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과 현대천문학을 따라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생명력을 얻어 숲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이 그렇고 현대천문학처럼 과학도 그렇다. 씨앗이 된 선배들을 추앙하며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다. 한국천문학회 60주년 기념에서 축하공연을 해주신 김강훈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궁금해 졌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었다. 유투브나 인터넷을 보면 최근의 연주자들의 이름과 영상이 많이 올라오지만, 현대천문학도 그렇듯 선인과 석학들은 유투브 이전 세대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분들을 깊이 존경하며 기리고 싶다.
시대의 흐름을 네가지로 구분했다. 시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했고, 년도는 모호하나 구분을 하는데 의미를 두었으면 한다.
개척기 (1900년대 이후) - 선교사로부터 배우거나, 독학, 해외 유학 등으로 바이올린 최초 도입
성장기 (1950년대 이후) - 해외유학과 후학양성으로 체계적인 바이올린 교육이 시작됨
확장기 (1960년대 이후) -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연주형태 시작
세계화기 (1980년대 이후) - 국내 콩쿠르 활성화와 세계적 연주자와 아티스트들을 배출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더욱 다채롭고 풍성할 것 같다. 현대음악과 고전음악, 예술 경영, 지휘, 작곡등 다양해 질 것이고, 지역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이 활성화 되면서 국내 음악 생태계가 성숙해 질 것 같다. 아울러, 전 세계를 무대로 삼는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세계 음악 커뮤니티와의 연결 또한 눈에 띌 것 같다. 미래를 꿈꾸는 꿈돌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지는 시대를, 선인들께서 미리 닦아 놓으신 거다.
개척기 (~1900년대 태생 이후)
1900년대 초, 한국에 서양음악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들었다. 선교사들을 통해 음악을 접한 이들은 독학과 해외 유학을 통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독학한 故김인식(1885-1963)은 故홍난파(1897-1941)와 이상준과 같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같은 시대에 홍난파는 교회에서 서양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또한 故채동선(1901-1953)과 故김재훈(1903-1951), 故계정식(1906-1975)은 독일 유학 하며 바이올린 음악을 이끌던 분이시다.
김인식, 홍난파, 채동선 등의 초창기 선배들에 이어, 한국 바이올린 음악의 기반을 더욱 다지고 발전시킨 분들이 등장했다. 계정식과 함께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많이 배출하셨던 故안병소(1908-1974), 홍난파의 조카인 故홍성유(1908-1936), 연희전문학교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서울교향악단 창단에 기여하는 등 한국 음악 발전에 큰공헌을 한 故김생려(1911-1995), 홍난파, 홍성유와 함께 ‘난파 트리오’를 조직하고 조선음악과협회와 고려교향악협회를 이끈 故이영세(1912-1986), 홍성유의 동생 故홍지유(1913-?), 홍난파와 안병소, 트락텐베르크 등에게 사사하고,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립에 기여한 故전희봉(1915-?), 서울교향악단 창설에 기여한 故전봉렬(1916-1987), 선교사들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일본에서 전공하고,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한국근대음악의 발전에 공헌한 故이봉수(1917-1996)와 故박민종(1919-?) 등이 그 주역이다.
1920년대 이후 출생하신 분들 중에는, 정경화, 김남윤, 피호영, 이승일, 김다미 등을 길러낸 대한민국 바이올린계의 아버지 故양해엽(1929-2021) 선생님이 계시다.
1930년대생으로는 김강훈 바이올리니스트의 스승인 故이종숙(1939-2007) 선생님이 계시다. 이종숙 선생님은 이화여대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예원학교에 매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이종숙 추모 장학금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이 분을 기리기 위해 리챔버오케스트라가 2017년에 창단되어, 2023년에는 3회째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1900년대 초, 한국 바이올린 음악은 선교사 교육, 독학,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씨앗을 틔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동요나 가곡, 바이올린 독주 정도만 연주할 수 있었지만, 이후 실내악단과 관현악단이 처음 만들어지면서 바이올린 음악 생태계가 서서히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성장기 (~1950년대 태생 이후)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의 뒤를 이어 한국 바이올린 음악의 발전을 이끌었다. 후학 양성으로 체계적인 바이올린 교육이 시작된 시기이고, 다양한 분야로 발전시켜 실내악, 오케스트라, 솔로 등 모두 진중하게 시대를 살며 이끌어 가고 있다.
