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겨울 바람은 분다
문드러진 솔잎과
썩어가는 솔방울을 품은 채
세찬 바람이 우리를 향해 분다
산비탈에는 목이 잘린 나뭇등걸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은 왜 목이 잘렸는가
그들은 왜 푸른 솔잎과
아담한 솔방울을 내던졌는가
날카로운 겨울 바람은 또 다시 분다
어서 산의 정상을 향해 전진해라고
내 가슴을 두드리는
실바람이 고산을 향해 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왈가왈부하며 서 있었을 뿐이다
나뭇등걸을 잊은 채
앞뒤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은
서로를 향해 부딪힌다
피의 선풍이 되살아난 듯
거대한 소용돌이가 된다
나는 피의 선풍을 잊었는가
바람은 불 것이다
새하얀 양떼구름이 스치는 가운데
벗과 팔짱은 끼며
굳건한 소나무들을 기댄 채
산의 정상에서 소리지를 것이다
피의 선풍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위에 서 있는 존재자로서
식어버린 핏물 바닥을
밟고 있는 자로서
존재를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