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산행은 구룡령을 들머리로 시작해 갈전곡봉에 오르고, 조침령으로 내려서는 총 22.75킬로미터의 여정이다. 오전 9시에 산으로 들어섰다. 갈전곡봉으로 가는 길은 지난 7월 응복산에서 내려와 몸을 씻었던 계곡 옆의 나무 계단을 지나며 시작되었다. 산의 경사는 가팔랐고, 설악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지만, 오늘의 날씨는 한 해 중 가장 쌀쌀하다는 예보에 따라 늦가을에 맞는 옷을 입고 산행에 나섰다. 오늘도 발걸음이 빠른 선두는 보이지 않았고, 십여 명의 후미는 산죽을 헤치며 나아갔다.
지난주 강릉에서 강화까지 308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을 62시간 39분에 완주한 송 총무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달리면서 잠은 좀 잤나요?" 내 물음에 그녀는 “버스 승강장과 식당에서 잠깐 잠을 청하기도 했는데, 사람이 다 살게 되어 있나 봐요”라고 대답했다. 강원도의 한 농촌 어르신의 배려로 방바닥이 따뜻한 마을 회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에너지를 충전해 완주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왜 마라톤을 그토록 하죠?" 그녀는 힘겹게 숨을 쉬며 말했다. “청남대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후,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이 국토 횡단 308킬로미터에 도전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해볼까? 나는 하지 말라는 법 있나?” 그녀는 자신이 달렸던 최고 거리보다 3배가 넘는 거리를 완주할 수 있었던 비결이 도전 정신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끝나면 나는 무엇에 도전할 것인지 생각하며 해발 1,204미터의 갈전곡봉에 올랐다. 갈전곡봉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오늘 산행이 끝나면 드디어 마지막 구간만 남는다. “새벽 님, 종주 산행 기념패를 만들려고 하는 데 문구를 써 주실 수 있나요?” 김태만(가명) 안산 백두대간 종주 클럽 운영위원장이 물었다. 나는 기꺼이 대답했다. "예, 잘 써보겠습니다."
기념패에 쓸 문구를 부탁받고 나서 지난 3년 동안 매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한반도의 등뼈라고 불리는 백두대간을 걸었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2008년 12월 20일, 중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서 시작했던 여정은 초승달 아래 거센 바람과 진눈깨비, 비와 우박, 그리고 눈 속에서 계속되었다. 방수 등산화가 젖고 물집이 생긴 발로 선두를 따라가며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낮 한때 동해안에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되었지만, 날씨는 화창하고 쌀쌀하여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산은 참나무가 빽빽하여 조망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깊이 숨을 들이마시니 도심에서의 혼탁함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산언저리에 머물던 안개가 하늘로 오르고 구름이 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조침령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은 방향만 표시하고 거리는 표기하지 않아 지도를 보며 현재 위치와 앞으로 가야 할 거리를 확인하곤 했다. 이 모습을 보며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곳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위에서는 "당신은 여백이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쓴 산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내가 목표와 목적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 걷는 백두대간 종주 산행은 목적이 있는 산행이다. 안산 백두대간 클럽은 일반 산악회나 동호회처럼 친목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을 가진 클럽이다. 이제 산행이 끝자락에 이르러 김정녕 회장이 아쉬움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앞으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산을 오르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명상하며 산행을 즐기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작은 책』 편집위원인 하종강 한울문제노동연구소장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내 인생과 글쓰기'라는 기획 특집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백두대간 산행을 하며 느낀 생각들을 글로 남기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썼던 글을 정리하다 보니, 책장 파일에 열몇 개 파일에 글이 가득 차 있었다. 2001년부터 쓴 글이었다. 게다가 공무원직장협의회와 공무원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쓴 글은 지난 10년간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달렸던 마라톤 후기, 그리고 힘겨울 때 직원들이 보내준 격려의 글. 이 모든 기록은 내가 공직에서 퇴직할 때 남기고 갈 중요한 자료였다.
백두대간을 탔던 지난 3년 동안 내가 쓴 글들도 시간대별로 정리되어 파일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때로는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며 "아하! 그때는 그랬었지," 하고 추억에 잠기곤 한다. 기록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남기며 내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 나가려고 한다.
설악산 산행 중 마주한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산은 부드럽고 숲으로 덮여 있었으며, 단풍은 아직 이른 듯 붉고 노란빛이 덜했지만,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명상에 잠기는 시간이 무척 좋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표지판이었다. 그런데 산행 중 길을 안내하던 표지판에는 구룡령과 조침령 표지판만 있었고,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955봉, 956봉, 968봉, 1,059봉 표지가 길을 안내했다. 마침내 옛 조침령 표식이 보였다. 오늘은 예정된 오후 4시에 날머리에 도착했다. 2011년 가을이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산행을 마치고 조침령에서 느낀 것은, 산행과 기록이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이 산행을 통해 얻은 모든 교훈과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34차, 구룡령 - 갈전곡봉 - 조침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