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엔 늘 누군가 도사린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난 본다
저주라고 말하기엔 무섭진 않고
행운이라고 말하기엔 좋진 않았다
딱 기적 정도, 구석의 불가사의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목을 탁 치는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면
나의 시선은 늘 구석을 향한다
맥주 한 입에 구석 한번 바라보기
나만의 음주 습관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귀갓길,
내 뒤를 밟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히 오라고 걸음을 늦춘다
외출복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곤
구석에 있을 존재를 떠올린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획 돌리니
넌 있었다
말은 없다
그저 웅크린다
그 날도 그러한가 싶어
눈을 꼭 감았다
파파스,
라고 넌 말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구석을 바라봤다
넌 사라졌다
파파스, 그 한마디만 남겨놓곤
그대의 구석엔 누가 도사리고 있는가. 구석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 웅크린 존재를 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말을 하진 않더라도 그의 웅크림엔 호소력이 있었다.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편집증이 도진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게는 보인다. 인지행동오류를 치료하기 위해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저것은 진실이냐, 혹은 거짓이냐.
파파스, 넌 그리 속삭였다. 희미해져가는 악몽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스키마가 만들어낸 또 다른 세상. 파파스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너의 언어인가. 신의 목소리를 전해주러 온 헤르메스인가.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그 답을 알 수 없겠지. 사라진 존재를 내 힘으로 도로 데리고 올 수는 없으니.
너의 존재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구석엔 웅크린 존재들이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로. 말하지 않는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님을 잘 안다. 왜 말하지 않는가. 말하면 알아주기 쉬울텐데. 어쩌면 웅크리는 것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언어는 웅크리는 것이다. 아니야. 어쩌면 목소리를 내고 있어도 내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분명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을 거야. 가위에 눌릴 적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주변이 고요한 것처럼 너는 몸부림쳤을지도 몰라. 그러다 침묵을 깨는 생경한 외침, 파파스. 넌 파파스라고 말했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파스. 최근에 악몽을 꿨습니다. 그 악몽을 살짝 각색해봤습니다. 건설적인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