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7.(일) @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대전에 첫눈이 두 번 내린 겨울의 초입, 한밭수목원 인근에 위치한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해설이 있는 제41회 대덕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부산에 터를 잡고 사는 나는, 대전의 추위가 점점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이럴 때 아늑하고 포근하며, 동시에 심장이 터져 나올 듯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뿌듯함과 내년을 향한 기대감에 부푼 음악을 듣게 되어 좋았다. 게다가 수원에서 친구가 내려오고, 음악을 즐기는 대전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게 되어 더욱 따듯했다. 우리나라의 대동맥, 경부선 친구들!
이날 연주된 곡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중 간주곡이었고, 플루티스트와 함께 브리찰디의 작품 78 ‘베네치아의 카니발’이 협연되었다. 이후 드뷔시 곡이 앵콜로 연주되었다. 하이든의 교향곡 제82번 C장조, “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음악이 연주되었고, 앵콜곡으로는 분위기가 다른 빠른 버전의 “곰”이 다시 한번 연주되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연주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중 간주곡. 첫 곡을 시작하며 김강훈 지휘자는 우리에게 ‘파파파파’라는 보석을 선물해 주셨다.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여러 상황에서 들어보라 했다. 난 이 말이 좋다.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작곡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연주의 흐름이 어떻든 간에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가는 것이 클래식을 들을 때의 재미다. 파파파파아~ 파파파파아~
플루트를 들으면 항상 봄이 생각난다. 아늑한 호숫가 큰 나무, 봄의 수선화와 크로커스, 새싹이 돋아나고. 김성식 플루티스트의 초록초록한 연주가 봄으로 이끌었다. 특히 앵콜로 들려준 드뷔시의 곡은 플루트로는 처음 느껴보는 ‘시린 느낌’이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운 곡을 소개해준 플루티스트 김성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다음날 이른 새벽 해외 공연을 나가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 준 마음이 감사했다.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이든의 교향곡 제82번 C장조의 2악장.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음악이 잘 안 들릴까봐 예습을 했었는데, 82번 전체에서 2악장의 일부 부분만 계속 두드러지게 들렸다. 이번 공연장에서도 역시 약해졌다 강해지고, 다시 약해졌다 강해지는 반복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떨 땐 소심히 행동하고 나서 마음은 요동치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땐 과하게 행동하고 다시 움츠러들기도 하고, 큰 뜻을 품었으나 지리멸렬해지기도 하고, 생각 않고 있었는데 축포가 터지듯 크게 이루어질 때가 있는 마음이 떠오른다. 낮과 밤, 빛과 어둠처럼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완전체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창조성과 두려움이 한 쌍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하는 두려움, 시작하다가 흐지부지될까 하는 두려움, 아무 의미 없이 될까 하는 두려움을 간직한 채 초현실적이고 다른 세계에서 오는 것 같은 마법 같은 창조성의 발현은 언제나 두려움과 짝을 이룬다. 약약강강, 강강약약. 두려움이 곁에서 함께 걸어 주지 않는 이상 창조성은 단 한 발짝도 저 혼자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고도 한다. 두려움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곁에 두어도 편안해질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빛과 어둠, 창의성과 두려움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풍성하게 만든다. 약약강강 강강약약. 올해의 크리스마스와 연말도 그런 분위기로 다가올 것 같다.
1악장은 그야말로 웅장하고 위대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휘자 선생님의 표현대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 공간을 만들어가며 내달리는 듯한 그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제40회 대덕오케스트라의 슈베르트 곡처럼 무슨 일이든지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로움에다가 거대하고 웅장하게 뻗쳐 나가는 느낌이다. 축하받고 싶을 때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선 기분이기도 했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무려 108개의 교향곡을 남겼다고 한다. 베토벤이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것을 보면, 아주 많이 작곡한 사람이다. 비엔나의 스테판 대성당의 소년합창단으로 활동했고, 모차르트와도 같은 시대를 살았다.
문득 10년 전 비엔나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10년 전에 비엔나에서 스테판 대성당을 방문했던 때가 기억나기도 하고, 빈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았던 것도 생각이 난다. 나의 기억을 끄집어 내주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과거의 내가 숨겨놓은 보물을 오늘 선물 받는 기분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비엔나에서, 하이든의 음악은 대전에서 듣게 되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하이든에게 사사한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 작곡가는 이름이 남는데, 그 수많은 연주자들의 이름은 그렇지가 않다. 무언가 짠하면서도, 연주자가 없으면 작곡가의 악보는 종이에 불과하다는 허망함이 있기도 하다. 연주자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주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드리고 싶다. 그리고 사실은 공연을 가장 즐긴 사람은 우리 관객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연주자가 훨씬 더 즐거웠을 거다. 한번, 두 번, 수천번 음이 쌓여서 결국 부드럽고 편안하고 예쁜 한 음이 나는 것을 느꼈으니까.
하이든은 위트와 재치가 뛰어났다고 한다. 조는 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놀람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휴가를 가지 못하자 연주자들이 연주 중에 하나둘 무대 뒤로 퇴장하도록 만들어 휴가의 의지를 보여준 ‘고별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에 못지않게 이번 공연에서도 곡 설명할 때 휘파람을 부신 지휘자님, 공연이 끝난 걸로 생각해서 박수를 쳤는데 재미있게 다시 이어진 마무리 연주. 위트와 해설로 클래식이 편안하게 다가오고, 더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더불어 팸플릿 그림은 김강훈 지휘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보랏빛이 우아하게 느껴졌고, 매력적인 초록빛이 겹쳐 보이는데, 마치 연말처럼 꽉 찬 기분이 들었다. 밀려오는 파도 같은 느낌은 내년을 생각하게 한다. 연말에 어울리는 좋은 곡들을 소개받아서 고마웠다. 대덕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감사드리며, 특히 김강훈 지휘자님, 첼로에 임인성 박사님께 감사드리며 응원한다.