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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Feb 16. 2024

내 삶의 즙까지
요긴하게 쓰이는 나로 살고 싶다

시칠리아로 가는 배안, '소로우'를 덮으며

2023.10.29.

크루즈는 시칠리아로 향하고 있다. 

새벽인 지금 여전히 나는 깨어 있고. 

삶에서 가장 친한 3친구와 함께다. 

바다, 고독, 그리고 소로우...

내겐 읽기에도 아까워 들출때 손이 떨리는 책들이 있는데 소로우(주1)가 그렇다... 나는 내 친구 소로우를 펼쳐 아껴가며 읽었던 그의 마지막페이지를 넘겼다. 


월든부터 일기, 시민불복종에 이어 블레이크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나는 수년전부터 소로우를 동반자삼아 산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삶을 배우며 그의 삶의 곁을 따른다. 나에게 친구가 누구냐고, 힘들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냐고, 외로울 때 누구랑 함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소로우라고 답한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p.216

방금 사과1알을 껍질째 그냥 베어물었다. 

너무 달콤한 즙이 입안으로 쑥 들어온다. 

향도 함께 온다.


내 삶도 그러길 바란다. 

남과 비슷비슷한 모양과 색이지만 그 안에 나만의 향과 즙이 깊이 담기길.. 그렇게 누군가에게 그 향과 즙이 전해지길... 소로우처럼 말이다. 내 안 어딘가에 소로우가 차지하고 있는 향이 참으로 짙게 담겼듯 나도 누군가의 삶에 그리 담겨도 되는 이로 남고 싶다.


낯선, 새로운 곳으로 오면서, 읽었던 소로우를 다시 챙겨온 이유는 소로우만큼 날 알아주고 정신차리게 해주고 다짐케하는 이가 없어서다. 소로우는 내게 스승이자 친구다. 나는 이 낯선 여행지에서 너무나 든든한 친구와 매시간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p.216

책 속의 활자로 내게 왔지만 나는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또 소로우가 마지막 생을 다하는 이 지면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그가 죽는 게 너무 싫다. 이미 죽은 자인데 그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그는 죽었지’ 그의 죽음은 계속 새삼스럽고 계속 슬프고 계속 내 가슴에서 뭔가가 쑥 빠지는 듯 느껴진다. 이미 죽은 자이지만 내 정신에 늘 살아있는 그. 

시칠리아로 향하는 검은 바다위에서 나는 혼자 소로우의 장례를 치른다.


일생동안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충실히 지켜온 자였다고 후대가 말하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도 흔들렸을테고 두려웠을테고 혼란스러웠을테다. 일관되게 원칙을 지켜왔다고 했는데 그에게 원칙이란 것이 있었을까.. 그저 그의 삶자체가 자신의 길에 뿌리박혀 있었던 것이니 남다른 원칙이 있었을리 만무하고 그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 것뿐이다. 


남들이 기웃거릴 때 그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봤고

남들이 머뭇거릴 때 그는 자기 길을 걸었을 뿐.

달리 특별한 원칙이 있었다기보다 본능에 순종하며 살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죽고 나서 내 가슴에 묻혀 있던 참나무(주2)’가 돋아나게 자신의 삶에 뿌려진 씨를 가꾸고 키우고 그렇게 삶을 살아냈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자연 속의 일부로 키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다소 다른 원칙을 지닌 듯하겠지만 그의 삶이야말로 원칙이 아닌, 원리에 따른, 본능에 가까운,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삶에 자기를 정착시키려 씨앗을 가꾸는. 그러니 그의 원칙이란 일상이며 그의 일상이란 자기 내면의 씨앗을 튼실하게 가꾸는 것이 전부였던...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주2)'이라며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던, 그렇게 살아냈던 그의 말처럼 자신의 길에 맞지 않으면 가지 않고 맞으면 가고 그렇게....


기웃대고 머뭇거리지 않는 삶. 

깊게 깊게 호흡하고 

구멍난 곳을 메우며 

자신의 것으로 자신을 가득채우는 삶. 

그렇게 무엇에도 자신의 가치를 헐값에 팔아버리지 않는 삶...


그렇게 묵묵히 스스로로 존재하며 가장 본질적인 것들로 주어진 하루를 채워 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 대한민국의 그저 평험한 나에게까지 도달해 나같이 부실한 인간도 튼실한 나무로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무식했던 내가 소로우의 참나무 그늘에서 이렇게 자라고 있다... 그가 심은 씨앗 하나가 이렇게 나에게까지 그늘을 만들어 영양을 주니....


소로우저서

이것이 

사람의 힘이다. 

개인의 힘이다. 

하나의 씨앗에 담긴 영원성이다. 


소로우라는 하나의 씨앗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삶의 잎들이 세상을 여행하다 낙엽이 되어 딱 낙엽만큼 대지의 영양으로 남기게 할 힘을 준다. 어느 것 하나 자연에서 생성되지 아니한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인생은 자연 속에서 그렇게 걷는다고 알려준다. 나도 그렇게 바람따라 팔랑대며 세상을 유영하다 딱 나만큼의 양분으로 땅에 묻혀야지... 

