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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바람은 분다

by 어린길잡이

냉혹한 겨울 바람은 분다

문드러진 솔잎과

썩어가는 솔방울을 품은 채

세찬 바람이 우리를 향해 분다


산비탈에는 목이 잘린 나뭇등걸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은 왜 목이 잘렸는가

그들은 왜 푸른 솔잎과

아담한 솔방울을 내던졌는가


날카로운 겨울 바람은 또 다시 분다

어서 산의 정상을 향해 전진해라고

내 가슴을 두드리는

실바람이 고산을 향해 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왈가왈부하며 서 있었을 뿐이다

나뭇등걸을 잊은 채


앞뒤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은

서로를 향해 부딪힌다

피의 선풍이 되살아난 듯

거대한 소용돌이가 된다

나는 피의 선풍을 잊었는가


바람은 불 것이다

새하얀 양떼구름이 스치는 가운데

벗과 팔짱은 끼며

굳건한 소나무들을 기댄 채

산의 정상에서 소리지를 것이다


피의 선풍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위에 서 있는 존재자로서

식어버린 핏물 바닥을

밟고 있는 자로서

존재를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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