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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11. 2024

감각에 민감하고 이성적 판단은 유보한다.

이기론(利己論) - Ch3.  해체, 그리고 脈!

지금 이 글은 [이기론]의 CH1. 나는 나를 해체하기 / CH2. 나를 해체해보니에 이어진 CH3. '해체, 그리고 脈!'입니다. 따라서, 지난 글들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를 변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나의 결점을 보는 순간 시작됐다. 

이기론을 집필하기로 한 과정을 연역해보면 그 시작에는 나의 결점이 나를 아프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5년간 책에 파묻혀 지내고 2년여 그것을 글로 토해내는 시간들을 가져왔는데 '너는 변했느냐?'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뱉어내야 할 것, 주워 담아야 할 것, 드높여야 할 것, 파괴시키고 다시 재조립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아지지 않았는가? 아니다. 나의 정신과 영혼은 더 나은 상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확하다. 지속적으로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몰랐던 나의 결점과 장점들을 매일 알게 되는 것이 증명인 것다.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며

의지를 불사르기 위해서는 갖지 못한 것의 갈망이 간절해야 하며

극복하기 위해서는 넘지 못한 벽과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는 마치 죄수와 교도관이 하나의 수갑을 차고 나란한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란한 자리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를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을 '이기론'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가면서 나는 15가지의 명제를 도출, 어떠한 판단 앞에 나를 세워두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나의 굵은 맥이 잡혀야 내 인생이 선순환의, 바람직한 궤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15가지 가운데 오늘은 5.감각에 민감하여 이성적 판단을 유보한다.에 대해 거론할 차례인데 이 명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기론의 챕터1, 2에서 충분히 거론했던터라 다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지만

우리는 대개 생각의 결과들을 믿음의 체계로 바꿔서 그것을 신봉하며 살아갑니다. 이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만 세상과 접촉하는 것이지요. 이 때 인간이 상실하는 가장 큰 자질이 바로 '예민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민함은 인간을 통찰로 이끄는 매우 종합적인 직관의 터전입니다. 자신의 시대적 사명과 역사적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직관입니다(주1).라는 최진석 교수의 말처럼 생각의 결과로 이뤄진 믿음보다 직관의 터전인 민감함이 더 성숙한 이성인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이성은 문득 생각이 떠오르는 번뜩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번뜩이는 것도 감각이요, 직관도 감각이지만 전자는 근거나 이유, 원인이 없고 직감이 이성으로 투입된 '직관'에는 분명한 그것이 존재한다. 왠지 그럴 것 같은 막연함이라기보다 수많은 경험과 쌓인 지식이 연결되어 마침내 이치에 맞는 논리가 꿰어져 느껴지는 섬광같은 느낌이 진짜 직관이다


말 그대로 반복된 경험으로 체득한 훈련의 축적이 지식과 연결되어 감각으로 전해진 것이 직관이다. 

따라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직감은 직관이 아니며 학습의 결과, 노력에 대한 포상이 진정한 직관(주2)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감각이 이성보다 우위에서, 선두에서, 근거에서 내겐 더 중요하다. 인간이, 내가 지닌 모든 기능들, 그러니까 정신활동인 이성, 마음활동인 정서와 감정, 영적활동인 감각에서 감각이 최우선이 된다. 


몽테뉴의 말, '감각이 우리의 주인(주3)'이라는 의미가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것 역시 내 삶의 경험이 책으로 쌓인 지식과 연결되면서 찰나에 느껴지는 기운? 감각?이 더 현실을 해석하는데 유리함을 경험했던 탓이리라. 


정신활동인 이성, 즉 인식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성이 무조건 개입될 수밖에 없기에 인식기능을 지닌 사람에 따라 이성적 판단이 다 다른 것이다. 판단이란 인식에 근거하며 인식은 경험에 근거하며 경험은 주관적 환경에 따라 수많은 변수를 지니기 때문에 인식에 의존한 판단, 즉 감각을 배제한 이성적 판단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탐구하는 모든 이유는 '잘 사는 삶'을 위해서다. 


여기서 '잘'은 '자기다운'이라 하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누리기 위해 더 커다란 권위로부터의 명을 수령, 인정하여 그 길로 자신을 걷게 하는 동력. 그 동력은 올바른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니까, 판단은 자신이 가야할 길, 살고 싶은 삶을 행동으로 전이시키는 자체명분이 되며 따라서 모든 행위는 판단에 의해 힘을 얻는다.


행위의 강도가 높으려면, 타인이 아닌 자신의 순수성에 기반되어 인식이 아닌 열린 의식에 의해 감각되어진 그것이 초월된 이성을 거쳤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인식안에서 내게 명령하는 판단이 아니라 무한한 열린 의식의 세계에서 살아온 동안 쌓인 경험과 지식이 만나는 찰나의 감각, 그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삶에 훨씬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1>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2018, 21세기북스

주2> 단순한뇌, 복잡한 나, 이케가야유지, 2012, 은행나무

주3>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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