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 비해 늦었어도
나에 비해 빨랐으면 됐다
남들에 비해 못해도
나에 비해 잘했으면 됐다
늦둥이의 탄생에 부모는 눈물을 흘렸고
풋눈이 내릴 적에 아이들은 폴짝 뛰었다
사랑 받고 자란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만든 눈사람을 누가 욕하랴
오늘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을 펼쳐봤습니다. 펼치진 페이지엔 '늦'으로 시작되는 단어가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늦'은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이왕이면 빠른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나열된 단어들을 차례차례 보다가 '늦둥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귀엽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단어였습니다. 늦둥이라 함은 집안에서 사랑 받고 자라는 어여쁜 존재이지 않습니까.
미소를 띄우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늦과 풋>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ㅍ'에 해당하는 페이지로 넘어가고, '풋'이라는 글자로 시작되는 단어가 나열된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단어들을 살피다 '풋눈'이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초겨울에 내리는 첫눈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단어였습니다. '풋'은 무언가 서툴고 부족한 느낌이 있었는데, 풋눈이라는 단어는 순수하고 고결한 느낌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조바심이 나는 시기는 '늦'었을 때와 '풋'내기일 때입니다. 남들보다 느리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남들보다 못한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남들에 비해서 늦고 못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수많은 '나'들 중에서는 지금이 가장 빠르고 가장 잘하는 '나'입니다. 설령 누군가 늦은 사람과 풋내개를 욕한다면, 그 사람은 늦둥이의 탄생에 기뻐해보지 못했고 풋눈이 내릴 적에 우산을 펼친 불쌍한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바쁜데, 그런 사람은 옆으로 흘려 보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