나도 그래야지.


내 삶자체가 

자연이 심은 

하나의 씨앗이다. 

생명은 생명을 창조한다. '이상'이라는 토양에 '현실'이라는 씨앗이 심겨 나라는 존재가 하늘로 뻗어올라가는 것이다. 소로우의 가슴에 심긴 참나무를 내 안으로 이식하고 싶지만 나는 내가 키워내야 할 씨앗을 모종중이다. 내 인생의 방향은 이 모종이 제대로 더 양분을 머금게 하는 일과로 채워져야 한다. 일과가 일상으로 습관이 될 때 나의 씨앗은 나의 건투와 의지, 소망과 순종의 영양을 충분히 머금다가 소로우처럼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때 누군가에게 싹으로 남겨질 지 모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벅찬 삶인가.

구도자에게보낸편지, p.217


내가 내 삶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왜 인생이란 길에 힘겨워하는가.

대충 살아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삶일텐데 나는 결코 그렇게 나의 인생을 싸구려로 취급할 마음이 없다.

절름발이처럼 정신은 이쪽에, 다리는 저쪽에 두고 걷고 싶지 않다.


‘한 번에 한 세상(주2)’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생은 이번에 제대로 살아줘야 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온김에, 기왕 왔으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라며 펑펑 쓰고 다시 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되도록 많이 보고 사고 먹는다. 


맘만 먹으면 다시 올 수도 있는 10일간의 여행에도

이렇게 자신의 시간, 지식, 정성, 그리고 모두를 사용하면서

왜 결코 다시 오지 않는 1번뿐인 인생은 그리 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인생, 오늘이라는 하루에 대해

다시 살 수 있을 것같은 착각을 진실보다 더 맹종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삶을 

보다 더 진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나라는 사람이 참나무가 될지 자작나무가 될지 그저 풀한포기가 될른지 모르겠지만 어떤 무엇이라도 자체의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니 나는 나로써 좀 더 진하고 그득하게 나를 채워 나만의 것으로 나를 키워야겠다는 애초의 욕구에 더 진한 영양이 투입된 것을 느낀다. 내 삶의 곳곳을 필요한 영양으로 채워 나중에 쓸모가 있을 때 내 삶의 즙까지도 모두 요긴하게 쓰이는 나로 나를 키워보고 싶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방법을 모르니 비결도 모른다.

이렇게 느껴지면 이렇게, 저렇게 느껴지면 저렇게.

내 길위에서 나는 방황하고 일탈할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나의 길을 단단하게 만든다면 뭐든 좋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일에 내 모든 것을 걸고 집요해야 하며 죽기 전에 내 몫을 끝내면 된다.

못 끝내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나머지는 신의 몫이다.

알아서 누군가 가장 적합한 이에게 바통을 넘기겠지.

     

욕구가 생겼다는 것은 이미 방법도 함께 담겨 온다고 여긴다.

시작했다면 이미 끝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성이 온갖 세상 것들로 채워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도

나의 정신 어딘가에는 시작한 것을 끝내는 방법도 이미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일들을 하나씩 끝내가며 나의 삶도 끝을 맞이하겠지. 

작은 일들의 끝이 모여 끄트머리끼리 더 커다란 끝맺음을 해낼 것이고 

그 끝에 나의 삶의 끝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얼마나 행복할까..... 

나의 지난 수십년을 바라보는 그 때, 나는 얼마나 평온할까....

웃으면서 다음 생으로 건너가는 나는 얼마나 찬란한 인생을 살아낸 것일까.... 

그렇게 이생에서 저생으로 고개를 돌릴 때 소로우가 환하게 웃으며 

'참 잘해왔다고... 참 장하다고...' 그리 손잡아주지 않을까....


나는 바보처럼 또 바란다.

다른 세상에서 찬 한잔 앞에 두고 소로우와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그 순간을,

그 옆에는 그의 13년지기 친구 블레이크도, 또 그 옆에는 블레이크의 스승이자 소로우의 친구인 에머슨도, 또 그 옆에는 ‘정의’의 결을 함께 한 간디도,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지만 소로우와 친구라는 자체만으로 부러운 채닝도....          


나는 이들 속에서 눈물을 터뜨릴 것이다. 

하고 싶었지만 참았던 이야기들이 쏟아낼 것이다. 

나도 나만의 씨앗으로 여기까지 왔노라고... 

그 씨앗이 어디선가 또 다른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라고... 

당신들이 너무나 부럽고 보고 싶었다고... 

나도 여기서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나를 보듬어 달라고...


나의 간절함이 나를 지배해 버렸는지 나는 계속 운다.

한번 터지면 잘 멈추지 않는 눈물.

하지만 여기선 자유롭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든 먹물이 흐르든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 

누가 볼까 싶어 살짝 눈길을 흐트러뜨린 건 나뿐이다.


주1> 헨리데이빗소로우(1817-1862) : 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의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했으나, 그때 경험을 기초로 쓴 《시민의 반항》은 후에 간디의 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두산백과).

주2>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데이빗소로우, 2005, 오래된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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