나 같은 문외한도 아는 정경화(1948-)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동양인 클래식 연주자로 전례가 없는 국제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김영욱(1948-)은 1965년 메리 위더 국제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故김남윤(1949-2023)은 한국예술종합대학(한예종)의 창설 멤버로 합류해 40년 넘게 교단에 서면서 ‘한국 바이올린의 대모’라 불리며 ‘김남윤 사단’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의 스승이던 신수정(피아니스트)와 함께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교육자다.
1950년대 이후 출생자 중에는 교육자, 연주자, 악장, 지휘자 등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업계에 계신 분들은 굵직굵직한 그룹을 잘 알겠지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쯤에서는 한 그룹을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가 된 김강훈 바이올리니스트의 그룹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봉수와 박민종으로부터 체계적인 바이올린 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종숙(1937-2007) 선생님의 계보에 해당한다.
확장기 (~1960년대 출생 이후)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연주형태가 시작된 이시기에는, 故이종숙 선생님의 계보를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1978년 중앙콩쿠르 1등 수상자인 김광군 가천대학교 교수가 있으며, 국내외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을 배출한 교육자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경은 뮌헨음대 교수이자 음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유럽에 거주하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발히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4년 중앙콩쿠르 1등 수상자인 김강훈은 독일 만하임 챔버오케스트라(쿠어펠츠 캄머) 악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덕오케스트라 지휘하고 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교육자로서의 길도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엘리트 예술가시다.
세계화기 (~1980년대 출생 이후)
국내 콩쿠르가 활성화되고, 세계적 연주자와 국제적 아티스트들이 배출되는 시기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재들이 나오고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이름이 계속 불려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국제 콩쿠르 1위 수상뿐만 아니라, 많은 연주자들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진중하게 노력하며 즐기고, 우리의 음악을 풍성하게 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 또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악장 김수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오케스트라 악장 이지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 박지윤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 빛나는 예술가들이 이미 그 길을 열어가고 있는 모습 속에 담겨 있다.
앞으로는, 서양음악이라는 풍성한 숲에 새들도 날아들고, 크고 작은 곤충들과 동물들, 그리고 이보다 많은 보이지 않은 미생물들로 가득하여 숲 생활이 멋들어지게 펼쳐질 것이다. 교수, 연주자, 실내악 및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작곡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수많은 새로운 곡들이 탄생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생태계를 꾸려 왔다면, 이제 현대음악, 고전음악, 예술경영, 지휘, 작곡 등 다양한 분야가 풍성하게 확장될 시기가 올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모두 거뜬거뜬한 미래를 맞이하면 좋겠다.
맺으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육자로 헌신했던 분들을 찬양하고, 서양음악과 현대과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성숙한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현대천문학의 중심에 있었던 故홍승수 교수님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홍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으며, 천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나 학생들 사이에서는 쟁쟁하신 그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다. 2003년경, 내가 미국 덴버에서 열린 “Astrophysics of Dust”학회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저명한 네덜란드 학자 (Ewine van Dishoeck 으로 기억한다)가 회고 강연을 하며 옛날 사진들을 소개하는데, 한 분의 얼굴에 동그라미를 치며 강조했다. “이 분이 한국에서 온 홍승수입니다. 뛰어난 천재였지만, 지금은 사라졌지요.” 한국에서는 활발히 교육과 연구를 이끌어 가고 계셨던 그분이, 국제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비켜나 있었던 것이다. 현대음악계나 현대천문학계 모두, 이처럼 엄청난 인재들이 국내로 돌아와 교육자로 헌신하며 후학을 길러낸 역사를 품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많은 분들의 바램과 노력, 희노애락으로 성숙한 국가가 되어 서양음악과 현대천문학이 성숙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임조령 박사의 말씀을 빌자면, “어렸을 때는 NASA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어요. 지금은 NASA에서 일하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NASA 와 함께 일하거든요. 우리나라의 국격이 그 정도 오른거죠” 다시한번, 각기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을 해내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멘델스존이
바흐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이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든, 나도 그 분들의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다.
* 추신: 바이올린 문외한으로 글로 찾은거라, 틀리거나 누락된 부분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주요 출처:
위키피디아 (https://www.wikipedia.org)
나무위키 (https://namu.wiki/)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https://ko.wikisource.org)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isbcc/home/u/index.do)
월간 객석 (https://auditoriu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