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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Sep 18. 2022

부담컨트롤

'부담'에 대한 소고

나라는 사람의 나약함은

나의 감정의 가장 앞줄에 자리한 감정의 정체가 여실히 알려준다.


나의 경우

어떤 현상을 대할 때

어떤 현상을 원할 때

항상 제일 앞엔 '부담'이 차지하고 있다.

희열이나 희망이나 기대보다 불행히도 '부담'이며 

심할 땐 '압박'까지 비집고 앞자리를 다툰다.


성격이나 성향때문이 아니다.

그저 나약함이다.

겸손함도 자기비하도 아니다.

그저 이성의 계산착오다.


부담은 나의 한계를 느꼈다는 감정이 보내는 신호이자 

한계를 인지했다는 이성으로 보내는 신호다.


이에 대해서는

나와 현상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3가지의 경우로 나눠볼 수 있을 듯 한데


내가 현상보다 낮게 자리할 때, 나의 부담은 아주 크다.

내가 현상과 서열이 비슷할 때, 나의 부담은 적절하다.

내가 현상보다 높게 자리할 때, 나의 부담은 없다.


이러한 범주에 따라

첫번째 경우, 내가 현상보다 낮은 위치일 때 부담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부담이 없다면 나의 심정은 비정상이다.

그러니 주책없이 따라오는 회피나 도전, 극복같은 심정에 주접떨기보다

나의 크기를 키워줄 이성의 정돈이 더 시급하다. 

나의 기능이나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 점검에 이성을 집중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이 때는 '나'에게 집중하여 내가 해야 할 역할, 의무를 그저 묵묵히 실행하면 된다. 

그렇게 나를 키워내는 것이다.


두번째 경우, 내가 현상을 이해하는 수준이 적당할 때엔 부담은 적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부담은 애써 겸손한 척하는 자기포장의 기능이거나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이성의 마비증세를 드러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감정낭비일 뿐이다.

그러니 이 경우 부담은 없애버리면 된다. 

괜한 녀석이 날 침범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는 것이 이성의 역할이며 교육의 결과다.

가래나 고름이 내게서 자란 것이지만 불필요하여 없애버리듯 이 경우 부담은 그런 것이다.

한마디로, 이 때는 부담에 집중하여 부담을 없애버린다.


세번째 경우, 내가 현상보다 우위에 서 있을 때 부담은 없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초월된 이성으로 현상의 본질을 들여다볼 때 

부담을 불러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면, 감정은 억지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명한 이는 이 경우에 자진해서 부담을 내 안으로 초청한다.  

초청의 주체는 더 본질에 근접하고자 하는 욕구다.

욕구가 커지면서 간절함도 커지고 그것을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이성도 따라서 바삐 움직일테니 

이 경우 부담은 현명한 기능으로 나를 조력한다.

한마디로, 이 때는 현상에 집중하여 사실과 본질을 더 미세하게 감지하도록 이성을 훈련한다.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더 크고 깊이 주시하여 나를 더 키우는 용도로서 부담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명해지려면, 

보다 나은 삶으로 나를 인도하려면,

세번째의 경우로 우리는 성장하고 진화되어야 하며

보다 현명한 이라면 스스로 세번째를 첫번째로 연결시켜 점진적인 성장으로 자신을 지속시킬 것이다.


결론적으로,

삶은 구구단으로 풀어나가는 수리적 계산이 아닌지라

나를 키우는 속도가 물론 더디겠지만

현상을 마주하는데 적당한 감정상태를 스스로 조율할 수 있어야 하며

감각에 치중된 본능보다

조금 더 '키워진 나'를 기준하여

이성에 에너지를 쏟는다면

부담은 결코 나에게 해(害)가 아닌, 득(得)으로써 나에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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