 나는 무조건 변하게 되어 있다.      

나의 변화가 시간과 함께 변질의 노후를 맞는다면 내 삶이 나를 원망할 것이다.

나를 창조한 신은 나를 대법(大法)기만죄로 고소할지도 모른다.         


내 할 도리와 역할을 다하지 못한 죄의 벌은 어떤 것일까. 


인생의 잦은 곳에서 나는 경험했다. 

인간이 아닌, 

죄가 벌을 받는 것을. 


자연의 대법에 대죄를 짓지 않으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나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을 놀이터삼아 내가 주인공이 되어 놀아보는 것일테다. 하늘에는 천정이 없고 땅에는 바닥이 없고 세상에는 문이 없다. 아무 한계도 없는 이 대자연 속에서 내가 나의 감옥을 만들고 나를 요리조리 깎아대는 것은 우주가 반짝반짝 길을 내놓은 내 삶의 길에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처사다. 이것이 대법기만죄의 시작이 아닐까. 


나의 변화가 시간의 덕을, 세상의 혼을 나의 정신과 제대로 융합시켜 나의 삶이 나를 꼭 데려가길 바래본다. 


나부터 나여야 하는 나로 살아낸다면,

이렇게 사는 내가 누군가에게 닮아도 좋은 이가 된다면,

나의 삶이 나중에 딱 나만큼이라도 다음 세대에 이로움을 남긴다면,

못난 결과가 나올지라도 나 하나 제대로 변화시키고자 올곧게 나를 세워나간다면

나에게 법이란 무용한 존재일 것이다.

그저 나로 살지만 대법에 순종한 삶이 될 것이니 말이다.


관광객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는 또 어린아이마냥 배낭을 맨 채 신나게 좁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메인거리를 지나 골목사이에서 나는 큰 숨을 쉬며 바닥에 퍼지고 앉았다. 배낭에는 언제라도 터잡고 앉아 나 자신을 만나게 해줄 책과 노트북이 들어있다. 아무데나 앉아 하늘을, 성벽을, 여행자들을, 그리고 이 모든 전체를 눈에 담아보지만 ‘소매치기조심!’이라고 여러 번 당부받은 터라 모든 것에서 정신적으로 썩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냥 보이는대로 눈에 담고 소리를, 소음을 귀에 담고 사람들을 느낌에 담으며 정말      

아.무.것.도. 

가열차게 하지 않는 것.   

   

와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해도 되는 자유.

참 근사하다!      

이 감정! 이 느낌!                    


이 자유를 품고 내가 마구 나를 분출시켰더니 

나에게 의외의 내가 발견되었다!!!!


마구 혼자 돌아다니는 날 누군가가 찍었고 크루즈에서 나는 낯선 이에게 내 사진을 선물로 얻었다!

거리를 마구 돌아다니는 것, 특히 사람없는 거리를 걷는 것, 꾸미지 않는 그대로가 있는 곳이라면 나는 하루종일이라도 걷겠다. 왜 이리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왠만한 거리는 걸어서 가고 이왕이면 안 가본 길로 가고 낯서니까 가고...특히, 인공적이지 않은 길은 앞으로 계속 걷고만 싶어진다.   


나의 영어는 형편없다. 사람들에게 내 직업이나 하는 일을 발설하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과하게 평가해 버리기 때문이다. 교수, 박사면 영어를 잘 할것이라 착각한다. 천만에. 난 그냥 중학교 수준 정도의 회화를 구사할 뿐, 영어나 상식보다 살림을 더 잘하는 아줌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소통에 별 지장이 없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아침을 먹는데 터키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붙인다. ‘너무 예쁜 한국사람’. 이라길래 일단 기분이 좋았다. 한국사람인줄 딱 보고 알았다고, 자기 조카사위가 한국남자라고, 신기하다! 일부러 짝맞춘 것도 아닌데 하필 앞의 터키아주머니의 사위가 한국사람이라니! 그리고 내게 묻는다. 한국남자 어떠냐고? 

음...

나의 대답은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여하튼 이런 자유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소통에는 언어보다 정서가 더 요긴하기 때문일게다. 아줌마끼리의 허물없는 대화는 눈빛, 말투, 웃음으로도 통한다. 터키에 오면 꼭 연락하란다. 이런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좋아하진 않지만 터키에 가면 그녀가 생각날 듯하다. 

                   

길거리 누구와라도 즉석에서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이 내게 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여기 크로아사람들이 세계 최장신에 속하기 때문에 왠만해선 키들이 나보다 훨씬 크다. 남자는 당연하고 내 키가 170으로 작은 키는 아닌데 여자들도 대부분 나보다 크다. 그래선지 현지가이드는 눈에 확 띈다. 게다가 어디든 동그랗게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모습들이 곳곳에 있어서 나는 혼자 돌아다니다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땐 그들 사이를 비집고 가이드턱밑에 선다. 그리고는 마치 그들의 조직(?)인 듯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심지어,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까지 한다. ‘내가 당신의 여행자는 아니지만..’양해부터 구하고. 게다가 마구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덕에 잠시라도 대화를 나눈 가이드와는 단둘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걷기도 한다. 이 도시의 삶정도의 소소한 대화 속에 관광사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지만 관광객들로 인해 여기 사는 자신들은 솔직히 너무 피곤하다고. 


뻔한 얘긴데 그들에게 여행은 ‘일’이고 나에게는 ‘자유’이고. 

그들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 일터를 벗어나 또 다른 여행지를 찾고 

우리는 자신의 일터를 벗어나 여기서 자유를 누리고. 


광장에 혼자 앉아있는데 너무 예쁜 여자아이가 계속 내 앞에서 재주를 넘는다. 혼자 발레연습을 하는 여자아이가 너무 이뻐서 웃으며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는 날 의식하며 더더더 어려운 동작들을 시도했다. 몇살이냐 물으니 손가락 9개를 편다. 이탈리아소녀다. 너무 이뻐서 넋을 놓고 보다가 넌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그렇게 몇 번 넘어져도 자꾸 시도하는 네가 너무 멋지다고 하니, 자기는 영어 못한다.며 짧은 영어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밝게 웃으면서 날 힐끔거리며 고난이도의 발레동작을 내 앞에서 펼친다. 암튼 영어가 된다는 것에 나는 나의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새로운 곳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돕는다.

어쩌면 새로운 내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나였는데 내가 찾지 않았던 것이겠지.


여기 크루즈 직원인데 한국인인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묻는다. 자기가 여기 유일한 한국직원이라며, 이름을 보고는 혹시? 싶어서 인터넷에 찾아봤다며. 방해되지 않는다면 몇마디 나누고 싶다며.... 난 나에게 찾아온 이와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초고수의 관계력을 낮에 발견한 덕분에 이 여성과도 활짝 웃으며 대화를 즐겼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 아주아주 신기한 것이다!! 난 대개 무표정하고 낯선 이와 대화하길 꺼려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젊은 사람과의 대화는 너무 흥겹고 신난다. 그녀는 묻는다. 나와 대화한 적은 없지만 늘 배낭매고 씩씩하게 걸어 다니시는 게 너무 보기 좋았다며 

‘어떻게 혼자서 그리 재미나게 웃고 놀 수 있냐고?’ 

나는 대답했다. 

좋으니 신나고 신나니 웃는 건데... 

삶이 놀이터고

내가 장난감이라

그리 노는 것일뿐 

여기에 ‘어떻게’는 따로 없다고.          


이렇게 오늘 나는 나에게 4번이나 놀라며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칭찬했다!.      

대책없이 낯선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퍼질러 앉을 수 있네!에 한번 놀라고

이 정도 영어라면 뭐라도 하겠네! 싶어 두 번 놀라고

의외의 친화력에 세 번 놀라고

내게 이런 내가 있었어?에 계속 놀라고!     

                

나는 늘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잘하지 못하면 감추거나 배워야 하고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나는 그냥 아무데나 앉고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데나 들어갈 수 있고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 누구라도 내가 말을 걸면 이쁘다고, 인상좋다고, 너무 편하다고 나와 더 얘기하려 하고 짧은 영어라도 나의 눈코입손은 무엇이든 다 언어에 숨결을 보탤 수 있었는데

여태 나는 나를 얼마나 구속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나는 환경과 시간이 주는 자유에 

오늘 저~~어기 

지중해바다만큼의 자유를 

또 선물받았다.   

치열했던 시간에 대한 

대자연의 선물이다.      


아. 여기 명품숍이 즐비한데 저걸 다 준대도 

난 안바꾼다!      

이 자유!!!.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고양된 감정!!! 


‘깨달음’이란 표현은 좀 거창하고 ‘깨우침’이 좋겠다. 

그렇다. 

나는 나에 대해 깨우쳐가고 있다!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나는 나로서 이미 잘 하고 잘 살고 있었다.      

아. 이 타임에 또 눈물이 주루룩.      

내 가슴의 버블이 또 잔뜩 부풀어 몸속의 액체가 밀려나오는 중이다.

다 나올 때까지 내 몸을 빌려줘야 한다!

                     

나는 내 삶이 물질적 성공을 너머 정신적인 지향점을 향해 전진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내가 성공하려면 저쪽길이 훨씬 유리하고 당장 어떻게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쉽고 빠를 수는 있지만 다소 거추장스러울 듯하다. 교수로서, 강사로서 나는 분명 유리한 패를 손에 잡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의 일이, 직업이 

전면에 나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나의 고요한 내면이 나만의 정교한 삶의 길을 만들어

살며 획득한 명함들이 타당성을 더 강하게 갖게 되고

궁극엔 명함속에 나를 다 담을 수 없도록, 내가 나의 명함을 무색하게 만드는 길이다.    

                 

물질적 성공이 다소 줄어들더라도 나는 그 자리가 나의 쓰임으로 채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순서를 매길 수 있다면 

나만이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나의 것으로 내가 서야할 자리에 나를 똑바로 세우고 싶다. 

그것에 물질이 따라온다면 늘 말하듯 

그 반은 나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몫이다. 


나의 정신에서 추출된 사상과 행동이

나의 하루를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하루하루가 촘촘하게 연결의 고리를 만들어

세월이, 인생이 주렁주렁 꽈리를 틀길 바란다.

그래서

특별한 비결이나 재주, 기술, 자격증 없는 나와 같은 누군가도

자기 인생을 자기답게 살며

정교하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면

저기 우주의 중심에 닿도록 이어진 길 위에 서있는 자신을 확인하게 될 것을 믿게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나는 내 삶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향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교한 나의 흔적을 내주길 바란다.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삶과 사유, 사람의 찐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철학'에게 '부'를 묻다]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이전 06화 삶의 등에서 내려 삶 앞에 나를 세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